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결단’ 걸맞은 일본 호응 있어야 관계 진전

박석호 기자 psh21@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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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정상회담 ‘과제’

윤 ‘미래를 위한 제안’ 강조
기시다 호응 없으면 물거품
일, 새로운 사과 ·반성 없이
‘역대 내각 계승’ 표명 그칠 듯

윤석열(오른쪽) 대통령이 지난해 캄보디아 프놈펜의 한 호텔에서 열린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3(한·중·일) 정상회의에 참석,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오른쪽) 대통령이 지난해 캄보디아 프놈펜의 한 호텔에서 열린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3(한·중·일) 정상회의에 참석,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번 주 열리는 한·일정상회담에서 한국의 강제징용 해법에 대한 일본의 대응이 초미의 관심사가 되고 있다. 과거사 문제를 포함해 한·일 간 현안의 종합적·포괄적 해결을 주장해 온 윤석열 대통령의 구상에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어느 정도 호응하느냐가 윤 대통령의 방일 성과를 평가하는 중요 잣대가 되기 때문이다.

또 한국이 ‘대승적 결단’을 강조하며 미래 지향적 제안을 했는데도 일본이 제대로 호응하지 않을 경우 윤석열 정부는 대일 외교와 과거사 문제에 대한 국내의 부정적인 여론을 설득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 밖에 없다.


박진 외교부 장관은 지난 6일 강제징용 해법 발표 후 기자회견에서 “이번 해법으로 물컵의 절반이 찼다. 나머지 반을 채우는 것은 일본의 몫”임을 강조했지만 아직 일본은 구체적 응답을 보이지 않고 있다.

일본 정부는 2021년 4월 일제 강점기에 징용 등의 여러 형태로 동원된 이들이 강제 노동을 한 것이 아니라는 견해를 각의(국무회의)에서 결정하고 이 입장을 국내외적으로 유지하고 있다. 하야시 요시마사 일본 외무상은 지난 9일 일본 중의원에 출석해 ‘강제 동원’이란 표현을 “적절하지 않다”고 답했다. 또 한·일청구권협정으로 완전하고 최종적으로 해결이 끝난 일이라고 말했다.

이런 점을 감안할 때 기시다 총리도 오는 16일 도쿄에서 개최될 예정인 윤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역사 문제에 새로운 사과를 하는 대신 역대 일본 내각의 입장을 계승한다는 입장을 표명할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일본 지지통신은 12일 '기시다 총리는 1998년 한·일 공동선언(김대중-오부치 선언) 등 역사 인식에 관한 역대 일본 내각의 입장을 계승한다고 표명하는 데 그칠 것'이라고 예상했다. 김대중-오부치 선언이 식민 지배에 대한 사과와 함께 미래 지향을 명기하고 있어 한·일관계의 기반으로 적절하다는 것이 일본의 여전한 인식이며, 일본 국내 보수파의 여론을 무시할 수 없다는 배경도 있다고 분석했다.

기시다 총리는 지난 6일 한국 정부가 강제징용 해법을 발표한 뒤 “한·일 공동선언을 비롯한 역대 내각의 역사 인식을 계승한다”고 밝혔을 뿐이다. 또 기시다 총리와 하야시 외무상 모두 새로운 사과나 반성이 아니라 과거 담화를 계승한다는 발표에서도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의 사죄’는 언급하지 않았다. 다시 사과를 표명해서 미래 지향적 관계를 끌어내도 한국이 또 뒤집을 가능성을 우려하기 때문이라는 것이 일본 측의 인식이다.

2015년 한·일 위안부 협상 당시 기시다 당시 외무상은 윤병세 당시 외교부 장관과 회담에서 합의를 타결하고 이를 공동기자회견에서 발표했다. 하지만 발표 이후 한국의 정권 교체로 위안부 합의가 사실상 백지화됐다고 일본 정부는 판단하고 있다.

정부는 한·일 과거사 문제를 둘러싼 여론이 단기간에 급반전되기는 어렵다는 인식 아래 일본과의 꾸준한 소통을 통해 일본 측의 호응을 점진적으로 유도하고 이를 바탕으로 여론 변화를 모색할 것으로 보인다. 외교부 고위당국자는 지난 10일 외신기자들을 만나 일본의 호응 시점에 대해 “언제라고 말하기 어렵지만 한·일 관계에 진전이 보이면 우리 여론도 이해할 수 있는 일본의 응답이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하지만 12년 만에 한·일 정상 간 셔틀외교가 재개되는 시점에 일본 측이 성의 있는 호응을 하지 않을 경우 모처럼만에 온기를 맞은 두 나라 관계에 또 다시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는 우려가 적지 않다.


박석호 기자 psh21@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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