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10.09 금요일
‘나홍진이란 장르’… 나홍진이 밝히는 그의 영화 세계[BIFF 2026]
제31회 부산국제영화제(BIFF)가 숨 가쁜 일정을 이어가는 가운데 나홍진 감독과 그의 영화 세계에 반한 팬들이 만나는 자리가 마련됐다. ‘곡성’ ‘호프’ 등 그의 대표작이 세상에 공개되기까지의 일화부터 나 감독만의 독창적인 영화적 철학이 소개됐다. 8일 오전 11시 부산 해운대구 신세계백화점 센텀시티점 9층 문화홀에서 BIFF 마스터클래스 ‘나홍진 그가 곧 장르’가 열렸다. 마스터클래스는 세계적인 거장들의 영화 철학과 창작 경험을 공유하는 강연 프로그램이다. 나 감독의 이야기를 직접 들을 수 있다는 기대감으로 현장에는 수백 명의 관객이 모여 인산을 이루었다. 이날 무대에 오른 나 감독은 자신의 유년 시절 경험으로 강연을 시작했다. 어머니의 심부름으로 어릴 적부터 공포·미스터리 서적을 구하러 다녔고, 자연스럽게 해당 장르와 친숙해졌다는 일화를 전했다. 아울러 자유로운 성장 환경이 지금의 세계관을 형성하는 토대가 되었다고 덧붙였다. 그는 현장 중심 취재와 다양한 사람들과의 만남이 대표작들의 출발점이 되었다고 밝혔다. 나 감독은 “‘추격자’의 경우 동네 술집에서 친한 형들과 술을 마시다 옆자리의 형사들과 친해진 것이 계기였다”며 “밤새 술을 마시던 중 한 형사가 ‘재밌는 이야기 하나 해주겠다’며 연쇄살인범 유영철이 기동수사대에서 탈출했던 당시 상황을 들려줬다”고 회상했다. 다른 작품들의 비하인드 스토리도 공개했다. ‘황해’는 살인 사건이 발생했던 서울 가리봉동과 중국 연변을 직접 찾아가 조직폭력배들을 취재하며 구상했고, ‘곡성’은 무속인의 가족과 산속 암자에서 수개월간 함께 생활하며 힌트를 얻었다고 설명했다. 신작 ‘호프’에 등장하는 인물 ‘양배’ 역시 강원도에서 만난 실제 인물의 이름에서 따왔다는 비화를 전했다. 나 감독은 “영화 일을 시작한 이래 늘 사람들을 찾아다니고 만나왔지만, 인간은 너무나 복잡하고 다층적이며 입체적인 존재”라며 “인간을 어떤 유형으로 나눈다는 건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이러한 지론은 그가 연출한 작품 속 선과 악의 경계가 모호한 입체적 캐릭터들과 궤를 같이한다. 감독이 바라보는 인간상이 그대로 작품 속 인물 구현으로 이어진 셈이다. 이어 그는 “한 작품 안에서 인물이 늘어날수록 이야기는 거미줄처럼 복잡해질 수밖에 없다”며 “어느 순간 극 중 인물뿐만 아니라 관객까지 그 거미줄 안으로 끌어들여 보자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어 “상황이 복잡해 명확한 정의를 내릴 수 없게 되면 일반적 인간은 본능적으로 두려움을 느낀다”며 “그런 몰입감을 느낀 관객은 작품 속에 답이 있을 것이라 믿고 영화에 더 집중하게 된다”고 덧붙였다. 이는 복잡하게 얽힌 인물 관계 속에서 감독이 명확한 정답을 제시하기보다 관객 각자의 해석을 존중하고 유도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팬들이 그의 작품을 ‘N차 관람’하며 다양한 해석을 내놓는 이유이기도 하다. 나 감독 역시 이를 두고 “관객과 함께 영화를 완성해 나가는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강연 이후 진행된 관객 질문에서도 열기가 이어졌다. ‘나홍진은 어떤 장르인가’라는 강연 주제와 관련된 질문이 나오자, 그는 “저를 가까이서 경험해 보시면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마주친 적 없고 겪어보지 못한 유형의 인간이라 느끼실 것”이라 재치 있게 답해 현장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그러면서 “이렇게 된 지는 아주 오래됐다. 보편적인 인간이 느끼는 감정을 흔들림 없이 일말의 의심 없이 공유할 수 있고 공감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면서도 “그것과는 별개로 저라는 인간은 호불호가 강하고 이상한 사람 같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옛날엔 사람의 진중을 파악하기 위해 힘들게 살았었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다”며 “느긋한 성향으로 바뀌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같이 다니면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며 마무리했다.
“나라의 근본은 백성”… 세종의 그 외침 지금도 귀에 쟁쟁
오늘은 한글날 제정 100주년이자, 훈민정음 반포 580주년이 되는 날이다. 한글날을 앞두고 경기도 여주시로 여행을 다녀왔다. 여주를 목적지로 택한 이유는 세종대왕을 좀 더 알고 싶었기 때문이다. 여주에는 세종과 세종의 왕비 소헌왕후를 모신 왕릉인 영릉(英陵)이 있다. 여주는 영릉의 고장답게 오늘날까지도 곳곳에 세종의 이름을 넣어서 기리고 있었다. 간선 도로는 ‘세종로’, 수도권 전철 경강선 역 이름은 ‘세종대왕릉역’, ‘세종초·세종중·세종고’가 있다. 심지어 2021년에는 영릉이 있는 능서면 이름을 ‘세종대왕면’으로 바꿨다. 세종을 만나러 여주에 갔지만 물론 영릉만 보고온 것은 아니다. ■비운의 왕비 명성황후 생가부터 여주에는 명성황후 생가도 있다. 여주IC에서 5분 거리로 가까워 여주 여행을 시작하기에 적당했다. 훗날 왕비가 되는 민자영은 태어나서 여덟 살 때까지 여주에 살았다. 부친이 타계한 뒤에는 어머니와 함께 서울의 감고당(感古堂)에서 지냈다. 감고당은 숙종의 비 인현왕후의 친정집이었다. 1865년 민자영의 꿈에 인현왕후가 나타나 “너는 마땅히 내 자리에 앉게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명성황후 생가는 단아한 모습으로 조선 중기 살림집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생가에 걸린 명성황후의 어진을 만났다. 명성황후는 열여섯 살에 왕비가 되어 고종과 함께 개화 정책을 추진한 보기 드문 여장부였다. 하지만 경복궁을 습격한 일본 자객들에 의해 시해당해, 비운의 인물로 역사 속에 남고 말았다. 여성으로서 뛰어난 정치적 감각과 외교력을 발휘했지만, 시대를 잘못 만나 향년 43세로 짧은 삶을 살고 갔다. 안중근 의사는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한 이유 15개 가운데 첫째가 명성황후를 시해한 죄라고 밝혔다. 한국 최초의 여성 교육기관인 이화학당의 교명도 명성황후가 하사했다고 전해진다. 여주에 갔으면 황학산 수목원도 빼놓을 수 없다. 경사가 가파르지 않아 부담 없이 산책하며 가을을 만끽하기에 더할 나위 없는 곳이다. 황학산 수목원의 매력은 특색화한 14개의 테마정원에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전문 원예서인 <양화소록>에 소개된 식물과 괴석을 전시한 ‘양화소록원’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책에 나오는 식물 가꾸는 법을 벽화로 소개했다. 저자 강희안의 어머니가 소헌왕후와 자매이니, 세종의 처조카였다. ‘미로원’도 들러볼 만하다. 서양측백나무를 일정한 높이와 간격으로 촘촘하게 심고 기하학적인 형태로 배치했다. 방향을 잃고 헤매다 출구를 찾아가도록 만들어서 미로원이다. 나도 모르게 길을 잃었지만, 그게 이곳의 재미였다. ‘항아리 정원’은 전통 항아리나 도자기에 수생식물과 분재를 심어서 조성했다. 여주는 국내 도자기 생산량의 60%를 차지하는 도자기의 고장이다. 전국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수목원이 아니라, 여주만의 지역성을 정원에 잘 표현한 점에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마침 메밀꽃도 지금 한창이다. ■신륵사 앞 황포돛배 지나가고 다음 일정은 남한강을 바로 접한 신륵사였다. 부산 기장 바닷가에 용궁사가 있다면, 여주 남한강변에는 신륵사가 있다. 신라 진평왕 때 원효가 창건했다고 전해지지만 확실한 근거는 없고, 고려 말의 고승 나옹선사가 여기서 입적했다. 영릉이 1469년(예종 1년) 여주로 이장되며 신륵사와 인연을 맺게 된다. 왕실이 신륵사를 영릉의 능참사찰로 정하며 1472년부터 대규모 중수가 이루어진 것이다. 이 시기를 거치며 사찰의 규모는 커지고 조선 전기의 왕실 건축 양식이 반영됐다. 박헌영의 아들로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던 원경 스님이 1987년부터 신륵사 주지를 지냈다. 당시 신륵사는 많은 민주화 운동 인사들이 찾아오는 사랑방 역할을 했다. 신륵사에는 보호수로 지정된 600년 넘은 은행나무가 유명하다. 굵은 가지 틈으로 보이는 작은 가지 모양이 마치 관세음보살처럼 생겼다. 사람들은 관세음보살이 나투신 것이라고 해석하며 이 은행나무를 귀하게 여기고 있다. 은행나무 앞으로 흐르는 남한강이 꽤 운치가 있다. 조선 시대 주요 운송수단이었던 황포돛배를 재현한 황포돛배 유람선도 유유히 지나간다. 여주시에서 운영하는 황포돛배의 이름도 ‘세종대왕호’다. 은행나무 옆 신륵사 다층전탑은 흙으로 구운 벽돌로 쌓은 전탑으로 보물이다. 남한강 나루터 방향에 솟아 있어 배를 타고 오가는 이들의 이정표 역할을 했다고 한다. 아담한 규모의 신륵사는 국가지정문화재인 보물을 8점이나 보유한 문화재의 보물창고 같은 곳이다. 신륵사 옆에는 여주의 새로운 랜드마크인 남한강 출렁다리가 자리 잡고 있다. 신륵사 관광지와 반대편의 금은모래 관광지구를 연결하는 보행 전용 현수교다. 낮에는 강바람을 맞으며 주변 풍경을 즐기고, 밤에는 화려한 조명 및 미디어파사드 야경을 감상할 수 있어 산책 코스로 인기가 높다. 인근의 여주 도예 단지에서는 매년 여주 도자기 축제가 개최된다. 경기도자비엔날레는 11월 1일까지 열리고 있다. ■위대한 스승, 세종을 만나다 우리나라에 ‘신들의 정원’이라고 불리는 곳이 있다. 조선 시대 왕과 왕비의 무덤인 조선 왕릉을 두고 하는 이야기다. 남아 있는 조선 왕릉 40기(북한 소재한 2기 제외)는 2009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찾아보니 조선 왕릉은 압도적으로 경기도에 많다. 경기도 32개, 서울 8개이다. 왕릉은 도성에서 너무 멀지도, 너무 가깝지도 않은 곳에 만들어야 했다. <경국대전>에는 능역을 도성에서 10리(4㎞) 밖, 100리 이내에 두는 원칙이 제시돼 있다. 왕실이 제사를 지내고 참배해야 했기 때문에 한양에서 접근하기 좋은 거리가 중요했다. 세종을 모신 영릉(英陵)은 조선 왕조 역사상 최초의 합장릉이다. 풍수가들 사이에서는 천하의 대명당으로 알려져 있다. 세종을 여기에 모셨기 때문에 조선 왕조의 수명이 최소 100년은 연장되었다는 ‘영릉가백년(英陵加百年)’이라는 말까지 있을 정도다. 영릉까지 올라가는 길에서 먼저 훈민정음을 들고 있는 세종대왕 동상을 만났다. 이렇게 쉽고 편한 한글을 쓰고 있음에 잠깐 감사 인사를 드렸다. 간의, 소간의, 혼천의, 혼상, 앙부일구, 일성정시의, 규표, 자격루, 옥루, 측우기, 수표…. 세종 때 만들어진 과학·천문 기구들이 실물 또는 고증 복원품으로 나와 있다. 기능성은 물론이고 예술성까지 뛰어나 조각품이자 공예품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장영실을 비롯한 조선 최고 과학자와 기술자들의 작품이다. 장영실은 원나라 출신 외국인 아버지와 관기 출신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노비였다. 장영실은 세종의 뜻에 따라 명에서 유학하고 돌아와 조선 실정에 맞는 발명품들을 만들어 냈다. 조선 왕릉을 제대로 보기는 쉽지 않다. 대부분 보호를 위해 멀찌감치 떨어진 정자각에서 보도록 통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릉은 능침(능 바로 앞)까지 올라가 봉분과 석물들을 가까이서 볼 수 있다. 능침 위에 올라가 세종과 소헌왕후의 합장릉 봉분, 그리고 수호하는 석물들을 지근거리에서 만났다. 뒤돌아보니 주변을 에워싼 울창한 소나무 숲과 탁 트인 경관이 한눈에 들어온다. 이래서 명당이라고 하나 싶었다. 여주에는 또 하나의 영릉이 있다. 효종이 잠든 영릉(寧陵)이다. 효종은 청나라에서 8년간 볼모 생활을 했다. 왕위에 올라 청나라를 향해 북벌계획을 세웠으나 실행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세종의 영릉(英陵)과 효종의 영릉(寧陵)은 묶여서 사적으로 지정되어 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숙종, 영조, 정조 임금이 직접 행차해 영릉(寧陵)을 먼저 참배한 후 영릉(英陵)을 찾았다는 기록이 있다. ‘왕의 숲길’을 따라 효종이 잠든 영릉(寧陵)까지 700m 남짓 좀 더 걸었다. 돌아와 세종에 대해 좀 더 찾아보게 되었다. 세종은 1426년 노비 출산 휴가 제도를 처음으로 시행했다. 관비가 아이를 낳으면 100일간의 출산 휴가를 줬다. 1430년에는 출산 전 한 달을 추가해 130일의 휴가를 보장했다. 1434년에는 아이를 낳은 여종의 남편에게도 30일의 휴가를 주어 산모를 돌보게 했다. 배우자 출산 휴가가 이미 600년 전에 이 땅에 있었다. 세종은 “나라는 백성을 근본으로 삼고, 백성은 먹을 것을 하늘로 삼는다”라고 말했다. 이런 선각자가 세상에 또 있었나 싶다. 세종은 위대한 스승이었다. 알고 보니 스승의 날 5월 15일도 세종의 생일을 양력으로 환산한 날에서 유래했다. 글·사진=박종호 기자
부산대병원, 버스 운전기사 찾아가는 금연 지원
부산대학교병원 부산금연지원센터는 부산지역 버스 운전기사의 금연 실천을 돕기 위해 사업장을 직접 찾아가는 금연지원에 나섰다고 8일 밝혔다. 부산금연지원센터는 7일 동원여객 운전기사 50명을 대상으로 금연캠페인과 상담을 진행했다. 이 가운데 16명이 금연 프로그램에 등록했다. 부산금연지원센터는 지난 9월에는 용화여객과 동진여객 방문해 약 100명의 운전기사를 대상으로 금연캠페인을 진행해 총 70명이 금연 프로그램에 등록했다. 이번 금연지원은 생활터 금연환경조성사업으로 진행됐다. 버스 운전기사는 장시간 운전 등 근무 특성상 상담기관을 방문하기 어렵다는 점을 고려했다. 금연 프로그램 등록자에게는 6개월간 금연 상담과 맞춤형 관리가 제공된다. 개인별 흡연 상태와 금연 의지를 확인하고 금연 중 나타날 수 있는 흡연 욕구와 금단 증상 등에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게 지원한다. 김규리 부산금연지원센터장은 “근무 특성상 금연지원 서비스를 이용하기 어려운 근로자들에게 직접 찾아가는 것이 금연 실천의 중요한 출발점이 될 수 있다”며 “앞으로도 지역 사업장과의 협력을 확대해 근로자들이 금연에 성공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수족관 아니라 바다라서 더 감동적 만남…우리 곁의 ‘부캉이’들
“수족관처럼 간다고 바로 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또 언젠가 바다로 떠날 존재라 아쉽지만 그래서 더 특별해요. 자연과 인간이 함께 산다는 느낌은 정말 특별해요.” 부산항 북항 친수공원 수로에 깜짝 출현해 100만여 명의 인파를 모으며 화제의 중심에 선 상어 ‘부캉이’. 기껏해야 몇 분 남짓, 그마저도 수면 위로 빼꼼 솟아오른 등지느러미를 스치듯 보여줄 뿐이었지만 사람들은 열광했다. 현장에서 만난 한 시민은 “주차도 힘들고 수십 분을 꼬박 기다려야 겨우 볼 수 있었지만, 넓은 바다를 자유롭게 유영하는 부캉이를 마주한 순간은 수족관 유리벽 너머 갇힌 상어를 볼 때와는 차원이 다른 감동이었다”며 “자연과의 ‘자만추’가 주는 즐거움이 이렇게 클 줄 몰랐다”고 말했다. ‘자만추’(자연스러운 만남 추구)는 말 그대로 인위적인 연출 없이 자연스럽게 마주하는 것, 바다가 허락할 때 슬쩍 눈을 맞추는 진정 ‘자연스러운 만남’이다. 찰나의 눈 맞춤으로도 팍팍한 도시인들의 마음을 뒤흔든 ‘부캉이’처럼, 우리 바다 곳곳에는 해양 생태계를 훼손하지 않으면서 야생의 이웃들을 경이롭게 마주할 수 있는 ‘자만추’의 현장들이 숨 쉬고 있다. ■경남 사천 초양도엔 웃는 돌고래 ‘상괭이’ 웃는 모습이 특징인 돌고래 ‘상괭이’는 초양도를 포함한 경남 사천 지역에서 가장 많이 발견된다. 상괭이는 ‘멸종 위기에 처한 야생 동식물의 국제거래에 대한 협약(CITES)’ 보호종으로, 국제적으로 멸종 위기이지만 한국에서는 서·남해와 동해 남부 연안에서 다수 서식하고 있다. 얼굴 생김새가 웃는 사람 모습을 닮아서 ‘웃는 고래’라고도 불린다. 인간을 경계하는 특성이 있어 관찰하기가 쉽지 않지만, 사천 초양도 앞바다에서는 배를 타고 나가지 않아도 육지에서 상괭이를 직접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다. 국립공원공단 한려해상국립공원사무소는 4년간 상괭이 이동 경로를 관찰·기록한 경험을 바탕으로 어미와 새끼 상괭이를 관찰하는 ‘야생 상괭이 탐사’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공단이 모니터링을 한 결과, 상괭이는 9월~11월에 바닷물 수위가 가장 높은 ‘사리’ 때 사천 초양도 연안에서 자주 출현한다. 해당 프로그램에서는 상괭이를 초양도 인근 해안가에서 쌍안경으로 직접 관찰하고, 생태 해설도 함께 들을 수 있다. 상괭이 먹이 활동이나 새끼 성장 과정 등 생태적 특징은 공단이 직접 촬영한 희귀 영상과 사진 자료 등을 통해 생생하게 확인할 수 있다. 이빨고래류 쇠돌고래과에 속한 상괭이는 둥근 머리 모양에 등지느러미가 없다. 몸 길이 최대 약 2m로 자란다. 상괭이의 임신 기간은 10개월 내외로 출산 시기는 46개월이다. 최대 수명은 25년 정도로 추정된다. 주요 먹이는 멸치와 전어, 갈치, 새우, 오징어 등으로 멸치 어군을 발견하면 무리를 지어 먹이 활동을 한다. 상괭이는 2004년 국내 서해 연안에 3만 6000여 마리가 분포하는 것으로 알려졌으나, 2016년에 1만 7000여 마리 이하로 급감했다. 주요 폐사 원인은 어업 활동 중에 잡혀 죽은 혼획으로, 약 56%가 혼획 때문에 사라진 것으로 추정된다. 국립공원공단 관계자는 “출몰 시기에 맞춰 연안에서 쌍안경으로 해안가를 살펴보면 상괭이의 활동 모습을 관찰할 수 있다”며 “상괭이 서식 환경과 활동 반경을 침범하지 않으면서 자연을 온전히 체험하는 기회를 통해 해양 생태계의 소중한 가치를 깨달을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제주 바다에 대표 서식하는 ‘남방큰돌고래’ 현재 제주 연안에는 120여 마리의 남방큰돌고래가 살고 있다. 남방큰돌고래 서식지는 국내에서는 제주도가 유일하다. 돌고래들은 터전을 잡은 제주 연안에서 평생 산다. 관광객들은 제주남방큰돌고래를 관찰하기 위해 그동안은 주로 관광 선박을 타고 다녔으나, 최근에는 선박에 의해 돌고래가 다치거나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사실이 확인되면서 육지에서 제주남방큰돌고래를 관찰하는 방식이 자리 잡고 있다. 돌고래는 제주도 연안 50~100m 이내의 얕은 해안가에서 주로 생활하기 때문에 배를 타지 않아도 충분히 관찰이 가능하다. 남방큰돌고래를 육안으로 가장 잘 볼 수 있는 곳은 제주 서귀포시 대정읍 신도리 앞바다다. 제주도청 해양산업과 관계자는 “따로 주로 나타나는 시기가 정해져 있지 않고 연중 육안으로 볼 수 있다”며 “별도의 쌍안경 같은 도구 없이도 무리로 헤엄치는 모습을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제주도청은 관광 선박 대신 육상에서 남방큰돌고래를 관찰하는 여건을 정착시키기 위해 육상 전망대를 조성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고향사랑기부제 지정기부 사업으로 2억 원 규모의 모금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기부금을 활용해 서귀포시 대정읍에 돌고래 전망대와 생태 관광 포토존 등을 만드는 것으로, 돌고래의 서식 환경을 방해하지 않으면서도 가까이서 관찰할 수 있는 ‘육상 중심 생태 관광’ 인프라를 구축할 계획이다. ■울산 장생포 앞바다서 만나는 ‘참돌고래 떼’ 울산 장생포에서는 자주 수백 마리의 참돌고래 떼를 볼 수 있다. 2010년대까지는 장생포 일대에 참돌고래뿐 아니라 흑범고래, 밍크고래 등도 볼 수 있었으나 최근에는 그 자취를 감췄다. 참돌고래는 몸길이가 최대 2.7m, 체중은 최대 160㎏에 이른다. 날렵한 체형에 몸 쪽에 황토색과 회흑색의 모래시계 무늬가 있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참돌고래는 고래류 중 가장 번성한 종으로 최대 수천 마리까지 큰 무리를 이뤄 생활하고, 먹이는 주로 작은 군집성 어류와 오징어를 먹는다. 참돌고래 떼는 특히 수온 상승으로 먹이군이 풍부해지는 7월과 8월에 장생포에서 자주 발견된다. 울산시 남구도시관리공단에 따르면, 지난해 7월 30일에는 울산 장생포 남동쪽 24km 해상에서 참돌고래 떼 1000여 마리가 발견되기도 했다. 장생포고래문화특구 홈페이지에서는 포착된 돌고래 떼의 사진과 관찰 일지를 확인할 수도 있다. 참돌고래 떼는 2007년부터 운항을 시작한 국내 유일의 고래탐사선인 ‘고래바다여행선’을 타고 나가면 볼 수 있다. 탐사선은 월요일을 제외하고 주 14회 운항된다. 하지만 야생 생물 특성상 허탕을 치고 돌아오는 날도 있다. 지난해 고래바다여행선은 총 73회 출항해 단 3차례만 고래 떼를 목격했다. 올해는 일주일 사이 4차례 참돌고래가 발견되기도 했다. 고래를 보지 못한 경우에는 ‘확인증’이 발급되며, 다른 여행지 무료 입장 등 할인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최근에는 선박 접근이 돌고래 무리에 주는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선박 운항 속도와 접근 거리를 규제하는 친환경 관찰 가이드라인이 적용되고 있다.
[부고] 허민회(CJ 경영지원대표)씨 모친상
△ 구순자 씨 8일 별세, 허원회(전 거제시청 공무원)·허민회(CJ 경영지원대표)씨 모친, 허건우(촬영감독)·허자윤(EY한영)·허재성(PWC컨설팅)씨 조모. 빈소 삼성창원병원 VIP실 1호. 발인 11일 오전 9시. 장지 산청호국원. 055-233-8442
쿠팡·배민·홈플러스 줄줄이 증인 채택…유통업계 국감 긴장
올해 국정감사가 지난 6일 시작된 가운데 유통·플랫폼 업계에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쿠팡, 배달의민족, 홈플러스, GS리테일 등 주요 기업 경영진이 잇따라 증인으로 채택되면서 기업별 현안 질의가 구체화할 전망이다. 이들은 오는 12일 국회 정무위원회 국감에 출석한다. 8일 국회와 유통업계에 따르면 유통·식품업계 관계자들은 정무위원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등의 올해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나선다. 오는 12일 예정된 정무위 국감에는 주성원 쿠팡 총괄부사장, 김용석 우아한형제들 부사장, 오진석 GS리테일 부사장, 조주연 홈플러스 대표가 출석할 예정이다. 쿠팡은 올해도 핵심 피감 대상이다. 인천 물류센터 화재, 개인정보 유출, 대규모유통업법 관련 공정거래위원회 현장조사 논란, 소비자분쟁조정위원회의 집단분쟁조정 결정 거부 등 현안이 쌓여 있다. 국세청 과세와 동일인 지정 문제도 국회에서 꾸준히 거론돼 온 만큼 주 총괄부사장을 상대로 관련 질의가 나올 가능성이 있다. 배달 플랫폼도 상황은 비슷하다. 김 부사장에게는 배달의민족의 수수료·상생 정책, 입점업체와의 관계, 이른바 최혜대우 요구 논란 등에 대한 질의가 예상된다. 배달의민족과 쿠팡이츠는 최혜대우 의혹으로 공정위 심의를 받고 있다. 수수료 부담과 입점업체 보호는 물론 배달 노동자의 산업재해 문제도 다시 다뤄질 수 있다. 홈플러스 회생 문제도 올해 유통업계 국감의 핵심 현안이다. 조 대표를 상대로 장기화한 회생절차와 대주주 MBK파트너스의 책임을 묻는 질의가 예상된다. 경영 위기가 협력업체, 입점업체, 소비자에게 미친 영향과 정상화 방안도 질의 대상이다. GS리테일은 오 부사장이 증인 명단에 오르면서 편의점·슈퍼마켓 등 오프라인 유통의 경쟁 환경, 가맹점주와의 상생, 납품업체와의 거래 문제 등에 대한 질의를 받을 것으로 보인다. 식품업계에서는 설탕·밀가루·전분·전분당 등 원재료 담합 사건이 쟁점이다. 공정위는 올해 이들 시장에서 대규모 담합을 적발했다. CJ제일제당과 삼양사 등 관련 기업 경영진은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증인 명단에 포함됐다.
'뚱딴지' 만화가 김우영 별세…향년 87세
만화 '뚱딴지'로 사랑을 받은 원로 만화가 김우영(개명 전 김혜경) 작가가 지난달 24일 별세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향년 87세. 8일 한국만화영상진흥원 구술채록 자료 등에 따르면 1939년 평안북도 선천에서 태어난 고인은 어린 시절 부산으로 피난해 동광중학교와 해동고등학교를 졸업했다. 본명은 김혜경이었으나, 존경하던 삽화가 우경희와 최영 장군의 이름을 한 글자씩 따 '김우영'이라는 필명을 사용했고, 이후 정식으로 개명했다. 고인은 중학교 3학년이던 1956년 만화 '물레방아'로 만화계에 입문한 뒤 '서름길 구만리'(1957), '백제의 별'(1958), '울어라 조국'(1959) 등을 발표했다. 1967년에는 동양방송(TBC) 동화부 7기로 입사해 이듬해 TV 애니메이션 '황금박쥐', '요괴인간'의 제작에 참여하기도 했다. 고인의 대표작인 '뚱딴지'는 1990년 3월 1일 탄생했다. 2019년 4월 1일까지 약 30년간 소년조선일보(현 어린이조선일보)에 총 8556회에 걸쳐 4칸 만화 '뚱딴지'를 연재했다. 이 밖에도 '뚱딴지 만화일기'(1993), '뚱딴지 명심보감'(1996), '뚱딴지 독도탐방대'(1996), '뚱딴지 명언 산책'(1997) 등 뚱딴지 시리즈를 연이어 펴내는 등 어린이 독자들에게 큰 사랑을 받았다. 2019년 한국만화영상진흥원 구술채록에서 고인은 "버스를 타고 광화문 화실로 출근하면서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아 끙끙대다 종로2가나 3가까지 지나쳐 내려 돌아오기 일쑤였다"며 "아이디어가 고갈돼 그만두고 아내와 비빔국수 장사나 할까 고민한 적도 여러 번이었다"며 30년간 장기연재한 고충을 털어놓기도 했다. 급성신부전증을 앓기도 했던 고인은 '만화인생 60년 동안 후회하는 일'을 묻는 말에는 "몸을 잘 돌볼 걸 하는게 후회된다"고 밝혔다. 그는 "학생 때는 늘 운동을 해서 제법 근육이 생겼다. 내가 사는 데가 영도라 친구들이 '영도 타잔'이라고까지 얘기를 했는데 지금은 그게 다 없어졌다"며 "꾸준히 했으면 건강했을텐데"라고 한탄했다. 또 "내가 우리 집사람 마음을 얼마나 졸이게 했는지 모른다. 많은 고통이 있었다"며 아내에 대한 미안함을 드러내기도 했다. 후배들을 향해선 "건강해야 건강한 정신에서 건강한 작품이 나온다"고 조언했다. 아울러 "정신이 선했으면 좋겠다"며 "그래야 좋은 작품이 나온다"고 강조했다. 생전 마지막 단행본은 2013년 펴낸 '만화 소요리문답'이었다. 1996년 한국기독만화선교회 3·4대 회장을 맡았고, 제4회 고바우 만화상(2004)과 제25회 색동회 눈솔상(2009)을 수상했다. 고인은 생전 자신의 부고를 알리지 말라는 뜻을 밝혔던 탓에 별세 소식이 뒤늦게 알려진 것으로 전해졌다.
[이상훈의 시그니처 문화공간 이야기]함부르크 국립오페라극장에서 만난 발레 ‘베니스에서 죽음’
독일 함부르크 도심에 자리한 함부르크 국립오페라극장(Hamburgische Staatsoper)은 도시를 대표하는 공연예술 공간이다. 그 역사는 1678년 시민을 위한 공공 오페라극장이 문을 열면서 시작됐다. 왕실이나 궁정이 아닌 일반 시민에게 문을 연 독일 최초의 공공 오페라극장이라는 점에서도 의미가 깊다. 제2차 세계대전으로 상당 부분이 파괴됐지만 건축가 게르하르트 베버의 설계로 재건되어 1955년 다시 문을 열었다. 화려한 장식보다 기능과 무대에 집중한 전후 독일 모더니즘 건축이 인상적이다. 이름은 ‘오페라극장’이지만 발레 역시 이곳의 중요한 주인공이다. 유럽의 주요 오페라극장이 오케스트라와 합창단, 발레단을 함께 운영해온 전통에 따라 함부르크 발레(Hamburg Ballett)도 이곳을 중심 무대로 성장했다. 음악과 무대미술, 조명과 춤이 한 공간에서 결합하면서 오페라극장은 다양한 장르가 공존하는 종합예술의 무대가 된다. 함부르크 발레를 세계적인 반열에 올린 인물이 존 노이마이어(John Neumeier)다. 미국 밀워키 출신인 그는 1973년 예술감독에 취임해 2024년까지 무려 51년간 발레단을 이끌었다. 고전 발레를 토대로 문학과 음악, 인간의 심리를 결합한 독창적인 작품세계로 함부르크를 세계 발레의 중요한 도시로 끌어올렸다. 한 예술가와 한 극장이 반세기 동안 함께 성장하며 도시의 문화적 정체성을 만들어낸 셈이다. 지난 9월 26일 이 극장 객석에서 그의 대표작 ‘베니스에서 죽음(Death in Venice)’을 만났다. 토마스 만의 소설을 바탕으로 2003년 초연된 작품이다. 객석의 불이 꺼지고 무대가 열리자 화려한 베니스의 풍경 대신 절제된 공간이 등장한다. 몇 개의 장치와 빛, 무용수의 움직임만으로 무대는 리도의 해변이 되고, 다시 주인공 아셴바흐의 불안한 내면으로 변한다. 노이마이어는 원작의 작가 아셴바흐를 노년의 안무가로 바꿨다. 아름다운 소년 타지오를 바라보며 평생 지켜온 예술적 질서가 흔들리고, 아름다움을 향한 동경은 서서히 죽음의 그림자와 겹쳐진다. 바흐의 엄격함과 바그너의 관능적인 음악은 이러한 내면의 변화를 더욱 선명하게 만든다. 공연이 끝나갈수록 넓은 무대는 오히려 더욱 비어 보였다. 마지막에 남은 것은 화려한 베니스가 아니라 아름다움을 끝까지 좇았던 한 예술가의 고독이었다. 좋은 문화공간은 뛰어난 건축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그 안에서 오랜 시간 축적된 예술과 사람의 이야기가 공간에 정체성을 부여한다. 전쟁의 폐허에서 다시 태어난 극장, 그곳에서 반세기 넘게 자신만의 예술세계를 구축한 존 노이마이어, 그리고 그 무대에서 만난 ‘베니스에서 죽음’. 함부르크 국립오페라극장은 건축과 예술가, 작품과 시간이 켜켜이 쌓여 한 도시의 ‘시그니처 문화공간’이 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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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임 100일 전재수 “G20 정상회의 부산 유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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