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억 전세사기 명의 빌려준 ‘부산판 빌라왕’은 사기방조범…징역 6년
‘공동정범’ 아닌 ‘사기방조범’으로 판단
피해자 24명 배상 명령 신청도 각하
부산에서 벌어진 60억 원대 전세사기의 일명 ‘바지사장’이 공동정범이 아닌 사기방조범이란 판결이 나왔다.
11일 부산지법 형사11단독 정순열 판사는 사기 혐의로 기소된 30대 남성 이 모 씨에게 징역 6년을 선고했다고 밝혔다. 정 판사는 이 씨가 사기죄의 방조범에 해당한다며, 피해자 24명의 배상명령 신청을 모두 각하했다.
이 씨는 부산 지역 6개 오피스텔에서 피해자 62명으로부터 보증금 약 64억여 원을 부당 취득한 혐의(사기)로 구속돼 재판에 넘겨졌다. 이 씨는 재판 과정에서 자신을 배달 대행기사라고 밝혔고, 명의만 빌려달라는 지인의 부탁에 응했을 뿐 실제 계약 체결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다고 주장해왔다.
이날 정 판사는 이 씨가 임대업을 주도한 B 씨의 사기 범행에 대한 방조범에 불과하고, 공동정범으로는 인정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이 씨는 명의를 빌려준 대가로 B 씨로부터 총 6000만 원을 받았다.
정 판사는 “이 씨가 B 씨에게 부동산 소유자 명의 또는 법인 대표자 명의를 대여해준 등 행위를 가지고, 임대차 보증금 사기 범행을 실행에 옮기려는 공동의 의사가 존재했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다만 명의를 대여하게 된 경위, 명의 대여 당시부터 B 씨가 부동산 중개업을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점, 부동산 담보 대출 등의 과정을 통해서 무자본 갭투자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던 점 등 여러 사정을 종합하면 이 씨는 자신의 행위가 범행을 용이하게 한다는 점을 인식하면서도 의심스러운 사정을 애써 외면하거나 용인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정 판사는 “이 사건 범행은 임대차 보증금 반환 의사와 능력이 없음에도 자기 자본을 투자하지 않고 담보대출 채무와 임대차 보증금 반환 채무를 승계하는 방법으로 다수의 주택을 취득하는 이른바 ‘무자본 갭투자’ 방식에 의한 소위 전세사기 범행이다”며 “피해자들은 주로 직장인, 취업준비생, 신혼부부들로 부동산 거래 경험이 많지 않은 사회초년생이자 서민들이고, 모두 보증보험에 가입돼있지 않아 온전한 피해회복이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며 양형 이유를 밝혔다.
선고 직후 민변 이동균 변호사는 “같이 연루된 이들에 대해서도 소위 말하는 범죄단체조직죄를 적용해 처벌할 필요가 있다”며 “재판부에서 공동정범을 인정하지 않았는데, 피해자들이 민사소송을 통해서도 현실적으로 보증금을 완전히 돌려받지 못하는 문제점이 있다. 정부는 전세사기 특별법 개정안을 빨리 논의하고, ‘선 지원 후 구상’에 대해서도 적극적으로 동참해주길 바란다”고 전했다.
손혜림 기자 hyerimsn@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