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점검 대상이었지만 누구도 아이 행방 몰랐다 [사건의 재구성]

김백상 기자 k103@busan.com , 안준영 기자 jyoung@busan.com , 나웅기 기자 wonggy@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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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살 딸과 부산 지인 집 더부살이
생활비 요구, 성매매 강요받아
정신적 의존… 돈 고스란히 넘겨
이유 없이 자녀 마구 때리고 굶겨
전입 신고 안 해 공공 보호망 빠져
학대 멈추고 아이 살릴 기회 놓쳐

지난해 12월 20대 친모가 아동학대 끝에 의식을 잃은 4살 딸 아이를 안고 병원 응급실로 들어가는 장면. 부산일보DB 지난해 12월 20대 친모가 아동학대 끝에 의식을 잃은 4살 딸 아이를 안고 병원 응급실로 들어가는 장면. 부산일보DB

지난해 12월 아동학대 끝에 뼈만 앙상한 채 숨진 4세 여아의 죽음(부산일보 3월 20일 자 6면 등 보도)은 우리 사회 여러 부조리와 모순이 빚어낸 비극이었다. 어른들의 무책임과 탐욕, 은밀해지고 광범해지는 성매매, 여전히 허술한 아동보호망 등이 맞물린 결과를 가장 연약했던 어린 생명이 떠안은 것이다.

20일 경찰에 따르면 부산경찰청은 친모 A 씨를 아동학대살인 등 혐의로, 동거녀 B 씨를 아동학대치사·상습아동학대·성매매 강요 등 혐의로 구속송치한 데 이어, B 씨의 남편도 아동학대방조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2년여간 한 집안에 동거하던 성인 모두에게 여아의 죽음에 대한 책임이 인정된 것이다.

2020년 9월 경북 거주자였던 20대 친모 A 씨는 부산 B 씨의 집으로 딸 C 양과 함께 들어왔다. A 씨는 가정 학대와 경제적 곤란 등으로 힘겨워했는데, B 씨가 남편이 있음에도 선뜻 자신의 집에 대피처를 마련해 준 것이다. 두 사람은 모두 20대로, 인터넷 육아 관련 카페에서 알게 됐다. 육아 정보를 나누던 인연이 아동학대로 끝난 셈이다.

동거기간 A 씨에게 B 씨는 세상을 통하는 유일한 통로가 됐다. 가족, 친구 등과는 이미 단절된 상태였고, 부산에는 별다른 지인도 없었다. 당시 C 양이 2세에 불과해, 외부 활동을 할 상황이 아니었다.

하지만 곧 B 씨는 생활비를 요구했다. 경제적으로 무능했던 A 씨가 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았고, 결국 생활비 요구는 성매매 강요로 이어졌다. 광범위하게 퍼진 온라인 성매매는 마음만 먹으면 쉽게 접근해 큰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SNS, 스마트폰 앱을 통한 개인 간 성매매는 은밀한 방식으로 이뤄져 단속도 쉽지 않다. 그러다 보니 수요가 상당히 많고, 실제로 A 씨가 B 씨의 요구에 응한 뒤 이들에게 연락을 하는 남성들은 넘쳐났다.

단기간에 쉽게 돈을 벌 수 있게 되자, 성매매 강요는 멈추지 않았다. A 씨는 하루에도 수차례 성매매를 하기에 이르렀고, 매달 수백만 원 이상의 돈이 들어 왔다. 2년 남짓 1억 2000만 원가량 규모로 성매매가 이뤄졌다. 이 돈은 B 씨가 직접 관리하며 생활비와 빚 변제로 썼다. A 씨가 별도로 받은 돈은 극히 일부였다.

A 씨가 성매매로 혹사당하면서도 경제적 이득을 전적으로 B 씨에게 넘긴 건, 정신적으로 크게 의존하는 일명 ‘가스라이팅’ 상태였기 때문이다. 지난 10일 A 씨의 결심 공판에서 변호인은 “A 씨는 불우한 가정 환경으로 인해서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가족이나 친구가 전혀 없었다”고 정신적 의존 상태를 설명했다.

육체적·정서적으로 매우 황폐해진 A 씨의 스트레스는 C 양으로 향했다. 동거가 시작된 지 1년을 넘긴 2021년 11월 A 씨는 이유 없이 C 양을 때려 시신경이 손상돼 실명 상태에 이르게 했다. 지난해 6월부터는 하루 한 끼 분유를 탄 물을 주는 것으로 C 양의 식사를 대체했다. 이에 대해 검찰은 결심 공판에서 “부모, 아니 사람으로서 할 수 있는 행동인지 의문이다”며 외부 요인과 별개로 엄벌이 필요하다며 무기징역을 구형했다.

공공 아동 보호망이 학대를 중단시킬 수 있는 기회도 있었으나 작동하지는 못했다. 1년 이상 의료기록이 없던 C 양은 안전점검 대상이 돼, 지난해 6월 이전 거주지의 지자체에서 조사를 나섰으나 C 양을 만나지 못했다. 보건복지부 아동 안전 전수 대상에도 올라 수차례 조사가 이뤄졌지만, 역시 C 양의 상태를 확인할 수는 없었다. A 씨가 부산으로 오면서 전입 신고를 하지 않아 벌어진 일이다.

C 양은 지난해 12월 14일 숨졌다. 이날 오전 6시 자신의 물건에 자꾸 손을 댄다는 이유로 A 씨는 딸의 머리를 침대 프레임에 부딪히게 했다. C 양은 발작을 일으켰으나 별다른 조처가 없이 방치되다 12시간 정도 지나 숨졌다. C 양이 숨진 지 3개월 가량 지난 현 시점에서는 C 양의 죽음이 미성숙한 부모, 만연한 온라인 성매매, 은둔형 약자에 대한 부족한 복지망, 구멍 난 아동 보호망 등 여러 원인이 빚어낸 결과로 분석된다. 만일 이 중 하나만이라도 해결됐다면, C 양의 죽음만큼은 피할 수 있었을 것으로도 보인다.


김백상 기자 k103@busan.com , 안준영 기자 jyoung@busan.com , 나웅기 기자 wonggy@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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