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2시간 00분 35초
‘2: 00: 35.’ 며칠 전 달성된 마라톤 세계신기록이다. 케냐 출신인 켈빈 키프텀(23)이 8일(현지 시간) 미국 시카고에서 열린 마라톤 대회에서 42.195㎞ 풀코스를 달려 세운 것이다. 같은 나라 출신인 킵초게(38)가 작년 9월 세운 종전 기록 2시간 01분 09초를 무려 34초나 앞당겼다.
마라톤 신기록이 나오면서 꿈의 기록으로 여기는 2시간 이내 풀코스 주파도 조만간 가능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풀코스를 거의 2시간 만에 주파하는 일이 보통 사람에겐 어떤 정도인지 실감이 잘 나지 않을 수 있는데, 100m 단위로 환산하면 이 기록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 있다. 2시간 00분 35초는 주자가 풀코스 내내 100m를 평균 17.14초로 뛰어야만 가능한 기록이다. 한국 성인 남자의 평균 100m 기록이 17~18초 정도라는 통계를 감안하면 40㎞가 넘는 거리를 계속 이 속도로 달리는 마라톤은 정말 인간의 극한을 시험하는 운동이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일부에서 이번 신기록을 두고 최신 기술을 활용한 ‘슈퍼 신발’ 덕분에 가능했다는 말도 나오지만, 현대 과학기술의 도움을 받는 스포츠가 꼭 마라톤만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보다는 인간이 지구상의 동물 중 오래달리기 분야에선 최강자라는 사실이 더 흥미롭다. 오래달리기는 2족 보행이 가능한 육체적 조건과 뛰어난 지능 그리고 협업 활동이 절묘하게 결합하면서 형성된 인간의 능력이라고 한다.
맹수인 치타는 빨리 달리기에선 따를 동물이 없지만, 그 시간은 고작 몇십 초에 불과하다. 먼 거리를 빨리 달릴 수 있을 것 같은 말도 몇십㎞ 이상 가면 지친다. 고려와 조선 시대의 역참이 대략 10~40㎞ 정도마다 설치됐던 점을 보면 이 거리 이상 빨리 달리는 것은 말에게 무리였다고 여겼던 듯하다. 그러나 인간은 비록 빠른 속도로 달릴 순 없어도 오래 달릴 수 있는 지구력에선 탁월하다.
이 때문인지 미국의 저명한 생물학자인 베른트 하인리히는 “달리기는 인간의 생물학적 기질 가운데 하나”라고 말했다. 인간의 본능과 다름없다는 것이다. 숨이 막히고, 다리가 후들거리는 극심한 고통에도 불구하고 매년 전국의 마라톤 대회마다 몰려드는 참가자들을 보면 수긍이 간다. 원초적 육체와 생명 그리고 인생까지 음미할 수 있는 계기가 달리기 속에 있다고 하니 인간에게 주어진 선물이 아닐 수 없다. 그러고 보니 가을이 한창이다. 정말 달리기에 좋은 때다.
곽명섭 논설위원 kms01@busan.com
곽명섭 논설위원 kms01@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