지자체 역할 커진 지방대 살리기, 첫 과제는 1조 예산 확보 [이젠 지방대학 시대]

김준용 기자 jundragon@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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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부산 2030] 이젠 지방대학 시대 <상> 위기 속 기회

지방대 육성 예산 1조 2837억
대학·지자체엔 천문학적 예산
도시 침체 돌파구 찾을 기회
우후죽순 특성화 접근법은 한계
애물단지 영상학과 반면교사 삼아
거버넌스 만들어 대학 간 조율을

윤석열 정부의 교육 1호 공약은 ‘지방대 살리기’다. 출범 1년도 되지 않아 정부는 지방대에 대한 지자체 권한 확대 카드를 꺼내 들었다. 전국에서 가장 지방 대학이 많은 부산의 행보가 향후 지방대 살리기의 표본이자 지방대 부활 성공의 기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제2의 말뫼대’ 될 수 있을까?

‘말뫼의 눈물’로 잘 알려진 스웨덴 말뫼는 1987년 세계 최대 조선소였던 코쿰스 조선소 도산 때문에 쇠퇴의 길에 접어들었다. 말뫼시는 쇠퇴해 가는 도시를 부흥시키기 위해 대학에 승부를 걸었다. 텅 빈 코쿰스 조선소 부지에 설립된 말뫼대는 설립 35년 만인 지난해 스웨덴 전국학생연합으로부터 스웨덴 최고 대학으로 선정됐다. 시는 대학에 예산을 지원하고 벤처 단지를 건설해 산학연 네트워크를 만들었다. 지금까지 500여 개의 스타트업이 말뫼에 둥지를 틀었다. 현재 말뫼는 전 세계 170여 개국에서 온 학생과 기업인으로 북적이는 스타트업 국제도시가 됐다.

인구가 줄고 기업이 없는 도시. 부산도 이와 다르지 않다. 부산도 대학에서 도시 침체의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올해는 예산과 제도가 부산에 대거 투입될 수 있는 첫해이기 때문이다.

지난달 9조 7000억 원의 고등·평생교육 특별회계 지원 예산이 국회 문턱을 넘었다. 지방 대학 집중 육성을 비롯해 대학 자율 혁신 촉진, 대학 교육·연구 여건 개선, 초·중등 교원 양성 및 학문 균형 발전 등의 항목에 예산이 투입된다. 지방 대학 집중 육성에 배정된 예산은 1조 2837억 원이다. 지난해 부산시의 대학 지원 예산 90여억 원이다.

수도권 이외 지자체 중에서 가장 많은 15개의 4년제 대학이 있고 ‘지산학 협력도시’를 목표로 하는 부산시는 예산 확보에 사활을 걸어야 하는 상황이다. 예산은 올해 초 지자체에 할당되는데, 지역 대학 지원 모델 밑그림을 그려 놓아야 지자체 간 예산 확보 전쟁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다.

시는 향후 ‘교육특구’ 형식의 대학 지원 특화 지자체를 목표로 지역의 산업과 대학의 위기를 타개할 계획을 교육부에 여러 경로로 제출한 상태인 것으로 알려졌다.

시가 추구하는 교육특구의 핵심은 시가 대학과 함께 지역 발전 계획에 맞게 대학 중심의 지역 혁신을 이끈다는 것이다. 지역에 공공기관 이전 계획이 있다면 장기 계획에 맞춰 이전 공공기관 성격에 맞는 인재를 이전 전부터 유치 계획에 맞춰 양성하는 식이다. 거꾸로 대학이 ‘펫 산업’에 특화돼 있다면 지역에서도 중앙정부의 펫 산업 관련 예산, 사업을 따오거나 지역 대학 인재가 채용될 수 있는 펫 산업을 선도할 회사 유치를 위해 예산을 투입하는 ‘선순환’이 가능해진다.


■우후죽순이 아닌 ‘진짜 특성화’

지자체로 공이 넘어온 지방대 살리기가 연착륙하기 위해서는 기존과는 다른 혁신적인 접근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지역이 산업을 이끌고 지역 대학이 관련 학과를 통해 인재를 양성해 온 과거 방식에서 맛본 실패가 있는 탓이다.

1998년 부산국제영화제가 시작한 뒤 2005년 당시 문화체육관광부는 부산을 영상문화도시로 지정했다. 글로벌 영상산업을 육성하고 첨단 영화산업을 이끄는 지역으로 만들겠다는 취지였다. 당시 목표에는 2020년 1만 3000개의 영상기업을 부산에 유치하거나 만들고, 영상 관련 인력 5000명을 육성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대학에는 영상학과, 영화학과 등 영상 관련 학과가 우후죽순 생겨났다. 각 대학은 고가의 장비를 구입하고 교수를 충원했다. 하지만 20년이 지난 지금 당시 만들어진 학과는 대학의 ‘애물단지’처럼 돼 버렸다. 장비에 많은 돈이 투입됐지만 영화 도시라는 이름과는 달리 양질의 일자리는 예상만큼 생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겉으로는 영화 도시지만, 전체 영화 제작 과정 중 로케이션 촬영 지원에 힘입은 촬영단계에 머물고, 촬영 전후 공정은 수도권에서 이뤄진다.

전문가들은 이같은 문제가 취업, 정주가 공존할 수 있는 복합적 지원 정책의 부족에서 비롯됐다고 지적한다. 부산의 한 대학 기획처장은 “대학이 지원을 받아 인재를 양성해도 수도권으로 빠져나간다면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정책이 될 것이다”고 말했다.

대학이 지역의 특성에 맞는 학과 운영, 교육 커리큘럼을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현재 학점 채우기 식의 교육으로는 기업이 필요로 하는 인재를 길러낼 수 없고, 지역 대학 출신 인재의 경쟁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또한 정기적으로 부산 대학 정책의 방향을 정할 수 있는 거버넌스 설립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대학별로 ‘제 팔 흔들기’식으로 특성화할 경우 대학 간 소모적인 경쟁만 심해질 뿐 지역에 필요한 인재 양성 효과는 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김준용 기자 jundragon@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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