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찾은 태권도 원로 '그랜드마스터' 권재화 총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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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미국처럼 성인 붐비는 도장 만들어야"

"무예인 태권도는 나이의 한계 없이 평생 수련할 수 있습니다. 특히 하나밖에 없는 소중한 육체와 정신을 단련하는데 도와줍니다. 태권도를 통해 인간의 가치를 드높여야 합니다."

1965년부터 해외 돌며 태권도 시범
'가라데보다 우수' 증명 위해 격파 매진
본인 이름 딴 도장 전 세계 200여 개
"육체·정신 단련에 최적의 운동"

'신의 손' '독일 태권도의 개척자' '미국 태권도 역사의 중심' 등으로 불리는 태권도 원로이며, 그랜드마스터인 권재화(77) 총관장이 지난 24일 부산일보 등 부산을 방문했다. 권 관장은 "성묘도 하고 제자와 후배, 친구들을 보기 위해 일시 귀국했다"고 말했다.

부산 서구에서 태어난 권 관장은 6·25전쟁 때 피란민 중 한 사람이 선보인 태권도의 위력에 반해 태권도를 배우기 시작했다. 4~5년간 배운 후 도장을 열어 제자를 양성하는 한편 수련을 이어갔다.

1964년 동아대 태권도선수 코치 생활을 하면서 부산일보 정경부 체육담당 기자로 1년 6개월간 활약했다. 이때 군에서 알게 된, 태권도 친선사절단 최홍희 단장에 의해 사절단 선수 4명 중 한 명으로 발탁됐다.

1965년 독일, 이탈리아, 이집트, 터키,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등 6개국에서 한 달간 시범을 보였다. 이듬해 독일 뮌헨의 한 무술학교에서 사범으로 와 달라는 초청을 받아 독일로 건너갔다.

"유럽, 특히 독일인은 형식보단 실전을 중시합니다. 그래서 격파 시범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수없이 맨손으로 차돌 등을 격파했다. 휘어져 버린 손가락과 온통 흉터투성이인 그의 양손은 그가 얼마나 격파에 매진했는지 보여주는 증거.

권 관장은 또 오래 전부터 독일에 진출해 있던 일본 가라데보다 태권도가 더 우수하다는 점을 보여주기 위해 고심했다. 고민 끝에 정권과 손날 대신 엄지 쪽, 즉 역수로 차돌 등을 격파해 독일인을 놀라게 했다.

권 관장은 "당시 독일의 한 TV방송에서 카메라로 격파 장면을 포착하지 못해 BMW연구소에 의뢰해 자동차 충돌실험 장비를 이용해 촬영했던 게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실험한 결과 권 관장이 보인 격파술은 속도와 파괴력 등에서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권 관장은 "이후 태권도 보급에 자신감을 갖게 됐다"며 "태권도 수련을 통해 인간의 정신적인 힘이 얼마나 강해질 수 있는지 객관적인 인증을 받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권 관장은 이런 와중에 1973년 미국에 태권도를 보급하기 위해 뉴욕으로 떠났다. 권 관장이 뉴욕에 도착하자 신문, 잡지, 방송 등에서 집중 조명됐다. 그는 미국에서도 격파 시범을 이어갔다.

현재 권 관장과 그의 제자들이 만든 '그랜드마스터 권재화 태권도 도장'은 유럽과 미국 등에 200여 개에 이른다. "제자의 제자가 만든 도장은 셀 수 없을 정도"라는 게 권 관장의 설명.

권 관장은 "요즘 국내 태권도는 초등학생만 배우고 성인 수강생은 거의 없는 반면 미국과 독일에서는 성인 수강생이 늘고 있다"며 "국내 성인도 태권도를 즐길 수 있게 노력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임원철 기자 wclim@busan.com

사진=정종회 기자 jj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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