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치산 아버지는 사람과 역사의 진보를 믿는 좋은 사람이셨다”

최학림 선임기자 theo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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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 <아버지의 해방일지>로 제39회 요산김정한문학상 수상하는 정지아 작가
“어쩔 수 없는 ‘사정’이 있고, 밉든 곱든 ‘항꾼에’ ‘하염없이’ 견뎌내는 것, 그게 삶”

정지아 작가는 “빨치산 아버지는 사람을 믿고 역사의 진보를 믿었던 좋은 사람이셨다”고 했다. 정지아 제공 정지아 작가는 “빨치산 아버지는 사람을 믿고 역사의 진보를 믿었던 좋은 사람이셨다”고 했다. 정지아 제공

빨치산 전력의 아버지 장례식을 치르면서 아버지의 인간적 면모를 재발견한다는 휴머니즘 장편소설 <아버지의 해방일지>(창비)로 제39회 요산김정한문학상을 수상하는 정지아(57) 작가. 한반도를 짓눌렀던 거센 이념 대결을 이제는 넘어설 수 있고, 넘어서야 한다는 것을 새로운 어법으로 전망하고 제시하는 소설이다. 그와 서면 인터뷰를 했다.


-선생님은 김유정문학상 심훈문학대상 이효석문학상 등을 두루 수상했습니다. 요산김정한문학상 수상 소감을 다소 각별하게 한다면?

“‘사람답게 살아가라. 비록 고통스러울지라도 불의와 타협한다거나 굴복해서는 안된다. 그것은 사람이 갈 길이 아니다.’ 오래전 김정한 선생의 소설에서 읽은 이 구절이 아직도 제 마음에 남아 있습니다. 선생의 소설을 읽지 못했을 제 아버지가 늘 하셨던 말씀이기도 합니다. 그런 아버지의 삶을 다룬 <아버지의 해방일지>로 요산김정한문학상을 수상하게 되었다는 게 신기하고, 그만큼 더 기쁘기도 합니다.”

-작가가 단도직입적으로 말할 수 있는 이 소설의 한 마디 전언은 무엇입니까.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사정이 있다, 빨치산에게도 토벌대에게도, 별 볼일 없이 살아가는 나에게도. 뭐 이런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작가의 아버지는 지난 2008년 돌아가셨습니다. 작고 이후 14년 만에 이 소설이 나왔습니다. 표면적으로 보면 14년간 이 소설을 썼다는 것입니다. 어떤 숙성 과정을 거쳐 이 소설이 나온 것입니까. 아버지의 삶을 근엄하게 말할 수도 있었는데 경쾌하고 해학적인 문체로 풀어낸 것이 그 숙성 과정과 맞물릴 것 같습니다만 경쾌한 문체가 이 작품에서 취한 ‘전략적 문체’인지 아니면 작가 개인의 세계관 변모를 보여주고 담은 것인지 궁금합니다.

“이 시대에 빨치산 이야기를 하려면 어느 정도의 전략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사실 빨치산 이야기가 아니라 아버지 이야기이긴 합니다만 그 아버지가 빨치산 출신이니까요). 이데올로기 상처를 직접적으로 경험한 세대는 이제 사라져가고 있지 않습니까. 젊은 세대에게 이데올로기란 한없이 낯설고 먼 추상일 것이고요. 곧이곧대로 진지하게 전달해서는 아무도 귀를 기울이지 않을 거라 판단했고, 전략적으로 유쾌하게 해학적으로 쓰려 노력했습니다. 또 한편으로는 나이 들면서 깨친 바가 도움이 되기도 했습니다. 어려운 일을 어렵게 푼다고 꼭 좋은 게 아니더라고요. 때로는 전향적인 방향 전환이 새로운 돌파구가 되기도 하죠. 어쩌면 저 스스로 이데올로기의 무게로부터 벗어난 흔적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좀 근엄한 질문입니다만, 위 질문과 연관해 분단된 한반도, 이념 대결이 여전한 우리는 과연 어떠한 단계로 나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생각이 있으시면 들려주십시오.

“분단상태에서 이념 대결에 아름다운 결과가 있겠습니까. 그러나 한치 앞도 모르는 게 인생이고, 세상사 같습니다. 지금으로서는 통일이 요원한 일 같지만 모르죠, 어느 날 갑자기 통일이 될지도. 분명 암이었는데, 과학적으로는 설명할 길이 없이 완치된 사람도 알고 있습니다. 통일이나 이념 대결이 그렇듯 느닷없이 해결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이 소설은 전작 <빨치산의 딸> 이후 34년 만의 장편소설입니다. 1995년 등단까지 했는데 왜 그간 장편소설을 쓰지 못했는지, 쓸 수 없었는지, 그 점이 무척 궁금합니다. 어떻게 보면 <빨치산의 딸>도, 이번 <아버지의 해방일지>도 아버지 어머니 이야기입니다. 작가의 장편은 아버지 이야기로 연결되고 있다는 점이 보입니다.

“제가 부족해서죠 뭐. 장편을 쓸만한 세계관이나 통찰력을 갖고 있지 않았을 겁니다. 몇 번 시도해본 적이 있었는데 중도 포기했습니다. <빨치산의 딸>은 엄밀하게 장편소설이 아니고, 실록소설입니다. 거기에는 한치의 허구도 포함되어 있지 않으니까요. 저는 체화된 이야기가 아니면 쓰지 못하는 못난 작가이고, 그래서 긴 세월이 필요했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게 억울하거나 답답하지는 않습니다. 아직 오십 대이고 살아야 할 기나긴 날이 있으니까요.”

-이 소설은 아버지의 해방일지이면서 나의 해방일지처럼 읽힙니다. 1인칭 시점의 이 소설은 그 살을 아버지의 삶으로 삼으면서 그 뼈는 나의 해방이 아닌가도 싶습니다. 아버지의 삶을 재발견하면서, 수긍·긍정하고 새롭게 보고, 위무하고 싸안으면서 결국에는 1인칭 나 속의 매듭을 해방시키는 게 아닌가 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아버지의 해방일지는 나의 해방일지이면서, 그 해방은 내가 아버지와 나를 해방시킨다는 여러 의미가 있는 것 같습니다.

“네. 더 이상 제가 덧붙일 말이 없습니다. 사실상 아버지는 이데올로기에 매인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아버지는 주어진 삶을 자기 신념에 따라 반쪽짜리일지언정 묵묵히 살아냈을 뿐입니다. 그런 아버지를 ‘빨치산’으로 못 박고, 스스로를 ‘빨치산의 딸’로 못 박은 건 바로 저였습니다. 그 깨달음이 이번 소설을 가능케 했습니다. 그러니까 내가 아버지와 나를 해방시킨다는 기자님의 판단이 옳습니다.”

-관련된 질문입니다. 빨치산 아버지를 자랑스러워했습니까, 미워했습니까. 아버지의 빨치산 투쟁은 자랑스러워했으나 그 투쟁의 전력으로 딸의 족쇄가 된 아버지를 미워했던 것입니까. 그 무거운 족쇄의 세월을 작가는 어떻게 견디셨나요. 그냥 그렇게 당하고서 살았던 것입니까. 나아가, 계속 빨치산의 딸이라는 족쇄를 채우는 남한 사회는 어떤 사회이고, 거기에 드러워진 한반도 모순은 무엇이라고 해야 할는지요. 이제 아버지를 해방시키면서 그 무거운 족쇄의 짐을 어느 정도 벗어내셨나요.

“소설 속 주인공 ‘아리’는 아버지를 화석화된 사회주의자로 삐딱하게 보면서 원망하기도 하지만 저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물론 중고등학교 때까지는 원망도 많이 했죠. 대학에 들어가 현대사를 공부하고 이해하면서부터 아버지를 원망해본 적도, 빨치산의 딸이라는 족쇄를 괴로워한 적도 없습니다. 누구의 삶에나 무게가 있으니까요. 빨치산의 딸이라는 건 조금 특수하게 지워진, 그러나 누구나 지고 있는 어떤 짐이었을 뿐입니다.

우리 사회의 모순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문제없는 세상이 어디 있겠습니까? 강대국 사이에서 힘없는 한반도가 분단에 이르게 되었고, 동족상잔이라는 전대미문의 비극을 경험했지만, 저는 세상에 나쁘기만 한 일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 비극이 우리를 독하게 만들었고, 이를 갈아 마시게 만들었고, 그 결과 유례없는 발전을 이루었죠. 물론 그 비극 때문에 이념 대결은 더 심각해지고 증오가 더 깊어졌지만요. 그 또한 흐르는 세월 속에서 희석될 수밖에 없을 거라 낙관하고 있습니다. 이 소설이 작은 도움이나마 된다면 참 좋겠습니다.”

“누구에게나 어쩔 수 없는 ‘사정’이 있고, 밉든 곱든 ‘항꾼에’ ‘하염없이’ 견뎌내는 것, 그것이 우리네 보통 사람들의 인생이 아닌가 싶습니다.” 정지아 제공 “누구에게나 어쩔 수 없는 ‘사정’이 있고, 밉든 곱든 ‘항꾼에’ ‘하염없이’ 견뎌내는 것, 그것이 우리네 보통 사람들의 인생이 아닌가 싶습니다.” 정지아 제공

-마지막 장면 아버지의 뼈를 아버지가 사신 곳곳에 뿌렸다는 것은, 저로서는 다소 놀라운 장면이었습니다. 백운산에 갔다가 돌아서는 갑작스러운 장면의 설명이 부족하다는 독후감도 없지 않고, 가장 궁금한 것은 정말 아버지 유골을 구례 곳곳에 뿌렸는가 하는 겁니다. 그런 장례 방법이 있는지, 그것은 소설적 장치인지 궁금합니다. 또, 아 그것은 법에 저촉되지는 않습니까(ㅎㅎ).

“소설적 장치입니다. 하하. 사실 소설처럼 아버지가 평생 살아온 공간에 아버지의 유골을 뿌리고 싶었습니다만 집안 어르신들이 받을 충격 때문에 차마 그러지는 못했습니다. 아버지는 좋아하셨을 것 같습니다만. 진짜 제 아버지는 철저한 유물론자였거든요.

소설에서 장례를 치르러 간 백운산에서 갑자기 돌아서는 장면의 경우, 독자들이 미흡하다고 느꼈다면 미흡한 것일 텐데, 저로서는 전날 밤, 윤학수라는 아버지의 지인을 통해 들은 일화가 충분한 설명이 될 거라고 판단했습니다. 사람을 사랑하고 사람 속에서 ‘가오’도 잡고 싶었던 아버지가 독야청청 산속에 묻히길 원하지 않았을 테니까요. 자신이 사랑했던, 평생 함께 살았던 사람들 속에 한 점 먼지로나마 남아 있길 원하셨을 겁니다. 그런 아버지의 면모를 보여준 윤학수와의 일화가 세상으로의 회귀를 설명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조금 미흡했던 모양입니다.”

-심사위원(조갑상 정찬 구모룡 정영선 허정) 중 한 분은, 팔 년간 사귄 변호사 남자와 결혼 직전에 파혼에 이른 소설 속 얘기가 사실인지 궁금해하셨습니다. 그 부분은 작가의 실제 경험 속에서 어디까지가 사실인가요?

“하하. 모두 허구입니다. 출세한 한 선배가 빨치산의 딸이라서 엄두를 내지 못했다는 고백을 한 적은 있습니다만. 이 책을 거의 다큐로 읽는 분들이 많은데, 아버지와 어머니의 일화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허구입니다. 제발 소설로 읽어주셔요!”

-소설에서 작가가 의미를 부여한 단어로 ‘사정’ ‘하염없다’ ‘항꾼에(함께)’가 읽혔습니다. 이걸 연결시켜 한 말씀을 해주실 수 있을까요.

“누구에게나 어쩔 수 없는 ‘사정’이 있고, 밉든 곱든 ‘항꾼에’ ‘하염없이’ 견뎌내는 것, 그것이 우리네 보통 사람들의 인생이 아닌가 싶습니다.”

-작가 아버지의 말씀 ‘사램이 오죽하면 글겄나’도 오래 남습니다. 과연 ‘사람’ ‘사램’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못난 작가에게 뭐 이런 심오한 질문을! 알아도 알아도 모르겠는 것이 사람인데요. 사람을 죽일 수도 있고 살릴 수도 있는 것이 사람이죠. 사람의 스펙트럼이란 그리도 넓어서, 제가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다만 작가로서 조금 더 넓게 이해하려고 애쓸 뿐입니다.”

-고향 구례에는 언제 귀향하셨고, 그곳의 삶은 어떠하며, 또 구례는 어떤 곳인지요.

“아버지 돌아가시고 홀로 남은 어머니 때문에 2011년 귀향했구요. ‘아버지와 어머니의 사람들’ 속에서 넘치는 사랑을 받으며 살고 있습니다. 구례는 여순사건부터 빨치산이 소멸될 때까지 7년 가까이 이념 대결의 각축장이었습니다. 서로에게 총구를 겨눴던 사람들이 또 다른 세월을 ‘항꾼에’ 살아내고 있는 곳이기도 하죠. 이곳에서 그런 분들과 ‘항꾼에’ 살아온 경험이 <아버지의 해방일지>를 가능케 했습니다.”

-직접 듣고 싶습니다. 아버지는 어떤 분이셨습니까.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는 날, 아버지에게 물었습니다. 아버지가 목숨을 걸었던 이데올로기가 무너지는 것을 지켜보는 소감이 어떠시냐고. 아버지가 대답하셨습니다. “나는 사회주의를 위해 목숨을 걸지 않았다. 사람은 목숨이 붙어 있는 한 지금보다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싸워야 한다. 그 시절에는 그 대안이 사회주의였을 뿐이다.” 아버지는 사람을 믿고 역사의 진보를 믿는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이번 소설에 대한 반응이 뜨거운 것 같습니다. 어떤 점을 새삼 느끼고, 즐기고, 감사하고 계시는지요.

“이렇게 많은 사람이 제 글에 공감한다는 게 경이로울 뿐입니다. 공감이라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거든요. 글을 잘 쓰는 작가들이 많습니다만, 많은 사람에게 읽힐 기회를 얻는 작가는 많지 않습니다. 저는 참으로 운이 좋은 것 같습니다. 이 운이 끝나고 나면 어떤 글을 어떻게 써야 할지 덜컥 겁이 나기도 합니다.”

-부산에는 오신 적이 있습니까. 부산과의 인연은 없으시나요.

“고등학교 때 제가 좋아했던 친구가 졸업도 하기 전에 사상 신발공장 경리가 되어 떠났습니다. 그 친구가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을지 부산에 가면 늘 생각이 납니다. 아주 오래전, 연인과 태종대를 걸었던 적도 있고요. 아파트가 들어서기 전의 해운대, 달맞이길, 용두산 공원, 1989년의 부산이 아직도 기억 속에 생생합니다. 수정동에서 몇 달 살았거든요. 그 시절 부산은 빈곤과 화려함이 뒤섞인, 역동적이고 매력적인 곳이었습니다. 밀면도 좋아하고요. 부산 사투리를 아주 예쁘게 하는 친구를 부러워했던 적도 있습니다.”

-꼭 하시고 싶은 말씀은.

“주어진 제몫의 글을 열심히 써나가겠습니다. 많은 분들께 정말 감사합니다.”

제39회 요산김정한문학상 수상작 장편소설 <아버지의 해방일지>. 창비 제공 제39회 요산김정한문학상 수상작 장편소설 <아버지의 해방일지>. 창비 제공



최학림 선임기자 theo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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