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고당도’ 강말금 “체력과 마음 돌보며 오래 연기하고 싶어요”
배우 강말금이 영화 ‘고당도’로 관객과 만난다. 지난 10일 개봉한 ‘고당도’는 아버지의 부의금으로 조카의 의대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 가짜 장례식을 치르는 가족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으로, 권용재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다.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 쌓여온 책임과 갈등, 애증의 감정을 희비극의 형식으로 풀어낸다. 최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강말금은 “무겁지만 동시에 가볍게 다가갈 수 있는 이야기”라며 “편안한 마음으로 본 뒤 각자 하나씩 마음에 남는 감정을 가져갈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강말금은 극 중 병환에 있는 아버지를 간병하며 집안의 중심에서 버티는 장녀 선영 역을 맡았다. 선영은 일련의 사건을 겪으며 현실적인 판단과 감정 사이에서 끊임없이 흔들린다. 영화 ‘고당도’가 던지는 가족의 무게는 강말금의 연기를 지나며 비극도 희극도 아닌, 우리 삶과 닮은 얼굴로 가만히 드러난다. 이 작품은 단편영화 ‘조의’를 발전시켜 만들었는데, 강말금은 이 단편에도 출연했었다. 그는 “단편 때는 차갑고 냉소적인 결이 강했다면, 장편에서는 의미와 이야기의 층위가 훨씬 풍성해졌다”며 “간호사 역할을 블로그나 영상을 찾아보면서 실제 디테일을 살리려고 노력했다”고 말했다.강말금은 이 작품을 연기하며 자연스레 가족을 떠올렸다고 했다. 그는 “선영을 연기하면서 친언니 생각을 많이 했다”고 털어놨다. 병환에 있는 부모를 돌보며 생계를 책임졌던 예전 언니의 모습이 선영과 겹쳐 보였기 때문이다. 강말금은 “저는 그때 책임에서 한 발 떨어져 있었고, 그 부담을 언니가 대신 짊어졌다”며 “그래서 선영을 연기하며 미안함과 고마움이 동시에 올라왔다”고 말했다. “저는 사채만 안 썼다뿐이지 남동생 '일회' 역에 가까워요. 언니도 일을 관두고 싶었을 텐데, 제가 연극을 하고 있으니 일을 그만두지도 못하고 어머니가 아프실 때 병간호도 도맡아 했죠. 그래서 그런지 영화를 찍으면서 언니가 많이 생각나더라고요.”연출을 맡은 권 감독에 대한 신뢰도 작품 선택의 중요한 이유였다. 강말금은 “단편을 할 때 감독님이 20대 중반이었는데 그때부터 감독님의 시선이 참 좋았다”며 “젊은 감독님이 인간 군상에 관심이 있고, 그걸 깊이 있게 다룰 수 있는 점이 인상적이더라”고 말했다. 그는 “이번에 두 번째로 같이 작품을 해보니까 계속 진화하고 있는 느낌을 받았고, 그 부분이 멋있었다”면서 “앞으로 어디까지 진화할지 기대하게 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기본적으로 감독님은 바탕이 정말 선한 사람이에요. 그게 현장 분위기는 물론이고 작품 속 사람을 바라보는 시선에도 드러났죠. 단정하고 부드러운 리더십을 가진 분이라 여러모로 기대가 많이 돼요.”부산에서 나고 자란 강말금은 부산대 국문과를 졸업한 뒤 부산에서 직장 생활을 하다 서른 살에 연기를 시작했다. 연극 ‘꼬메디아’(2007)로 데뷔한 그는 이후 브라운관과 스크린까지 활동 폭을 넓혔다. 2020년 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로 그해 영화상 신인상을 휩쓴 뒤엔 영화 ‘행복의 나라’ ‘로비’, 드라마 ‘나쁜엄마’ ‘폭싹 속았수다’ ‘경도를 기다리며’ 등에 출연하며 굵직한 연기를 선보이고 있다.한 편의 영화가 끝난 뒤에도 인물의 잔상을 오래 남게 하는 건 강말금이 가진 힘이다. 그런 그가 요즘 가진 목표는 체력과 마음을 돌보며 오래 연기하는 것이다. 강말금은 “연기는 결국 누군가의 삶을 대신 건너는 일”이라며 “제가 잘 보이기보다는, 그 사람이 왜 그렇게 살았는지를 관객이 이해할 수 있게 만드는 배우로 남고 싶다”고 말했다. 그가 앞으로 쌓아갈 연기의 시간이 더욱 기대된다.
나오시마 이름 붙인 첫 ‘거점’ 미술관…5월 개관 후 방문자 10만 넘어
‘예술의 섬’ 일본 나오시마에 올해 5월 새롭게 문을 연 ‘나오시마 신미술관’(Naoshima New Museum of Art)은 10월 말 현재 방문객 10만 명을 돌파했다. 나오시마의 예술 프로젝트를 이끄는 ‘베네세 아트 사이트 나오시마’가 선보이는 새로운 거점 미술관으로, ‘나오시마’라는 이름을 직접 붙인 것도 처음이다. 이 미술관은 특히 마을 주민의 생활권인 혼무라 지구와 가장 가깝고, 예술과 일상의 경계를 허무는 특별한 장소가 되고 있다. 지추미술관(地中美術館)이나 이우환 미술관, 밸리 갤러리(Valley Gallery) 등 기존 나오시마 미술관이 주로 서구권과 일본 거장들의 ‘상설 전시’에 집중했다면, 신미술관은 보다 ‘역동적이고 개방적인’ 성격을 띤다. 그것도 아시아에 중점을 둔 작가의 작품으로 아시아 현대미술의 중심에 서고자 하는 의지가 보인다. 베네세 아트 사이트 나오시마 홈페이지에는 “지하 2층, 지상 1층의 3층으로 구성된 미술관에서는 일본을 포함한 아시아 지역 아티스트의 대표작과 커미션 워크를 중심으로 전시·수집한다”고 밝히고 있다. 지금은 ‘원점에서 미래로’(From the Origin to the Future)를 주제로 대규모 기획전이 개관 기념으로 열리고 있다. 일본, 한국, 중국, 인도네시아, 태국, 필리핀 등 아시아 지역 출신의 저명 아티스트로부터 신진에 이르기까지 12명(팀)이 참여해 이 장소에 맞춰 구상된 신작과 대표작을 선보이고 있다. 한국 대표 작가로는 서도호가 이름을 올렸고, 중국 작가로는 차이궈창(蔡國強), 일본 작가로는 아이다 마코토, 무라카미 다카시 등을 볼 수 있다. 특히 서도호의 작품은, 나오시마 신미술관을 위해 제작된 버전으로 나오시마 현지 가옥의 복도를 재구성한 요소가 포함돼 있어 장소 특정적인 의미를 더하고 있다. 나오시마 신미술관의 건축은, 1992년 개관의 베네세 하우스 뮤지엄 이후, 30년 이상에 걸쳐 나오시마의 수많은 건물을 다루어 온 안도 다다오가 설계했다. 이번 건축이 10번째가 된다. 언덕의 능선을 완만하게 연결하는 큰 지붕이 특징적이다. 탑라이트에서 자연광이 들어가는 계단실은 지상에서 지하까지 직선형으로 이어져 계단 양쪽에 4개의 갤러리가 배치돼 있다. 지상층의 카페에선 세토내해의 경관을 바라볼 수 있다. 나오시마 신미술관이야말로 향후 전시 기획의 수준에 따라 재방문자의 발걸음을 가장 많이 끌어당길 것이다. 나오시마의 기존 다른 주요 미술관이 상설전 형태의 영구 전시를 한다면, 이곳은 아시아에 특화한, 동시대의 현대미술 작가 발굴과 전시 역할이 크기 때문이다. 나오시마의 다른 주요 미술관과 마찬가지로 온라인 사전 예약 후에 방문하는 게 좋다. 나오시마(일본)=김은영 기자
‘세토우치 3도’ 예술 기행: 나오시마·데시마·이누지마
세토우치(瀬戸内). 일본의 본섬인 혼슈, 시코쿠, 규슈로 둘러싸인 잔잔한 바다인 세토내해와 그 연안 지역을 통칭하는 말이다.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하는 그곳은, 오늘날에는 자연 현대미술이 어우러진 예술의 성지로 더 잘 알려져 있다. 대표적인 것이 일본 세토우치 국제예술제(세토우치 트리엔날레)이다. 가을 시즌(2025년 10월 3일~11월 9일) 막바지에 나오시마·데시마·이누지마를 다녀왔다. 국제예술제에 일부러 맞췄음에도 이 기간에만 볼 수 있는 작품은 거의 보지 못했다. 그만큼 볼 게 너무 많았고, 3박 4일이라는 시간이 짧았다. 가장 기본이 되는 주요 미술관만 돌아다녀도 시간이 모자랐다. 십수 년 전 첫 나오시마 여행 이후 오랜만에 다시 찾은 ‘세토우치 3도(島) 기행’을 싣는다. 통칭 ‘나오시마 예술 여행’이다. ■부산에서 나오시마 가는 길 시간이 지날수록 세상은 점점 편리해진다. 2023년 10월 부산~마쓰야마 항공 노선이 생긴 게 가장 큰 변화였다. 덕분에 나오시마로 들어가는 여러 방법 중에 부산~마쓰야마~다카마쓰를 거쳐 쿠사마 야요이의 야외 설치 작품 ‘빨간 호박’이 있는 미야노우라로 입항했다. 그전에는 ‘이에(家·집) 프로젝트’(Art House Project)로 유명한 혼무라 지구를 이용했다. 그땐 쿠사마 야요이의 또 다른 야외 설치 작품인 ‘호박’(南瓜, 일명 ‘노란 호박’)부터 만났다. 무엇을 먼저 만나는 게 중요한 건 아니지만, 사람 심리가 처음 만나는 것에 들이는 시간이나 애정이 남다르다 보니 이번 여행은 ‘빨간 호박’이 있는 부두에서 보낸 시간이 무척 길었다. 2021년 태풍 피해 이후 복원, 설치한 ‘호박’은 여전히 인기가 높아 사진이라도 한 번 찍으려면 긴 줄을 서야 했다. ■공간 자체가 예술, 데시마 미술관 세토우치 여행은 기본적으로 크고 작은 미술관 순례이다. ‘베네세 아트 사이트 나오시마’로 명명된 프로젝트에는 나오시마, 데시마, 이누지마 3개의 섬에 설치된 30개 이상의 시설과 20개 이상의 예술 작품이 포함된다.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 깊었던 곳은 데시마(豊島) 섬에서 만난 ‘데시마 미술관’이다. 건축계의 노벨상이라는 프리츠커상 수상자로, 세지마 가즈요와 함께 ‘사나’(SANAA)의 공동 설립자인 니시자와 류에(西沢立衛)가 설계한 작품이다. 건축물은 기둥이 없는 얇은 콘크리트 셸구조로, 하늘로 타원형 구멍이 뻥 뚫려 있는, 공간 자체가 하나의 예술 작품인 일체형 미술관이다. 더우면 더운 대로, 추우면 추운 대로, 비가 오면 오는 대로, 바람이 불면 부는 대로 느낌이 달라지는 곳이다. 미술관에는 단 하나의 작품이 존재한다. 나이토 레이(內藤礼)의 ‘매트릭스’(Matrix). 살짝 기울어진 경사로 바닥을 타고 제멋대로 흐르는 물방울이 그것이다. 흰색 콘크리트 바닥에 수많은 핀홀(구멍)이 있어서 그곳에서 물방울이 끊임없이 솟아 나오고 있었고, 그것이 바닥을 따라 제멋대로 천천히 흐르다가 뭉치고 흩어지는 과정을 보여준다. 게다가 하늘로 뚫린 구멍을 통해 빛과 바람, 새소리, 파도 소리, 빗소리가 그대로 흘러 들어와서 그 시간과 공간에 내 몸과 마음을 맡기면 되는, 그런 곳이었다. ■‘이우환 공간’의 원조, 나오시마 이번 여행에서 가장 기대한 곳은 올해 5월 나오시마(直島) 섬에 새롭게 문을 연 ‘나오시마 신미술관’(별도 기사 참조)과 한국에선 유일하게 부산에만 있는 ‘이우환 공간’ 원조 격인 나오시마 ‘이우환 미술관’을 돌아보는 것이었다. 이우환 공간은 현재 전 세계적으로 단 세 곳만 운영 중이다. 나오시마 이우환 미술관(2010년 개관), 부산 이우환 공간(2015년 개관), 그리고 프랑스 남부 도시 아를의 ‘이우환 아를’(Lee Ufan Arles, 2022년 개관)이다. 부산과는 얼마나 다를지 궁금했다. 더도 덜도 아닌, 꼭 필요한 것만 갖춘 이우환 미술관이다 싶었다. 부산 이우환 공간이 이우환 선생 손길이 제법 많이 닿은 거라면 나오시마 이우환 미술관은 안도 다다오의 건축 색깔이 많이 묻어난다. 미술관 전체가 ‘관계항’(Relatum)이라는 작가의 철학을 공간적으로 구현하고 있으며, 외부 공간과 내부 전시실에 걸쳐 작가의 대표작들이 상설 전시 중이다. ‘관계항-돌의 그림자’ 앞에서 한참을 머물렀다. 부산에는 없는 작품이다. 실제 ‘돌이 만드는 물리적인 그림자’와 ‘작가가 그린 그림자’가 겹쳐져 있다. ‘실재’와 ‘가상’, 그리고 ‘존재’에 대한 철학적 질문을 떠올렸다. 외부 공간의 세토내해 언덕과 바다 사이에 설치된 ‘무한문’도 인상적이었다. 스테인리스 스틸 판 위 거대한 아치 아래를 통과하는 것만으로도 감동이었다. 인공적인 건축물(아치)이 자연(바다)을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과 관계를 맺으며 무한한 공간으로 확장된다는 것의 의미를 알 것 같았다. ■미시마 유키오 오마주 ‘논쟁’ 또 다른 섬 이누지마(犬島) 섬에는 ‘세이렌쇼(精鍊所) 미술관’이 있다. 한때 잘나가던 구리 제련소가 불과 10년 만에 폐업된 뒤 산업 유산이 된 그곳을 2008년 산부이치 히로시(三分一博志) 건축가가 미술관으로 탈바꿈시켰다. 그런데 이번 세이렌쇼 미술관에서 기억에 남는 장면은 공간이나 작품이 아니라 ‘논쟁’이다. 미술관 내부에 설치된 야나기 유키노리(柳幸典)의 설치 작품을 둘러싼 우리 일행 간 사소한 논쟁이 있었다. 특히 미술관 중앙갤러리에 설치된 ‘영웅 드라이 셀’(Hero Dry Cell)은 일본의 소설가 미시마 유키오에게 헌정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했는데 이를 둘러싼 서로의 해석이 충돌한 것이다. 작품은 미시마가 실제 살았던 도쿄 저택의 건축 부재(창문, 문, 사진 등)를 옮겨와 활용했다. 일행 중 A는 빛과 거울의 반사를 통해, 미시마가 강조했던 ‘영원한 미’와 ‘일본의 전통 정신’이 근대화 과정에서 어떻게 왜곡되고 파괴되었는지 관람객 스스로 반성하도록 유도하는 장치라고 해석한 반면, B는 해석을 강요해선 안 된다고 반박했다. 사실 작품만 봐서는 야나기가 미시마 사상을 찬성하거나 비판했다고 잘라 말하긴 어려웠다. 그동안 야나기가 보여온 전시 행보로 보면 어느 정도 설득력이 없진 않지만, 처음 작품을 대하는 사람들한테 그것까지 요구하는 건 무리하는 의견이 상충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비판적 미시마 읽기를 통해 야나기 작가가 하고자 하는 의도를 알아차려야 한다는 데 동의했다. 그러고 보면 나 홀로 여행이 아닌, 여럿이 함께하는 여행의 묘미는 바로 이런 데서 나오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집단지성의 힘, ‘국수월재수’ 이번 여행에서 집단지성의 힘을 느낀 순간은 한 번 더 있다. 세 섬을 돌아보고 귀국하던 날, 에 들렀을 때이다. 다카마쓰는 세토우치 국제예술제 섬들로 가는 주요 관문 항구이며, 많은 관광객이 다카마쓰를 거점으로 삼는다. 정원이 아름다운 특별명승지인 리쓰린공원 안에서도 연못을 조망하며 말차를 마시는 곳으로 유명한 ‘기쿠게쓰테이’(掬月亭)에서 즐겁게 지내던 중 도코노마(장식용 상징 공간)에 걸린 족자 하나를 보게 되었다. 그곳엔 다섯 글자가 쓰여 있었는데 일행 중 아무도 읽지를 못했다. 서예에 조예가 깊은 A, 고문에 박식한 B 등 몇 명이 달라붙었고, 족자 사진을 찍어서 한국에 있는 지인에게 보내기도 했지만 해결되지 않았다. 그러다 누군가 생성형 인공지능(AI)인 챗GPT에 물었다. 그런데 그 AI는 아주 그럴듯한 뜻으로 해석했고, 정답을 몰랐던 우리는 AI의 실력에 연신 탄복했다. 문제는 그것이 정답이 아니었다는 데 있다. 우여곡절 끝에 관리인 도움을 받아서 족자 속 다섯 글자의 정체를 알아냈다. ‘국수월재수’(掬水月在手). “물을 한 움큼 떠내니, 달이 내 손안에 있네.” 움켜쥘 국(掬) 혹은 ‘(두 손으로) 물을 떠내다’라는 단어가 핵심이었다. 이후엔 각자가 검색 실력을 발휘해 글의 출처까지 확인할 수 있었다. AI가 알려준 것과는 사뭇 다르다는 사실이 허탈했다. 너무나 그럴싸한 대답에 다들 감쪽같이 속을 뻔했다. 모르니 믿을 수밖에 없었다. AI의 맹신에 경종을 울린 셈이다. ■나오시마를 떠나며 이 외에도 나오시마에는 여러 가지 볼거리, 즐길 거리가 많다. 가장 대표적인 지추미술관(地中美術館)만 하더라도 세토우치의 아름다운 경관을 손상하지 않으려고 대부분의 건물을 지하에 매설했는데 처음엔 그 자체가 큰 충격이었다. 미술관에는 클로드 모네, 제임스 터렐, 월터 데 마리아의 작품이 안도 다다오가 설계한 건물에 영구 설치돼 있다. 지하이지만 자연광이 쏟아져 하루 종일 멍때리고 앉아서 시시각각 변하는 공간과 작품을 보고만 있어도 좋을 곳이다. 여유가 있다면 섬과 섬 사이를 오가며 배 시간에 맞춰 종종걸음을 할 게 아니라 ‘베네세 하우세’ 같은 곳에서 하루쯤 느긋하게 머물며 ‘호박’도 보고, 맛있는 지역 먹거리도 즐기면서, 이번엔 미처 보지 못했던 ‘이에 프로젝트’를 다시금 찬찬히 돌아봐도 좋을 것이다. 이번 글에선 나오시마·데시마·이누지마를 중심으로 언급했지만, 기회가 된다면 메기지마, 쇼도시마, 오기지마, 오시마, 야와시마, 이부키지마 등에도 가 보면 좋겠다. 세토우치 국제예술제는 총 17개 지역에서 개최 중이다. 예술제는 3년 뒤에나 열리지만, 나오시마와 데시마, 이누지마는 언제 가도 좋은 곳으로 항상 열려 있다. 나오시마·데시마·이누지마(일본)=김은영 기자
부산은 한일 음식 문화 교류 최전선
부산은 음식 분야에서 일본과 문화 교류가 활발했다. 일본식 우동 문화가 일찍부터 정착되어 있었고, 라멘 전문점이 가장 먼저 크게 늘어난 지역도 부산이었다. 부산어묵의 역사는 개항과 더불어 일본인이 대거 부산에 정착해 소규모 어묵 공장을 운영하면서 시작된다. 반대로 일본인이 즐겨 먹는 멘타이코는 부산에서 건너갔다. 부산에서 태어난 가와하라 도시오 씨가 일본에 간 뒤에도 부산에서 맛본 명란을 잊지 못해 내놓기 시작, 오늘날 일본 최대 명란 기업 ‘후쿠야’로 성장한 것이다. 돈가스는 일본식 ‘돈카츠’에서 출발했다. 정교하게 칼을 써서 생선회를 뜨는 방식이나 복국도 일본의 영향을 받았다. 오래된 빵집들의 단골 메뉴인 단팥빵, 카스테라, 버터크림빵 등도 마찬가지다. 최근 K컬처의 영향으로 한국 음식이 인기를 끌며 일본에 직접 진출하려는 부산 업체들도 늘고 있다. ‘낙지볶음 안경희 개미집’은 올해 교토·오사카 등에 진출했고, ‘이하정 간장게장’도 후쿠오카에 진출했다. ‘해운대암소갈비’는 분점인 ‘윤해운대갈비’의 도쿄 진출을 노리고 있다. 지난 여름 후쿠오카에 갔다 비빔밥 정도는 한식당 말고도 어디서나 흔하게 파는 모습에 격세지감을 느꼈다. 음식은 영향을 주고받는다. 어쩌면 돈코츠라멘과 비슷하면서도 결이 다른 부산 돼지국밥을 일본에서 쉽게 찾아볼 날이 머지 않았는지도 모르겠다.
나고야 장어 덮밥, 홋카이도산 밀가루…맛은 국경을 넘나든다
올해가 열흘도 남지 않았다. 한 해를 잘 마무리하고 알찬 새해 계획을 설계할 시기이다. 돌이켜 보면 2025년은 정치적 변수에도 불구하고 한일 관계가 잘 자리잡는 모습을 보인 한 해였다. 지난 10월까지 일본을 찾은 한국인은 766만 800명으로 역대 최대로 많았다. 엔화 약세에다 지리적 근접성으로 일본이 우리에게 최고 인기 여행지로 부상한 것이다. 1965년에 한일기본조약이 체결되어 한일 간 국교가 정상화된 지 60주년이 되는 해다운 결과였다. 특히 지리적으로 일본과 가까운 부산은 오래전부터 일본 음식 문화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한일 관계가 더욱 성숙해지기를 바라는 의미로, 일본과의 교류를 통해 부산에서 자신만의 맛을 내고 있는 두 곳을 소개한다. ‘이웃’이란 무엇인지 생각해 보면 좋겠다. ■고향으로 돌아온 장어의 꿈 ‘우나쥬’ 나고야서 자수성가해 30년 만에 부산 돌아와 30년 경력 일본인 셰프 모셔 장어덮밥 전문점 민물장어는 바다에서 태어나 민물에서 성장한 뒤 다시 깊은 바다로 회유한다. 민물장어에게는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할 일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돈을 벌기 위해 맨몸으로 부산에서 일본으로 건너간 지 벌써 30년 세월이 되었다고 했다. 일본 나고야에서 자수성가한 외식 사업가가 말년에 부산으로 돌아와 새로 음식점을 열고 고생을 사서 하는 모습이 처음에는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장어덮밥 전문점 ‘우나쥬’ 김동섭 대표의 인생이 묘하게도 민물장어를 닮았다. 민물장어는 일본어로 우나기다. 가게 이름 ‘우나쥬’는 우나기에다 목숨 수(壽)를 합쳐서 만들었다. 보양식으로 잘 알려진 장어를 드시고 건강하게 장수하라는 뜻을 담았다. 김 대표는 봉사를 통해 일본 땅에 단단하게 뿌리내린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2011년 동일본대지진이 일어났을 때는 수천 명분의 식사를 탑차에 싣고 달려갔다. 지진 발생 한 달 만에 민간인으로서는 가장 먼저였다. 큰 지진이 날 때마다 매번 그랬다. 금요일에는 십 년 넘게 보육원을 찾아가 김밥을 같이 말고, 한국 이야기도 하면서 봉사했다. 나고야에서 무슨 일이 생기면 그에게 먼저 연락이 올 정도로 그렇게 신뢰를 얻었다. 별다른 의도는 없었다. 일본에서 아이 낳고 키우며 사람들한테 도움받았으니 당연히 하는 일이었다. 수구초심이란 말이 그래서 생겼을까. 나이가 드니 더 늦기 전에 한국에서 제대로 된 일본 음식을 선보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졌다. 그래서 선택한 종목이 나고야의 명물, 장어덮밥인 히츠마부시다. 일본에서는 장어를 쪄서 구우면 도쿄식, 바로 구우면 나고야식이라고 부른다. 우나쥬는 초벌 장어를 다시 구워 쫄깃한 식감을 살렸다. ‘겉바속촉’(겉은 바삭하고 안은 촉촉하다)이라는 말 그대로다. 민물장어는 조리법이 어려워 전문 셰프가 되기까지 긴 시간이 필요하다. ‘꼬치 끼우기 3년, 손질법을 익히는데 8년, 굽는데 평생’이라는 격언이 있을 정도다. 친구인 김 대표를 믿고 한국으로 온 나고야 장어전문점 30년 경력의 와키타 다이사쿠 셰프의 솜씨에는 한 치의 빈틈이 없었다. 주방에서 만난 다이사쿠 셰프는 “소스가 50%, 굽는 방식에서 50% 차이가 난다. 이 장어는 탈 것인가, 타지 않을 것인가?”라는 선문답 같은 질문을 던졌다. 장어가 타기 직전까지 잘 구어야 그 맛이 유지된다는 것이다. 노르스름한 소금구이에서 드러난 장어 빛깔은 황홀할 정도였다. 히츠마부시를 먹기 위해선 약간의 인내가 필요하다. 즉석에서 굽고 모리츠케(플레이팅)까지 15분이 걸리기 때문이다. 처음엔 장어 그대로, 두 번째는 와사비와 고명을 풀어서, 세 번째는 오차즈케(녹차물)로 각각 다르게 즐겼다. 민물장어를 통해 일본을 느끼는 귀한 시간이었다. 전통 음식은 그 분야에서 오랫동안 종사한 현지 셰프의 솜씨를 보지 않고서는 제대로 안다고 말하기 어려울 것 같다. 식약청 검사 결과 위생 상태가 매우 우수하다는 별 3개를 받았으니, 믿고 먹어도 되겠다. 김 대표는 잠잘 때 말고는 항상 앞치마 차림이라고 했다. ‘앞치마 표’ 김 대표가 고향에서 펼치려는 마지막 봉사가 제대로 결실을 보았으면 좋겠다. 부산 해운대구 청사포로67번길 39, ■매일 1%씩 좋아지는 ‘쿠루미 과자점’ 법대 다니다 제과에 꽂혀 일본 요리학교 유학 제과점 1년치 기록 적은 플래너서 진심 느껴져 부산 대표 음식을 개발하는 사업인 ‘B-푸드 레시피’를 비롯해 올해 30주년을 맞이한 부산국제영화제 부대행사로 열린 ‘잇츠시네마’, 축하 이벤트 ‘부귀영화로:Scene to Table’ 등에 계속 이름을 올리는 가게가 있다. 부산도시철도 명륜역 앞의 ‘쿠루미 과자점’이다. 이름에서 일본 느낌이 난다고 생각했다. 아니나 다를까, 김성진 대표는 일본의 요리 명문 츠지제과전문학교를 나왔다. 법대를 다니던 학생이 군대에 가서 제과에 꽂힌 유별난 사연이 있었다. 군에서 휴식 시간에 방송 ‘걸어서 세계 속으로’ 벨기에 편에서 나온 초콜릿 장인들을 보다 가슴이 뜨거워졌다고 했다. 그 즉시 휴가를 신청해서 제과 장인들을 찾아다녔단다. ‘쿠루미’란 이름도 일본 록밴드 ‘미스터칠드런’의 노래 쿠루미에 감동을 받아 지었다니, 김 대표가 어떤 감성의 소유자인지 대략 짐작이 간다. 그는 남들보다 제과를 늦게 시작했으니, 유학을 다녀와야겠다고 결심한다. 프랑스 유학을 다녀온 분에게 조언을 구했더니 “프랑스에서 배운 걸 들고 오면 한국에서 바로 받아들이기가 힘들다. 일본에 가서 같은 동양인에게 한 번 소화가 된 거를 배우는 게 어떠냐?”라고 말했다. 그렇게 입학한 츠지에서 처음 들었던 말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교장 선생님은 “빵 공부라는 건 기준을 만드는 거다. 100점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80점, 90점짜리도 만들 수 있다”라고 했다. 기준도 없이 자기 것을 100점이라고 생각하면 발전이 없다. 일본과의 인연은 유학으로 끝나지 않고 계속 이어지고 있다. 공기도 땅도 좋은 홋카이도산 밀가루 유메치카라를 직접 수입해 식빵을 만든다. 10년 동안 매주 식빵을 사는 단골들을 보면 그 보람이 느껴진다. 요즘 부르는 게 값이라고 할 정도로 비싼 팥은 강원도 정선에서 나오는 국산을 계약 재배해서 사용한다. ‘기술은 몰라도, 재료는 국내에서 제일 좋은 거를 쓴다’가 그의 겸손한 자부심이다. 쿠루미 직원들은 모두가 빵을 만들고, 돌아가면서 카운터도 본다. ‘내가 만든 것을 내가 팔 수 있어야 한다’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만드는 사람이 직접 판매에 나서니 손님 입장에서 더 신뢰가 간다. 창업해 나간 옛 직원들도 "우리가 장사할 수 있게 만들어 준 그 대목이 제일 고맙다”라고 입을 모은다. 쿠루미는 매년 한 번씩 김 대표가 비용의 절반 이상을 부담해 전 직원들을 일본에 시찰 보내고 있다. 제품의 질을 올려 가게를 성장시키려면 혼자 힘만으로는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주방 벽에 붙은 플래너에서 빼곡한 숫자들을 발견했다. 일 년간 매일의 기온, 주방 온도, 반죽 온도, 물 온도를 빠짐없이 모두 기록한 것이었다. 빵은 기온은 물론이고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습도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일 년 365일 똑같은 빵이 나가기 위해 모든 변수를 직원들과 공유하고 있는 것이다. 날씨가 급변하는 계절에도 ‘오늘은 실수로 빵이 좀 안 좋아졌어도, 내일은 무조건 제대로 맞추자’라는 의미다. 쿠루미는 매일 1%씩 맛있어지는 가게를 지향하니, 시간이 지날수록 더 좋은 가게가 될 것 같다. 그날 빵은 무조건 그날 소진한다. 무릇 빵은 그래야 한다. 부산 동래구 온천천로 71-1. 글·사진=박종호 기자
“일본 수출 찻사발 광복동서 구웠대”
오랜만에 부산 중구 광복로 거리에 나갔다가 깜짝 놀라고 말았다. 다들 어디에서 왔는지 몰라도 주말의 광복로 거리에는 외국인들이 흘러넘치고 있었다. 2025년 부산을 찾은 누적 외국인 관광객 수가 사상 처음으로 300만 명을 넘어섰고, 이제 500만을 목표로 한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하지만 이내 광복로 건물 서너 곳 걸러 한 곳꼴로 내걸린 공실을 알리는 현수막에 눈살을 찌푸리고 말았다. 외국 관광객 입장에서 한국의 제2 도시 도심이라고 해서 찾아왔는데, 유령도시처럼 상가가 텅 비어 있으면 어떤 기분이 들까. 부산의 원도심, 광복로를 되살릴 묘안을 더 늦기 전에 마련해야 할 때다. 지난달 22일 ‘부산요포럼’이 광복로 청년작당소에서 주최한 ‘청년들을 위한 부산 도자기 이야기’를 듣기 위해 나선 길이었다. 부산요포럼은 ‘부산요(釜山窯)’의 역사적 가치를 재해석하고, 창조적으로 되살리기 위해 2019년에 설립한 모임이었다. 도공, 도자 연구가, 도예과 학생, 수집가를 비롯해 도자기에 관심이 있는 시민들 위주로 구성되었다. 그동안 15회의 정기포럼, 7회의 낙동강 하류 지역 옛 도요지 답사, 찻사발 전시회 등 활발한 활동을 해오고 있다. 이날 조국영 도예가 겸 도자 연구가의 ‘조선 후기 찻사발 문양의 수용과 전개’를 주제로 한 발표를 들으며, 지금은 존재했다는 사실조차 희미해진 부산요 이야기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임진왜란 이전부터 일본은 조선의 찻사발에 열광했다. 조선 도공들이 빚어낸 찻사발은 일본 다도 문화의 정점으로 인정받아 최고의 인기를 누렸다. 한류라는 말이 생기기도 전의 한류였다. 임진왜란은 ‘도자기 전쟁’이기도 했다. 일본은 전쟁 중 조선의 도자기를 대량으로 약탈했고, 특히 그중에서 찻사발을 일본 다도에 적극적으로 도입했다. 조선의 찻사발 공급은 임진왜란으로 인한 문화 교류 단절로 끊기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조선 찻사발에 대한 일본의 구애는 집요했다. 조선 조정과 에도 막부의 관계 호전으로 부산에 왜관이 다시 생기자, 일본은 대마도를 통해 찻사발 주문 제작을 수용해 달라고 간곡히 요청한다. 일본은 기장과 양산 법기, 김해 등지에서도 도자기를 주문 생산했다. 초기에는 이처럼 왜관 바깥에서 조선의 사기장이 만든 완성품을 수출하는 형식을 취했으나, 이후 왜관 내에서 일본 도공이 함께 참여하는 공동 생산 방식으로 바뀌었다. 막부 정부가 원하는 문양을 넣은 찻사발의 견본을 대마도로 보내고, 대마도는 동래부에 주문서를 보내 제작을 의뢰했다. 동래부는 예조(禮曹)의 허가를 받아 도공을 소집하고 찻사발을 만들어 일본으로 수출했다. 부산요는 두모포(수정동) 왜관 시절인 1639년에 시작해 초량 왜관(광복동)으로 옮긴 뒤 1743년까지 104년간 찻사발을 비롯한 도자기를 구웠다. 경주·울산·하동·진주·김해·밀양·양산 등에서 태토(胎土)를 조달했다. 가까운 양산이나 기장 등에서 사기장들이 부산으로 모여들었다. 경상 각 지역에서 생산해 바로 일본으로 흘러 들어가던 도자기가 부산을 거점으로 모이며, 부산은 일약 도자기 생산 중심지로 자리 잡게 된다. 부산요는 완제품의 형태와 규격, 색상, 태토의 배합, 문양 등이 기재된 일본의 주문서에 의해 주문 사발인 어본다완(御本茶碗)을 주로 생산했다. 부산요에서 생산한 찻사발의 숫자가 대체 얼마나 되었을까. 이즈미 초이치가 주문 도자기에 관련된 대마도 문서를 해석한 <부산요의 사적연구>에 의하면 1회 구워 완성한 찻사발 700점에 연 6회로 간주해 일 년에 4200점에 달한다. 부산요가 활발했던 70년 동안만 계산해도 17만 점, 밀수품과 사무역까지 합하면 그 몇 배의 찻사발이 일본으로 건너갔을 것으로 추정된다. 태토 공급 부족 등으로 왜관 안에서의 도자기 생산이 막을 내리면서 쓰시마 번은 독자적으로 ‘조선 다완’을 만들어 보려고 노력했지만, 실패로 돌아가고 만다. 부산요에서 수출한 찻사발을 관리하던 대마도의 대주요(對州窯)는 지난해부터 부산의 보혜 스님이 주지인 한국 사찰 황룡사가 되었다. 놀라운 이야기였다. 조선의 도공이 일본에서 파견된 생산 지휘자, 대마도에서 나온 일꾼들과 협력해서 도자기를 생산하다니…. 당시의 도자기 산업은 오늘날의 반도체 산업에 비유된다. 일본이 주문한 최첨단 반도체를 부산에서 지역 최고의 기술자들과 공동 생산한 것과 다름없다. 조선은 부산요에서 중요한 흙의 생산지부터 흙의 배합이나 성분도 알려주고, 제작 기법 또한 아낌없이 일본인에게 가르치며 협업 체제를 이어갔다. 국가를 초월한 문화의 융합이란 면에서 높게 평가받고 있지만, 오늘날 경영 마인드로는 달리 생각되는 부분도 있는 게 사실이다. 일본은 부산요에서 배운 기술로 유럽에 도자기를 많이 수출했고, 지금도 세계적인 도자기 선진국으로 대접받고 있다. 조선은 뛰어난 도자기 기술을 가지고도 왜 자기 밥그릇 하나 제대로 챙기지 못했을까. 조선 조정이 일본의 도자기 공동 생산 프로젝트를 그렇게 쉽게 허락한 사실도 의아하다. 부산요에서 일하다가 일본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생을 마감한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 AI번역기도 없던 시절 말도 통하지 않았던 조선인과 일본인은 부산요에서 어떻게 소통하며 도자기를 만들었을까. 위대한 예술의 힘으로 봐야할 것이다. 아무튼 부산요 덕분에 도자기 산업 불모지 부산은 조선의 도자기 생산과 수출의 메카가 된다. 어쩌면 초량왜관은 처음부터 부산요를 노리고 만들어졌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이날 포럼이 끝나고 용두산공원 인근 미타선원 아래 이지주차장을 지날 때였다. 조국영 도자 연구가는 “여기가 부산요가 있던 자리다. 일본인들은 도요지라고 하면 굉장히 신성시하는데, 부산요를 되살리면 구경하러 올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도공 기림비를 세우고 가마를 복원하면 좋겠다. 지금이라도 부산요를 연구하고 계승해야 우리도 새로운 도자기가 나올 수 있다”라고 말했다. 부산요포럼은 초창기부터 ‘부산요 가마터를 발굴·복원해야 하고, 당시 함께 새로운 가치를 창출한 사람과 교류에 이바지한 사기장의 넋을 기리는 기념비 건립과 문화 축제가 있어야 한다. 지금의 용두산공원을 대대적으로 재정비할 필요가 있다’라고 주장해 왔다. 이날 포럼에 참가한 부산과학기술대 생활도예과 장기덕 교수가 지난달 부산요 세미나에서 발표한 ‘양산 법기 창기요 찻사발 연구’도 곰곰이 생각할 거리를 던져줬다. 양산 법기리 가마에서 역관들이 일본 다도계의 수요를 파악하고 제작을 의뢰해 품질까지 관리하면서 밀무역과 사무역 형식으로 대량의 찻사발을 생산했다는 내용이었다. 부산요포럼 안태호 집행위원장은 이와 관련해 ‘도자기로 메가시티를 구현해 보자’라고 한 발 더 나갔다. 부산·경남에는 전통 장작 가마가 전국에서 가장 많았는데, 안타깝게도 자꾸 없어지고 있다. 김해에는 장작 가마가 30개까지 있었지만 지금은 12개밖에 남지 않았다. 안 위원장은 “도자기 판매가 잘 안되니 도공들이 먹고살지 못한다. 부산이 도자기 거점 도시가 되면 지역의 장작 가마를 최고의 관광 코스로 만들 수 있다. 김해·양산·밀양 등 가마에 불 때는 날에 부산에서 관광객을 데려가면, 작품 판매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또 “인접 지역 도자기 산업을 연결하고 묶어 지역 문화 네트워크를 구축하려면, 우선 지역의 도공들을 선정해 부산에 거점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라고 덧붙였다. 부산요 관계자들은 “용두산공원에 뭐 볼 게 있느냐”라는 말을 자주 했다. 지금도 묻혀 있는 부산요의 유물을 발굴하면서 용두산공원에 부산요 자료관을 만들고, 광복로에 도자기 문화의 거리를 조성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이들은 도자기를 매개로 부산을 한국과 일본의 교류는 물론, 동아시아를 아우르는 도자기 교역의 장으로 만들겠다는 큰 꿈을 꾸고 있었다. 부산요포럼은 내년에는 우선 부산·경남 지역 도공 초청 프로그램을 진행할 계획이다. 한편 당시 부산 인근 지역에서 국내에 도자기를 만들어 유통하던 가마가 많이 있었기 때문에 부산요라고 하면 안 되고, ‘왜관요’나 ‘부산왜관요’라고 불러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부산요포럼은 호칭 문제는 공동 세미나나 토론회를 통해 논의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부산요 같은 드라마틱한 이야기가 왜 여태까지 소설이나 영화로 만들어지지 않았을까. 어쩌면 지금도 자기 밥그릇을 못 챙기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알림] 대니 구 윈터 콘서트 'HOME'
부산일보사는 (재)부산문화회관과 공동으로 '대니 구 윈터 콘서트 〈HOME〉'을 개최합니다. 본 공연은 MBC 예능 〈나 혼자 산다〉에 출연한 최초 클래식 아티스트로 클래식부터 재즈, 팝 등 장르의 경계를 허물며 독보적인 스펙트럼을 보여주는 대니 구가 피아니스트 조윤성, 드러머 석다연, 베이시스트 션 펜트랜드 등과 함께 크리스마스를 맞이해 꾸미는 무대입니다. 많은 관심 바랍니다. ■일 시 : 2025년 12월 27일(토) 17시 ■장 소 : 부산시민회관 대극장 ■입장권 : R석 8만 원, S석 6만 원, A석 4만 원 ■예매 및 문의 : 부산시민회관 홈페이지, NOL인터파크 티켓, 051-607-6000
배우 강말금이 영화 ‘고당도’로 관객과 만난다. 지난 10일 개봉한 ‘고당도’는 아버지의 부의금으로 조카의 의대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 가짜 장례식을 치르는 가족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으로, 권용재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다.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 쌓여온 책임과 갈등, 애증의 감정을 희비극의 형식으로 풀어낸다. 최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강말금은 “무겁지만 동시에 가볍게 다가갈 수 있는 이야기”라며 “편안한 마음으로 본 뒤 각자 하나씩 마음에 남는 감정을 가져갈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강말금은 극 중 병환에 있는 아버지를 간병하며 집안의 중심에서 버티는 장녀 선영 역을 맡았다. 선영은 일련의 사건을 겪으며 현실적인 판단과 감정 사이에서 끊임없이 흔들린다. 영화 ‘고당도’가 던지는 가족의 무게는 강말금의 연기를 지나며 비극도 희극도 아닌, 우리 삶과 닮은 얼굴로 가만히 드러난다. 이 작품은 단편영화 ‘조의’를 발전시켜 만들었는데, 강말금은 이 단편에도 출연했었다. 그는 “단편 때는 차갑고 냉소적인 결이 강했다면, 장편에서는 의미와 이야기의 층위가 훨씬 풍성해졌다”며 “간호사 역할을 블로그나 영상을 찾아보면서 실제 디테일을 살리려고 노력했다”고 말했다. 강말금은 이 작품을 연기하며 자연스레 가족을 떠올렸다고 했다. 그는 “선영을 연기하면서 친언니 생각을 많이 했다”고 털어놨다. 병환에 있는 부모를 돌보며 생계를 책임졌던 예전 언니의 모습이 선영과 겹쳐 보였기 때문이다. 강말금은 “저는 그때 책임에서 한 발 떨어져 있었고, 그 부담을 언니가 대신 짊어졌다”며 “그래서 선영을 연기하며 미안함과 고마움이 동시에 올라왔다”고 말했다. “저는 사채만 안 썼다뿐이지 남동생 '일회' 역에 가까워요. 언니도 일을 관두고 싶었을 텐데, 제가 연극을 하고 있으니 일을 그만두지도 못하고 어머니가 아프실 때 병간호도 도맡아 했죠. 그래서 그런지 영화를 찍으면서 언니가 많이 생각나더라고요.” 연출을 맡은 권 감독에 대한 신뢰도 작품 선택의 중요한 이유였다. 강말금은 “단편을 할 때 감독님이 20대 중반이었는데 그때부터 감독님의 시선이 참 좋았다”며 “젊은 감독님이 인간 군상에 관심이 있고, 그걸 깊이 있게 다룰 수 있는 점이 인상적이더라”고 말했다. 그는 “이번에 두 번째로 같이 작품을 해보니까 계속 진화하고 있는 느낌을 받았고, 그 부분이 멋있었다”면서 “앞으로 어디까지 진화할지 기대하게 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기본적으로 감독님은 바탕이 정말 선한 사람이에요. 그게 현장 분위기는 물론이고 작품 속 사람을 바라보는 시선에도 드러났죠. 단정하고 부드러운 리더십을 가진 분이라 여러모로 기대가 많이 돼요.” 부산에서 나고 자란 강말금은 부산대 국문과를 졸업한 뒤 부산에서 직장 생활을 하다 서른 살에 연기를 시작했다. 연극 ‘꼬메디아’(2007)로 데뷔한 그는 이후 브라운관과 스크린까지 활동 폭을 넓혔다. 2020년 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로 그해 영화상 신인상을 휩쓴 뒤엔 영화 ‘행복의 나라’ ‘로비’, 드라마 ‘나쁜엄마’ ‘폭싹 속았수다’ ‘경도를 기다리며’ 등에 출연하며 굵직한 연기를 선보이고 있다. 한 편의 영화가 끝난 뒤에도 인물의 잔상을 오래 남게 하는 건 강말금이 가진 힘이다. 그런 그가 요즘 가진 목표는 체력과 마음을 돌보며 오래 연기하는 것이다. 강말금은 “연기는 결국 누군가의 삶을 대신 건너는 일”이라며 “제가 잘 보이기보다는, 그 사람이 왜 그렇게 살았는지를 관객이 이해할 수 있게 만드는 배우로 남고 싶다”고 말했다. 그가 앞으로 쌓아갈 연기의 시간이 더욱 기대된다.
커피에 대한 순수한 호기심이 이끈 4년간의 '커피 여정'
코로나19 팬데믹이 막 끝난 2022년 8월 부산의 일간지 기자와 출판사 대표가 남미로 향하는 비행기를 탔다. 고품질의 ‘스페셜티’ 커피 생산과정을 직접 취재하기 위한 여정의 출발이다. 이들이 찾은 나라는 페루와 에콰도르. 중남미의 대표적인 스페셜티 커피 산지 콜롬비아, 브라질, 코스타리카를 제쳐두고 왜 이곳으로 갔을까. 페루와 에콰도르는 커머셜 커피(일반 커피)를 주로 재배하다 최근에야 스페셜티 커피에 눈을 돌린 곳이다. 커피를 둘러싼 새로운 발견을 하고자 하는 열정이 이들을 낯선 길로 몰아세운 것이었다. 저자 일행은 국내 대표 스페셜티 커피회사인 모모스커피의 산지 직거래(direct trade) 과정을 동행했다. 커피 산지에서 어떻게 커피를 생산하고 가공하는지, 어떤 기술과 혁신이 이뤄지는지 보고 느꼈다. 페루에서는 연하게 내린 커피에 레몬즙을 섞은 음료 ‘카페 콘 리몬’의 맛에 반하기도 했고, 커피협동조합에서는 커피 산업을 통해 수익을 높이고 재투자를 통해 더 질 좋은 커피를 생산하는 선순환 과정을 지켜봤다. 페루 취재를 마치고 에콰도르로 향할 땐 우여곡절 겪은 끝에 국경 검문소를 통과했다. ‘길 위에서 만난 커피’라는 책 제목에 딱 어울리는 에피소드다. 에콰도르의 한 소도시에서는 ‘커피 자매’가 스페셜티 커피를 재배하면서 미래를 개척하는 모습을 담았다. 생두 품질 경연대회 ‘타사 도라다’에서 1위를 차지하면서 월드 바리스타 챔피언 회사와 거래를 하게 됐고, 체험 프로그램인 ‘커피 농장 B&B’를 도입해 에콰도르 커피를 세계에 알리고 있다. 스페셜티 커피 산지를 찾은 1부에 이어 2부에서는 세계의 커피도시를 누비면서 특별한 카페를 체험하는 이야기를 담았다. 미국 LA에서 미국의 스페셜티를 맛보고 ‘일리’ 커피의 본고장인 이탈리아 트리에스테를 취재했다. 유럽 최고의 커피 물류항인 벨기에 앤트워프와 중동의 커피 대국 두바이를 소개한다. 프랑스에서 가장 오래된 카페이자 나폴레옹이 커피값 대신 모자를 맡긴 걸로 유명한 ‘카페 프로코프’와 커피를 오마카세로 즐길 수 있는 일본 도쿄의 ‘마메야 카케루’ 등의 탐방기도 담겼다. 3부 ‘부산은 커피도시다’에서는 부산에서 시작된 커피의 역사를 소개한다. 민건호가 쓴 ‘해은일록’ 속 한국 최초의 커피 기록과 부산 다방 조사 보고서, 1세대 프랜차이즈 ‘가비방’ 등 잘 알려지지 않은 커피 역사를 발굴한다. 아울러 커피도시 부산을 이끄는 ‘월드 커피 챔피언 3인방’ 모모스커피 전주연(월드 바리스타 챔피언십 우승), 모모스커피 추경하(월드 컵 테이스터스 챔피언십 우승), 먼스커피 문헌관(월드 컵 테이스터스 챔피언십 우승)도 소개한다. 저자는 커피 애호가이자 <부산일보> 기자로 오랫동안 커피를 탐닉하고 커피 산업과 커피도시 부산을 취재해 왔다. 4년간의 커피 여정을 담은 이 책은 커피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궁금했던 호기심을 채워주고 커피에 대한 생생한 지식과 경험을 제공한다. 책 속의 여정을 따라가다 보면 커피의 맛과 향이 한층 다채로워질 것이다. 조영미 지음/다시부산/164쪽/1만 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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