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와 함께하는 고개와 길] 695. 망미고개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지극한 아름다움 찾아, 굽이굽이 시대를 넘었네

망미고개 전경. 지극한 아름다움을 찾아서 넘는 고개다. 어디에나 있으나 어디에도 없는 당신을 찾아서 누구는 수영에서 이 고개를 넘고 누구는 연산이나 양정에서 이 고개를 넘는다. 오른쪽에 부산병무청과 배산 산자락이 보인다. 박정화 사진가 제공 망미고개 전경. 지극한 아름다움을 찾아서 넘는 고개다. 어디에나 있으나 어디에도 없는 당신을 찾아서 누구는 수영에서 이 고개를 넘고 누구는 연산이나 양정에서 이 고개를 넘는다. 오른쪽에 부산병무청과 배산 산자락이 보인다. 박정화 사진가 제공

미(美)는 아름다움. 이 세상에 하나뿐일 수도 있는 지고하고 지순한 아름다움. 미는 어디에 있는가. 어디에 있어서 누구나 바라보게 하는가. 그러나 미는 어디에나 있고 어디에도 없다. 어디에나 있고 어디에도 없는 지고지순이 미다.

망미(望美)는 아름다움을 바라보는 것. 어디에나 있고 어디에도 없는 아름다움을 바라보는 것. 그리하여 누구는 눈으로 보고 누구는 마음으로 본다. 눈과 마음이 어찌 다르랴. 어디에나 있는 아름다움과 어디에도 없는 아름다움이 어찌 다르랴.


수영에서 연산·양정까지 이어지는 고개

금련산·배산이 고개 두고 마주 보고 있어

천년 전 노래한 고려가요 ‘정과정곡’

수영강 강변 정자서 지낸 시인의 ‘망미가’


금련산 둘레길에서 본 배산(위). 술잔을 뒤엎은 형상이다. 아래는 배산 영주암에서 본 망미동 일대. 오른쪽 산자락이 금련산이다. 금련산 둘레길에서 본 배산(위). 술잔을 뒤엎은 형상이다. 아래는 배산 영주암에서 본 망미동 일대. 오른쪽 산자락이 금련산이다.

아름다움은 모두 지극하다. 눈으로 보는 아름다움이 지극하고 마음으로 보는 아름다움이 지극하다. 이 세상 하나뿐인 당신이 그렇다. 눈으로 보는 당신이여. 마음으로 보는 당신이여. 어디에나 있고 어디에도 없는 당신이야말로 지극하다.

망미고개는 지극하다. 지극한 당신을 찾아서 넘는 고개다. 한달음에 넘기가 아쉬워 쉬엄쉬엄 넘고 곧바로 넘기가 아쉬워 굽이굽이 넘는다. 당장은 보이지 않아도 걸음걸음 당신이 있고 당장은 닿지 않아도 굽이굽이 당신이 있다.

어느 시인이 당신을 썼다. 강물 풀리면 배를 타고 당신은 오리라고. 당신은 오지 않더라도 편지는 오리라고, 그 시인보다 나는 열 배나 백 배나 행복하다. 당신과 나 사이에 강물은 얼지 않았으니. 이 고개만 넘으면 당신이 보이리니. 당신에게 닿으리니.

시인도 안다. 강물은 여전히 얼었고 강물 풀려서 배가 다녀도 당신도, 편지도 오지 않으리란 걸. 알면서도 시인은 기다리고 다음 날 또 기다린다. 오지 않는 당신이 아름답듯 오지 않는 당신, 보이지 않는 당신을 기다리는 시인은 또 얼마나 아름다운가.

나도 안다. 고개를 넘어도 당신이 보이지 않으리란 걸. 고개 너머 당신이 있지 않으리란 걸. 그걸 알면서도 망미를 넘고 또 넘는다. 누군가는 그런 나를 아름답게 볼 수도 있으리라. 설령 그렇다면 그 아름다움마저 당신에게 모두 드린다. 그리하여 더욱 지극해질 당신.

내 생각이 잘못일 수도 있다. 당신은 고개 너머 있는 게 아니라 고개 이쪽이나 저쪽에 있을 수 있지 않은가. 또는 방금 지나온 길에 있을 수도 있다. 보이는 아름다움이든 보이지 않는 아름다움이든 그것이 고개 너머 있다고만 생각한 나는 얼마나 아둔한가.

고개 양쪽은 산. 이쪽 산은 금련산, 저쪽 산은 배산. 이름 끝 자가 산인 나까지 산 셋이 고개 하나를 두고 망연자실이다. 앞으로만 보던 시선을 거두고 옆으로도 보고 뒤로도 본다. 지극한 아름다움을 놓치지나 않았는지. 진정으로 소중한 그 무엇을 지나치지나 않았는지 봤던 데를 또 본다.

금련산과 배산은 여러모로 가깝다. 고개 하나를 두고 마주보는 거리가 그렇고 내력이 엇비슷한 이름이 그렇다. 노을에 물든 산이 금빛 연꽃을 닮아 금련산(金蓮山)이고 뒤엎은 술잔처럼 생겨서 배산(盃山)이다. 술을 사랑하는 이라면 어느 누가 금빛 연꽃 산봉우리를 앞에 두고 술잔 들지 않으랴.

저 산 어딘가에 있지 싶은 당신. 당신이 술잔 들면 나는 연꽃 노을로 물들리. 당신이 연꽃 노을로 물들면 나는 술잔 들리. 가장 붉고 가장 진한 술을 담아 한 잔은 나에게, 한 잔은 당신에게 건네리라. 한 잔은 보이는 나에게, 한 잔은 보이지 않는 당신에게.

망미고개 이쪽 끝과 저쪽 끝은 수영과 연산 또는 양정. 수영에서 이 고개를 넘어 연산이나 양정으로 가고 연산이나 양정에서 이 고개를 넘어 수영으로 간다. 그러나 그 끝이 어찌 수영에만 이를 것이며 연산이나 양정에만 이를 것인가. 아름다움을 바라보고 걷는 망미. 망미고개의 끝은 아름다움이며 지극한 아름다움인 당신이다.

‘내 님이 그리워 우나니 산 접동새와 나는 비슷하요이다.’ 지극한 당신을 노래한 천 년 전 시인도 이 고개를 넘었다. 시인은 고갯길 외따로 떨어진 수영강 강변 정자에서 지냈다. 그가 지은 고려가요 정과정곡은 망미가(望美歌)였다. 이 세상 오직 하나뿐인 지극한 당신을 그리워하는 노래였다. 고개 너머엔 할아버지 묘소가 있었다. 성묘하러 고갯길 넘던 시인의 발소리, 숨소리는 지금도 고갯길 곳곳에 스며 있다.

천 년을 사이에 두고 지금 여기 시인도 고갯길 넘는다. 천 년 전 그때나 천 년 후 지금이나 달라진 건 없다. 고갯길 산은 여전히 배산이고 산을 바라보는 마음은 여전히 아련하다. 천년 세월. 달라진 것이 왜 없겠는가마는 같게 보면 같고 다르게 보면 다른 것. 보이는 것도 그렇고 보이지 않는 것도 그렇다.

보이는 당신. 보이지 않는 당신. 어디에나 있고 어디에도 없는 당신. 있다면 당신은 어디에 있는가. 고개 양쪽 산인가. 고개 이쪽 끝 수영 또는 저쪽 끝 연산이나 양정인가. 아니면 그 모두의 너머인가.

없다면 어디에 없는가. 고개 양쪽 산인가. 고개 이쪽 끝 수영 또는 저쪽 끝 연산이나 양정인가. 아니면 그 모두의 너머인가. 있는 데도 거기고 없는 데도 거기인 당신. 그리하여 당신은 어디에나 있고 어디에도 없다. 어디에도 없고 어디에나 있다.

망미고개는 지극한 아름다움을 찾아서 넘는 고개. 어디에도 없으나 어디에나 있는 당신을 찾아서 누구는 수영에서 이 고개를 넘고 누구는 연산이나 양정에서 이 고개를 넘는다. 고개와 고개를 이어서, 시대와 시대를 이어서, 사람과 사람을 이어서 당신과 나, 그리고 우리의 삶은 그렇게 면면히 이어진다.

▶가는 길=도시철도 2호선 망미역 8번 출구로 나와 배산역 쪽으로 가면 된다. 병무청 주차장에 있는 통일신라 추정 우물과 배산 자락 전통사찰 영주암 등이 명소다. 시내버스 5, 5-1, 20, 36, 51, 57, 62, 63, 131, 141번이 다닌다. -끝-

동길산 시인 dgs1116@hanmail.net


※이 기획은 부산시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의 도움을 받아 연재합니다.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