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생 부산 여성 “저임금 노동 탓 지역 떠날 채비”

양보원 기자 bogiza@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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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여성회 설문조사 심층 분석

4~5년제 대학 재학·졸업률 80.3%
고학력 전국 평균보다 11.4%P 높아
250만 원 미만 저임금 노동자는
전국 평균 비해 10.9%P 높아 대조
불안한 고용 형태가 ‘지역 이탈’ 주범
가부장적 조직문화도 유출 부채질
양질의 일자리 확대 등 대책 시급

7일 서울 파이낸스센터 앞에서 여성의 날 기념 외모 갑질 규탄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7일 서울 파이낸스센터 앞에서 여성의 날 기념 외모 갑질 규탄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가족과 함께 살고 싶은 마음은 누구나 같죠. 하지만 이 도시에서 삶을 계속 이어 나갈 수 있을까를 생각했을 때 고개가 저어졌어요.”

부산은 1990년대생 청년 여성에게 매력적이지 못한 도시다. 꿈을 이루고 미래를 그릴 수 있는 ‘좋은 일자리’는 부산에 부족하다. 간신히 일자리를 구한다 해도 저임금 탓에 ‘버티기’에 급급하다.


부산여성회는 7일 "지난해 90년대생 여성 6188명을 상대로 한 설문조사 중 부산지역 응답자 304명의 내용을 추려 심층 분석했다"고 밝혔다. 그 결과 부산의 1990년대생 여성 노동자의 4·5년제 대학교 재학·졸업률은 80.3%로 전국(68.9%)보다 11.4%포인트(P) 높았다. 직종으로는 사무직, 업종으로는 공공행정업에 종사하는 여성이 많았다.

고학력자가 많지만 임금은 전국에 비해 낮았다. 조사에 따르면 전국과 비교했을 때 부산에서 250만 원 미만의 임금을 받는 응답자의 비율이 10.9%P 높았다. 부산에서는 73.8%가 250만 원 미만의 임금을 받는 반면 전국적으로는 62.9%만 250만 원이 안 되는 임금을 받고 있다.

부산 청년 여성의 최근 3개월 간 월평균 수입(세전 금액 기준)을 살펴보면 200만~250만 원이 81명(32.4%)으로 가장 많았다. 다음으로 150만~200만 원 65명(27.4%), 250만~300만 원 36명(15.2%), 300만~400만 원 15명(6.3%), 50만 원 미만 10명(4.2%), 100만~150만 원 10명(4.2%)순으로 나타났다.

낮은 임금은 부산 청년 여성이 함께보다 혼자 살기를 선택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집 장만, 육아 비용 등 경제적으로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향후 동거 의향을 묻는 문항에서 ‘나 혼자’ 혹은 ‘반려동물과 함께’라고 응답한 사람의 비율이 41.3%로 ‘법적 배우자’와 함께 살고 싶다는 응답 14.3%에 비해 3배 가까이 많았다. 전국의 경우 ‘나 혼자’ 혹은 ‘반려동물과 함께’라는 답변 비율이 ‘법적 배우자’와 함께라는 응답보다 2배 정도 높은 것과 비교하면 녹록하지 않은 현실 앞에서 홀로서기를 선택한 부산 여성이 더 많음을 확인할 수 있다.

고학력 저임금, 양질 일자리 부족은 청년 여성의 ‘부산 이탈’로 이어진다. 삶의 터전을 바꾸거나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부산이 아닌 다른 곳으로 떠날 의향이 있냐는 질문에는 66.8%(203명)가 '있다'고 응답했다. 1990년대생 부산 청년 여성 모임인 ‘9099’의 활동을 주도해 온 부산여성회 소속 유한별(32) 씨는 “현실적으로 부산의 임금은 미래를 모색할 수 없는 수준”이라며 “미래를 위해서 저축하기도 여의치 않은 상황에서 여가를 즐기고 결혼을 계획하는 것은 다른 세상 이야기”라고 말했다. 유 씨는 “부산은 서비스직 비율이 높다. 여성 일자리가 돌봄노동에 치우쳐 있고 처우는 좋지 않다”며 “마케팅이나 대기업 등의 일자리를 찾고 싶지만 부산에는 선택지가 없어 꿈을 꾸기도 어렵다”고 설명했다.

이는 부산의 청년 여성은 전국에 비해 훨씬 질 낮은 일터에서 일하고 있으며 이로 인해 결혼을 고려하는 비율도 낮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전효주 부산노동권익센터 연구위원은 “부산 청년 여성의 일자리에는 산업적 다양성이 부족하다”며 “대부분 일자리가 서비스직에 몰려 있다. 그마저도 아르바이트나 비정규직 등 불안정한 고용 형태가 대부분이다”고 말했다. 또한 “고용 안정과 임금이 보장되지 않은 상황에서 부산에서 가정을 꾸리고 미래를 그리는 것은 청년 여성에게 부담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결국 부산 청년 여성이 부산에서의 삶을 꿈꿀 수 있게 하기 위해서는 양질의 여성 일자리가 많아져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김수현 부산여성단체연합 사무처장은 “수도권에서는 자영업을 하더라도 업종 선택의 폭이 넓은 편이지만 부산에서는 그것조차 한정적이다”며 “요즘 젊은 여성 사이에 수요가 높은 광고회사나 개발회사를 보더라도 수도권에 집중돼 있다”고 밝혔다. 이어 “청년 여성의 수요와 부산이 공급할 수 있는 일자리 사이에 부조화가 일어나기에 부산을 떠나는 것”이라고 부연했다.

기업 규모가 비교적 작고 수직적 문화가 만연한 탓에 가부장적 조직문화가 강한 것도 청년 여성을 떠나게 하는 요인으로 꼽힌다.

김 처장은 “소규모나 수직적인 조직이 많은 부산 기업의 특성상 사내에서 일이 발생해도 함부로 문제로 삼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며 “여성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기 위해서는 부산시의 제도적 개선과 함께 시민 문화도 바뀌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양보원 기자 bogiza@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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