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왜곡 논란' 불거진 고려거란전쟁 [키워드로 트렌드 읽기]

성규환 부산닷컴 기자 bastion@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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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고려거란전쟁' 방송 화면 캡처 KBS '고려거란전쟁' 방송 화면 캡처


“우리가 아는 ‘고려거란전쟁’은 16화에서 종영했다.”

 지난 20일 오후 10시께 KBS 대하드라마 ‘고려거란전쟁’ 19화 본방송을 보고 있던 한 시청자가 KBS 공식 홈페이지에 남긴 글의 제목이다. 이날 동시간대에 2023 카타르 아시안컵에 출전 중인 대한민국 축구대표팀의 경기 생중계가 있었지만, 기꺼이 드라마 ‘본방 사수’를 선택한 열혈 시청자들의 평가도 대부분 다르지 않았다. 다음날 20화가 방영된 뒤에도 시청자 게시판에 혹평은 이어졌다. 전날 축구 생중계에 밀려 2%P나 빠진 시청률이 다시 10%를 넘었지만 드라마를 향한 비판과 질타는 더욱 거세졌다. 19화, 20회에 대한 실망이 그만큼 컸던 탓이다. 고려거란전쟁은 지난해 11월 첫방송 후 속도감 넘치는 전개와 스펙타클한 전쟁신, 배우들의 열연으로 좋은 반응이 많았는데 한순간에 분위기가 바뀐 것이다.

 특히 고려 최고의 성군이라 불리던 현종(김동준 분)이 강감찬(최수종 분)과 갈등을 빚는 동안 ‘현쪽이(현종+금쪽이)’가 됐다는 사실에 대한 비판이 거셌다. 고려시대 당시는 물론이고 현대 기준으로도 성인으로 볼만한 만 18세 나이의 군주를 그저 철딱서니 없는 문제아처럼 묘사했다는 점을 문제 삼는 이가 많았다. 현종이 강감찬의 목을 조르려던 장면과 이후 분을 삭지 못한 채 저잣거리에서 말을 타고 질주하다 낙마하는 장면은 기록에도 없는 역사 왜곡이라는 부정적인 평가도 이어졌다. 심지어 강감찬마저 이전의 극 중 행보와 갑자기 동떨어진 행동을 하면서 시청자들의 원성이 폭발하고 말았다. 위기에 빠진 나라를 위해서라면 같은 고려 신하를 상대로도 기만책을 구사하고, 거란국 황제와 장수들 앞에서도 태연히 임기응변으로 맞서던 대쪽 같은 강감찬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급기야 원작으로 언급된 소설 ‘고려거란전쟁 : 고려의 영웅들’의 작가마저 “역사적 사실에서 벗어난 내용으로 전개되고 있다”고 공개적으로 문제를 제기했다. 이에 드라마 대본 작가는 “원작 소설을 검토했으나 저와는 방향성이 맞지 않는다는 판단을 내렸고, 그때부터 고려사를 기반으로 처음부터 이야기를 다시 설계했다”고 반박했다. 이 반론에 원작자가 재반론을 내놓으며 역사 왜곡 논란은 더 커지고 있다.

 이어지는 역사 왜곡 논란으로 3년 전 조기 종영 사태를 불러온 SBS ‘조선구마사’에 빗대 ‘고려구마사’를 볼 것 같다는 우려도 높아지고 있다. 조선구마사는 태종이 이성계의 환시를 보고 무고한 백성을 학살하는 등의 내용이 방영돼 역사 왜곡 논란을 일으켰다. 제대로 된 명작 대하드라마를 기대하며 본방을 사수하던 시청자들은 역사 왜곡 논란에 '시쪽이(시청자+금쪽이)'가 될 판이다.




성규환 부산닷컴 기자 bastion@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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