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 앞둔 우리 강아지, 얼마나 아팠을까”

안준영 기자 jyoung@busan.com , 나웅기 기자 wonggy@busan.com , 김준현 기자 joon@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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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도 등굣길 참변 초등생 부친
“선물 이제 전해 줄 수도 없다…
등교 때 업체에 주의만 줬어도”
무책임한 행정에 비통한 심정
추모 벽에 먹먹한 글 쓴 친언니
“몇 시간 울어도 돌아오지 않네”

열 살 초등학생의 목숨을 앗아간 부산 영도구 청학동 어린이보호구역 참사 현장에 1일 숨진 A 양의 언니가 쓴 추모의 글이 붙어 있다. 사고는 지난달 28일 하역 작업 중 지게차에서 떨어진 1.7t짜리 대형 어망실이 초등학생 3명과 30대 여성 1명 등 4명을 덮쳐 발생했다. 김종진 기자 kjj1761@ 열 살 초등학생의 목숨을 앗아간 부산 영도구 청학동 어린이보호구역 참사 현장에 1일 숨진 A 양의 언니가 쓴 추모의 글이 붙어 있다. 사고는 지난달 28일 하역 작업 중 지게차에서 떨어진 1.7t짜리 대형 어망실이 초등학생 3명과 30대 여성 1명 등 4명을 덮쳐 발생했다. 김종진 기자 kjj1761@

“CCTV가 있었는데 어린이보호구역 불법 주정차를 제지하지 않았다는 게 말이나 됩니까.”

지난달 28일 부산 영도구의 한 어린이보호구역에서 1.7t짜리 대형 원형 어망실에 치여 사망한 A(10) 양의 아버지는 〈부산일보〉 취재진에게 딸을 잃은 심정을 전했다. 사고의 위험성이 지속적으로 제기됐던 곳이었지만 뒷짐만 지고 있던 당국의 무책임한 행정에 아버지는 연신 가슴을 내리쳤다.

아버지 B 씨는 “해당 업체가 불법 주정차하고 하역하던 장소 앞에는 CCTV가 있었다. 그걸 모니터링하는 지자체 인력도 있었다”며 “아이들이 등·하교하는 시간만이라도 지자체에서 사람을 보내 업체에 주의를 줬다면 이런 불상사가 일어났겠느냐”고 토로했다. 실제 사건 현장에는 치안 상황, 쓰레기 무단 투기 등을 24시간 촬영·녹화하는 ‘다목적 CCTV’가 설치돼 촬영하고 있었다. 이에 대해 영도구청 측은 “해당 도로에 불법 주정차 단속 기능을 하는 CCTV 카메라는 없다”고 대답했다.

B 씨는 “사고가 일어나기 불과 3주 전 학교에서 불법 주정차를 포함해 안전한 통학로 관련 회의를 한 것으로 안다”며 “그런데도 참변은 벌어졌다. 이런 상황이라면 앞으로 다른 아이들의 안전도 담보할 수 없을 것”이라고 토로했다. B 씨는 딸과의 추억을 떠올리면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고통을 느끼게 된다고 털어놨다. 그는 “엄마에게 가서 안아 달라고 강아지처럼 기다리면 아이 엄마가 가슴이 터지도록 한참 안아 줬다”며 “그 모습을 보며 매일 평범한 일상에 행복했다”고 밝혔다.

참변은 딸의 생일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 일어났다. 곱게 포장된 선물은 끝내 딸에게 전달하지 못했다. B 씨는 “미리 생일 선물을 준비해서 회사에 보관했지만 이제 전해 줄 수도 없다”며 “사고 다음 날은 딸이 태권도 심사를 받는 날이었다. 관장이 빈소에 도복과 품띠를 가져와 많이 울었다”고 전했다. 그는 “손에 작은 가시가 박혀도 울던 아이였다. 얼마나 아팠을지 가슴이 찢어진다”며 “우리 강아지가 없으니 집이 너무 조용하고 적막해 냉장고 소리만 들린다”고 말했다.

A 양의 언니도 사고지점 벽면에 추모의 글을 남겨 주위를 가슴 아프게 했다. 언니는 '너한테 이렇게 길게 편지를 쓰는 건 처음이다. 거긴 어때, 살 만해?'라며 '엄마랑 아빠랑 나랑 주변 사람이 많이 추모하고 있다'며 운을 뗐다.

언니는 '둘이 같이 자기 전에, 내가 조명을 딸깍거린다고 네가 시끄럽다며 짜증을 냈잖아'라며 '그때 정말 재밌었는데 이제 상대해 줄 사람이 없어 너무 쓸쓸하고 속상하다. 곧 있으면 생일인데 네가 없다는 게 실감이 안 난다'고 적었다. 이어 '아직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은데 너무 춥다'며 '그때 학교에 가기 전에 너를 붙잡을 걸 후회도 많이 했다. 몇 시간 동안 울어도 돌아오지 않더라. 사랑하고 잘 지내'라고 글을 마쳤다.

한편 지난달 28일 오전 8시 22분 영도구 청학동 한 어망 제조업체 앞 도로에서 1.7t짜리 대형 원형 어망실이 하역 작업 중 지게차에서 떨어져 170여m 정도 내리막길을 빠른 속도로 굴러가 초등학생 3명과 30대 여성 1명 등 4명을 덮쳤다. 이 사고로 10세 여아가 숨졌고, 나머지 3명은 다쳤다.


안준영 기자 jyoung@busan.com , 나웅기 기자 wonggy@busan.com , 김준현 기자 joon@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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