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시 의지 부족·‘토목 카르텔’이 ‘쪼개기’ 불렀다 [난개발 위기 영도 워터프런트]

손희문 기자 moonsla@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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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개발 위기 영도 워터프런트] 하. 손 놓은 도시계획

청사진만 남발 ‘뒷수습’ 소홀
기초단체·사업자에 정책 떠넘겨
비대해진 토목직 인적 편제
‘우선 짓고 보자’식 계획 양산

워터프런트 재개발의 이상적인 모델로 평가받는 호주 시드니 ‘달링 하버’ 전경. 부산 영도 부스트벨트에도 주거·상업·관광·휴양 시설을 조화롭게 계획하고 유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신화연합뉴스 워터프런트 재개발의 이상적인 모델로 평가받는 호주 시드니 ‘달링 하버’ 전경. 부산 영도 부스트벨트에도 주거·상업·관광·휴양 시설을 조화롭게 계획하고 유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신화연합뉴스

부산 영도구 ‘해양 신산업 부스트벨트’ 조성 사업 대상지의 단일 핵심 부지 소유자가 20여 명의 지주로 쪼개진 사실이 확인되자 난개발을 저지하려는 부산시의 의지 부족이 화를 부른 게 아니냐는 비판이 거세다.

지역 전문가들은 시가 부스트벨트처럼 중차대한 도시 재개발 프로젝트를 수행하려면 계획 공개 이후 체계적인 관리 계획을 신속하게 수립해 편법적인 시도를 사전에 차단해야 한다는 지적을 내놓는다.

지지부진한 부스트벨트 사례에서 보듯 도심과 연안의 조화를 유도하는 제대로 된 시 차원의 도시관리계획이 빛을 발하려면 시가 팔짱만 끼고 사업자의 개발 계획만을 기다릴 게 아니라 명확한 개발 방향과 기준을 제시하며 더욱 적극적으로 뛰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부산 영도구 청학동·동심동 일대에 자리잡은 ‘해양 신산업 부스트벨트’ 사업지 전경. 부스트벨트의 핵심 지역인 옛 송강중공업 1공장 부지에서 이른바 ‘지분 쪼개기’가 이뤄진 것으로 확인되면서 난개발 우려가 커지고 있다. 김종진 기자 kjj1761@ 부산 영도구 청학동·동심동 일대에 자리잡은 ‘해양 신산업 부스트벨트’ 사업지 전경. 부스트벨트의 핵심 지역인 옛 송강중공업 1공장 부지에서 이른바 ‘지분 쪼개기’가 이뤄진 것으로 확인되면서 난개발 우려가 커지고 있다. 김종진 기자 kjj1761@


■부스트벨트에 투영된 부산 도시계획

시는 2019년 11월 희망찬 영도구 부스트벨트 조성 계획을 공개했다. 하지만 이후 3년이 넘는 시간을 보내고도 실질적인 후속 조치를 이루지 못했다.

이처럼 시는 주요 도시계획 프로젝트에서 시민이 체감할 만한 속도감과 성과를 보여 주지 못했다. 오히려 청사진을 남발하며 뒷수습에 소홀한 시가 주요 지역에서는 구·군에 계획 수립을 떠넘기거나 민간사업자에게 맡겨 버린다는 지탄을 피하지 못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사하구 다대포 옛 한진중공업 부지를 둘러싼 ‘공공기여협상제’다. 공공기여협상제는 민간사업자가 개발안을 제출하면 시나 구청이 검토해 인센티브를 주는 대신 기부채납 등을 통해 공공성을 확보하는 방안이다. 이 경우 시가 적극적으로 개발 방향과 기준을 제시하는 것이 아닌데다 다른 비교 계획 없이 사업자의 제안서만을 토대로 검토할 수밖에 없어 특혜 시비와 공공성 훼손 논란이 매번 반복된다.

서울시의 경우 지구단위계획 최초 수립을 시가 전담한다. 중요지역 재정비도 시가 직접 진행할 만큼 도시계획에 적극성을 보인다. 서울시는 지난 9일 ‘그레이트 한강 프로젝트 추진계획’을 발표했다. 시 주도로 한강 변 핵심 거점에 도시혁신 구역을 적용해 상업·업무·문화지구를 조성하고, 친수공간 조성, 수상이용 활성화 등을 추진하는 계획을 내놓았다.

지역 사정에 밝은 한 도시계획 전문가는 “서울의 경우 지구단위계획을 수립하지 않은 곳이 없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라며 “도시 차원에서 중요성이 높은 장소라면 공공이 먼저 기본 그림을 제시하고, 어떤 지역을 어떻게 발전시키겠다고 개별 토지 소유주에게 신호를 줘 적정한 개발을 유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이 같은 도시관리계획이 ‘계획을 위한 계획’이 되어선 안 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계획만 세우고 이행과 관리가 부실하면 시의 도시계획 행정 자체의 신뢰가 깨진다는 것이다. 일례로 해운대구 엘시티의 경우 시의 도시계획과 사업계획이 수차례 변경됐다. 당초 이곳에는 해운대 관광특구로 개발한다는 상위계획이 있었지만 이러한 규정을 초월해 건물이 들어선 탓에 현재까지도 ‘부산 해안의 대표적인 난개발’ ‘빌딩 병풍’이라는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해운대구 센텀·마린시티와 남구 용호동 W 부지 등도 당초 워터프런트나 테마파크, 산업단지, 관광·업무지구 등을 조성한다던 도시계획은 누더기로 변하고 아파트촌으로 전락한 대표적인 사례다.

■철옹성 된 부산시 ‘토목 카르텔’

이런 동맥경화 현상의 배경으로는 ‘토목 카르텔’로 불리울 만큼 토목직 집단이 비대해진 시의 인력 편제가 지목된다. 시 소속 토목직 공무원은 거대조직이 된 데 반해 도시계획직 공무원은 소수에 불과하다. 도시의 방향성과 철학,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가 녹아든 미래지향적 도시계획보다는 ‘우선 짓고 보자’는 식이 될 수밖에 없는 인적 구성이다.

미국 등 선진국의 지자체는 전문적인 경력을 보유한 도시계획 공무원이 시민 참여 등을 통해 큰 그림을 그리고, 토목·건축 담당 공무원은 이를 수행하는 손발이 되는 구조를 가동한 지 오래다.

〈부산일보〉 취재진 확인 결과, 실제 시 소속 토목직은 도시계획직보다 100배 이상 많다. 지난 10일 기준 시 소속 도시계획 인력은 5명인데 반해 일반토목 인력은 536명으로 확인됐다. 토목과 직간접적 관련이 있는 건축·지적·측지 직렬까지 합하면 729명으로 도시계획직보다 약 146배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구청까지 범위를 확대하면 더욱 심각한 실정이다. 시와 16개 구·군의 도시계획직 공무원 수는 12명이지만 일반토목·건축·지적·측지 직렬 공무원 수는 1827명으로 약 152배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임종철 부산대학교 토목공학과 명예교수는 “토목직의 현장 수요가 많다고 해도 실제 도시계획이 가지는 위상과 중요성에 비해 시의 인력 구조는 쏠림현상이 심한 상황”이라며 “실제로 도시계획 업무가 위축되는 등 불합리한 부분이 있다면 면밀하게 확인하고 점검한 뒤 바로잡아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손희문 기자 moonsla@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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