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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혼욕 안돼!” 송도에 여성 전용 해수욕장 있었다

“남녀혼욕 안돼!” 송도에 여성 전용 해수욕장 있었다

일제강점기 시절부터 부산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해수욕장과 공설운동장, 최고 수준의 골프장이 있었다. 그 시절에도 부산사람들은 부산체육회를 설립해 전국 규모의 축구대회를 지방에서 처음 개최하는 등 제2 도시로서의 자부심이 대단했다. 이 같은 사실은 부산 출신으로 한국 근대스포츠사를 연구해 온 손환 중앙대 체육교육과 교수가 최근 발간한 <부산의 근대스포츠 산책>에서 밝혀졌다.우리나라 최초의 공설해수욕장인 송도해수욕장은 1913년 부산에 거류하던 일본인들이 송도유원주식회사를 설립하고 해수욕장을 개발하면서 시작됐다. 당시 조선에는 원산해수욕장에만 다이빙대가 있었는데 1925년 송도에 2개가 설치되며 명물이 되었다. 여름철에는 매일 1시간마다 남빈(자갈치시장과 부산공동어시장) 도선장에서 배를 운항해 만원의 성황을 이루었다고 한다. 1927년에는 송도 남쪽 해안에 여성 전용 해수욕장을 신설했다. 당시 경성운동장 수영장에서의 남녀혼욕(?)이 사회적인 문제로 대두되면서, 그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1931년부터 송도해수욕장은 연간 15만 명이 넘게 이용했다고 한다. 1935년 부산 인구가 18만 3000명인 점을 고려하면 최초의 해수욕장인 송도해수욕장은 조선 최고의 피서지였다.1918년 지금의 서구청 자리에 최초의 공설운동장인 부산 대정공원 운동장이 들어섰다. 대정공원 운동장은 지금까지 최고(最古)라고 알려진 인천 웃터골운동장보다 2년 6개월 전에 건설되어 체육사적으로 의미가 매우 크다. 5000여 평의 대정공원 운동장에서는 야구, 정구, 스모, 자전거 경주 등 각종 경기가 열렸다. 바다사상의 함양에 이바지한다는 목적으로 운동장 아래 해안에 수영장을 설치하고 소학교 학생들에게 수영을 가르치기도 했다. 일본스모협회가 스모의 흥행을 위해 부산에 와서 경기를 열고 묘기를 보여 줬다는 기록도 이채롭다.대정공원 운동장이 협소하게 느껴지자 1928년 야구장, 정구장, 육상경기장을 갖춘 부산공설운동장(구덕운동장)을 만든다. 부산공설운동장은 당시 경성운동장의 뒤를 잇는 최대, 최고 규모의 운동장이었다. 운동장 이용을 활성화하기 위해 전차 노선 연장까지 이루어질 정도로 뜨거운 관심이 쏠렸다. 부산공설운동장은 경성 중심에서 벗어나 지방 근대스포츠의 활성화를 가져왔다는 점에서 전체 한국 근대스포츠의 발전에도 큰 기여를 한 것으로 평가된다.1911년 일본인에 의해 개발된 해운대온천은 1934년 동해남부선 부산~해운대 철도 개통으로 빛을 본다. 여름철이면 송도해수욕장으로 쏠리던 피서객들이 철도 개통 이후 대거 해운대로 향한 것이다. 동아시아의 관문인 부산에 골프장이 없다며 부산의 대외적인 체면을 위해 골프장 건설의 필요성도 제기됐다. 1933년 개장한 해운대골프장은 조선 제일의 잔디 상태와 코스로 한국 골프 발전에 적잖은 영향을 미쳤다.부산 유지들은 1928년 조선인으로 구성된 부산체육회를 설립했다. 부산체육회는 조선의 제2도시 부산이 한 번도 전 조선적 경기대회를 개최한 적이 없다는 사실에 유감을 표시하며 1936년 제1회 조선축구대회를 개최했다. 경성을 비롯해 전국 각지에서 출전한 이 대회 당일에는 JBAK 부산방송국(KBS 부산방송총국의 전신)에서 중계방송을 했다. 대회 중계방송은 당시 조선에서 2번째였고, 지방에서 개최되는 대회에서는 처음이었다. 부산체육회는 1936년 초량정 봉래각에서 손기정과 남승룡의 입상 축하회를 개최하는 등 부산 근대스포츠의 보급 발전에 많은 공헌을 했지만 1938년 일제에 의해 해산되고 만다. 손 교수는 “부산은 근대화가 빠르게 진행되며 최초·최고라는 수식어가 붙는 곳이 많다. 하지만 한국 근대스포츠사는 서울을 중심으로 한 연구가 대부분을 차지하면서 부산 근대스포츠사가 제대로 알려지지 못해 아쉽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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