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만 그만해달라 사정했다”…노조 탈퇴 후 폭행 당한 30대 가장의 울분
한국알콜산업 울산공장 화물 운송 기사 A(30대) 씨는 지난해 11월 7일 그날의 끔찍한 기억을 떠올리면 지금도 몸서리가 쳐진다. 그는 이날 오전 4시께 공장 내 직원 대기실 앞에서 화물연대 간부 B(50대) 씨로부터 무자비한 폭행을 당했다.
갈등의 시작은 약 1년 6개월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22년 중순 화물연대는 비조합원인 A 씨에게 “다 같은 노동자인데 같이 한번 해보자”며 노조 가입을 권유했다. 하지만 A 씨는 노조 가입 약 두 달 만에 탈퇴하기로 했다. 그는 “다 같은 노동자라면서 집회 과정에서 화물차량의 정문 출입을 막는 등 폭력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에 거부반응이 들었다”고 말했다.
A 씨는 “그때부터 화물연대로부터 지속해서 괴롭힘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기존에 맡던 ‘알짜 노선’에서 A 씨만 빠지는 일이 잦았다는 것이다. 회사도 화물연대의 눈치를 보기 바빴다고 한다. 그는 이 일로 울산지방노동위원회에 부당노동행위 구제신청을 하고서야 배차 불이익을 바로잡을 수 있었다.
전에 없던 납품 사고에도 자주 휘말렸다. 화물연대 간부 B 씨가 ‘납품처가 어디인지’ 등 배차 관련 사항을 화물차 기사들에게 전달하는 역할을 했다. 폭행 사건이 있기 나흘 전인 11월 3일. 그날도 납품 지연이 발생했다. A 씨가 “왜 거래처를 제때 알려주지 않느냐”며 B 씨에게 전화해 따졌다. 결국 7일 새벽 우려했던 일이 터졌다. 현장에서 만난 두 사람은 욕설을 섞어가며 입씨름했다. 도무지 대화가 되지 않았다.
A 씨의 기억은 이렇다. B 씨와 말다툼을 끝내고 돌아서는 순간 ‘번쩍’ 얼굴로 주먹이 날아들었다. A 씨는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다. 무지막지한 폭행이 뒤따랐다. 고통 속에 몸부림치던 A 씨가 “잠시만 그만해달라”고 사정했으나, 소용없었다. 웅크린 그의 눈과 뒤통수에 주먹이 수십 차례 내리꽂혔다.
B 씨는 그 뒤 현장에서 달아났고, A 씨가 피투성이 얼굴로 그를 뒤쫓았다. B 씨는 화물차 바퀴에 받치는 고임목을 집더니 “가까이 오면 찍어버린다”, “죽여버린다”며 A 씨를 발로 차고 위협했다. A 씨는 자신의 차량으로 몸을 피해 경찰에 신고했고, 119구급차에 실려 병원으로 옮겨졌다. B 씨가 고임목을 들고 위협하는 장면은 공장 내 CCTV에 고스란히 찍혔다. 1차 폭행이 일어난 장소에는 CCTV나 목격자가 없었다.
A 씨는 이 일로 전치 8주 중상을 입었다. 오른쪽 눈은 복시와 시력저하, 사시 진단을 받았다. 코뼈가 주저앉고 안와 골절로 수술도 받았다.
며칠 뒤 B 씨에게서 ‘미안하다’는 문자메시지가 왔다. 한데 동료 화물기사에게 이해 못 할 얘기를 들었다. B 씨가 민주노총 조합원들에게 ‘A 씨가 평소 공장 내 화물기사들에게 폭력적 언행을 일삼았다’는 내용으로 진술서를 받고 있다는 것. A 씨는 “진심으로 사과한다고 해놓고 뒤로는 허위진술서를 받는 것이냐 ”며 그 길로 B 씨와의 연락을 끊었다.
B 씨는 22일 <부산일보>와 통화에서 “A 씨에게 배차 사항을 깜박 잊고 실수로 전달하지 못한 것인데, A 씨가 심한 욕설을 하고 먼저 멱살을 잡았다. 저도 맞았다. 표시가 안 났을 뿐”이라며 “(A 씨 주장처럼) 수십 대는 아니고 한 5, 6대 정도 때린 것 같다. A 씨가 나보다 더 많이 다쳐서 따로 고소하진 않았다. 그래서 쌍방(폭행)이 안 됐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그러고는 자리를 떠났는데 (A 씨가) 쫓아오길래 고임목을 들고 위협하고 발로 때렸다. 더 싸우기 싫어서 그랬다”며 “폭행한 잘못은 인정한다”고 덧붙였다.
울산 남부경찰서는 B 씨를 상해와 특수협박 혐의로 검찰에 송치, 그는 재판에 넘겨진 상태다. B 씨는 폭행 사건 이후 회사에 전화해 퇴직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화물연대가 지난해 말부터 갑자기 B 씨의 원직 복직을 요구하기 시작한 것이다. 한국알콜산업 측이 “형사사건 종결과 폭행 가·피해자간 합의가 선행돼야 한다”며 난색을 보이자, 화물연대는 지난 5일부터 집회와 파업을 반복하며 압박 강도를 높이고 있다. 두 사람의 폭행 사건 또한 화물연대 집회가 격화하면서 뒤늦게 세간에 알려졌다.
화물연대는 현재 한국알콜산업과 운송회사 등을 상대로 △B 조합원 즉시 복직 △화물운송료 인상 △노조차량 외에 일반용차 배제 등을 요구하고 있다. ‘용차’는 회사 소속이 아닌 차량 지입을 통한 개인사업자로 일당을 받고 운행하는 화물차량을 말한다.
이 과정에서 A 씨 복직도 차일피일 미뤄지고 있다. 부산에 거주하는 A 씨는 아내, 4살 자녀를 두고 있으며 10년 동안 병치레로 고생하는 아버지의 부양비와 어린 동생의 교육비 등을 책임지는 두 집안의 가장이다.
A 씨는 “화물연대의 폭행 가해자 복직 요구는 피해자인 저에 대한 2차 가해나 다름없다”며 “저처럼 폭행 당하고 현장에서 쫓겨나는 노동자가 더는 없도록 정부가 법과 원칙에 따라 처리하길 간곡히 요청한다”고 말했다.
한국알콜산업 관계자는 “현재 (화물연대 집회로 인한) 물류 문제로 타 지역 공장 가동에까지 차질이 생기고 있다”며 “화물차 기사들과 운송회사간 이견이 해소되고 계약 사항이 잘 이행될 수 있도록 여러 방면으로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화물연대는 화물운송 개인 차주들이 만든 단체로 화주와 개별 계약을 맺는 특수고용직이다.
22일 한국알콜산업 정문 앞에서는 화물연대 조합원 400~500명이 조합원 복직 요구 결의대회를 열었다.
경찰은 지난 19일 한국알콜산업 울산공장 앞에서 화물차량의 정문 출입을 방해한 혐의(업무방해)로 화물연대 조합원 11명을 검거하고 이 중 간부 C 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한 상태다. 10명은 단순가담자로 분류해 지난 21일 석방했다.
권승혁 기자 gsh0905@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