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인하거나 무능하거나… 못 걸러 낸 ‘검사 출신 아빠 찬스’

박석호 기자 psh21@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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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순신 부실 인사검증 사태 일파만파
대통령실 “공직후보자 질문서 보강”
야당 “검사로만 채워진 인사라인 문책”
“피해자 극단 시도, 가해자 명문대 진학”
민감한 학폭 이슈에 불공정 논란까지

경찰 국가수사본부가 2대 수장으로 내정됐던 정순신 변호사의 낙마로 지난 26일부터 본부장 직무대행 체제에 들어갔다. 27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국가수사본부. 연합뉴스 경찰 국가수사본부가 2대 수장으로 내정됐던 정순신 변호사의 낙마로 지난 26일부터 본부장 직무대행 체제에 들어갔다. 27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국가수사본부. 연합뉴스

아들 학교 폭력(학폭) 문제로 하루 만에 국가수사본부장에서 낙마한 정순신 변호사에 대한 인사검증 논란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대통령실은 공직후보자 사전 검증 절차를 보완하겠다는 방침 등 대책을 내놨으나 국수본부장직 공모에서부터 추천에 이르기까지 검찰 출신 인사들이 주도하면서 검증이 허술했던 것으로 드러나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대통령실은 이번 사태를 계기로 공직 후보자 사전질문서를 보강하겠다고 27일 밝혔다.

고위 공직 후보자는 인사 추천 등으로 검증에 동의하면 60쪽 분량의 ‘공직 예비후보자 사전질문서’를 작성한다. 질문서에는 개인 신상 질문이 총망라돼 있지만, 대개 후보자 당사자를 중심으로 기술하게 돼 있고 가족 관련 사항은 비중이 낮다. 이에 대통령실은 자녀 학교폭력 관련 질문을 추가하고, 사실 그대로 답변할 의무를 환기하는 문구를 추가하는 방안 등을 유력하게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질문서에도 ‘답변 내용이 다른 것으로 확인될 경우 공직 임용에서 배제될 수 있다’는 등의 문구가 있지만, 조금 더 수위가 높은 사전 경고를 담거나 불이익 조항을 삽입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야당은 윤석열 정권의 ‘검찰 통치’를 문제 삼으며 공세를 강화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인사 참사’의 책임을 물어 윤석열 대통령의 사과와 인사검증 라인 문책을 요구했다. 이재명 대표는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정순식 전 검사는 대통령 측근 검사 출신으로 한동훈 법무부 장관과 이원석 검찰총장의 사법연수원 동기”라며 ‘검사 하나회’라고 비꼬았다. 박홍근 원내대표는 “온통 검사로만 채워진 대통령실 인사검증 라인은 반드시 문책해야 한다”고 말했다.

민주당은 윤석열 정부에서 신설한 인사검증 기구인 법무부 산하 인사정보관리단을 이끄는 한 장관도 정조준했다. 장경태 최고위원은 “(한 장관과)사법연수원 동기인 정 전 검사의 인사검증은 안 한 것이냐. 안 했으면 직무유기, 못 했으면 무능”이라고 일갈했다.

아울러 인사검증단을 법무부에서 대통령실이나 인사혁신처로 이관하는 내용의 정부조직법 개편안도 준비 중이다.

부실한 인사검증 문제와는 별개로 이번 사안이 학폭이라는 휘발성 높은 이슈라는 점도 국민적 공분을 자아낸다. 검사 출신 ‘아빠 찬스’로 연결되며 공정 이슈도 자극하고 있다.

2017년 강원도의 한 사립고에 입학한 아들 정 씨는 기숙사 같은 방에서 생활한 동급생에게 1학년 1학기부터 출신 지역 등을 이유로 언어폭력을 지속해서 가해 이듬해 전학처분을 받았다. 정 변호사 부부는 당시 미성년자였던 아들의 법정대리인으로서 전학처분을 취소해 달라는 행정소송을 냈다가 대법원에서 최종 패소했다. 행정소송 판결문에는 2018년 3월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자치위) 회의에서 정씨 측은 아들의 학교폭력이 ‘언어폭력’이었던 점을 방어 논리로 세웠다.

정 씨가 재학 중인 서울대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비판 글이 쏟아졌다. ‘피해자는 가해자 이름만 들어도 덜덜 떨고 자살 시도를 했는데 가해자는 유복한 집안에 명문대를 다니며 산다는 게 억울하다’는 글에는 공감 표시가 잇따랐다. ‘퇴학이 안 되느냐’ 등 대학 차원의 조치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왔다.

정 씨는 2020학년도 정시 전형으로 서울대에 진학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당시 정시모집 규정에 따르면 ‘수능 위주 전형’(일반 전형)에서는 수능성적을 100% 반영했다. 실제 국내 주요 대학은 입시전형에서 학폭 문제를 거를 시스템을 마련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정시 전형의 경우 수능성적을 100% 반영할 뿐 학교생활기록부 제출을 요구하지 않아 사실상 학폭 전력을 검증할 수 없다. 수시 전형에서도 학생부 기재사항을 정성 평가하는 학생부종합전형(학종)을 제외하면 내신 또는 논술시험 성적을 주로 반영해 학폭으로 인한 징계 등을 확인하기 어렵다.


박석호 기자 psh21@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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