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변화의 바람

이자영 기자 2young@busan.com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이자영 사회부 차장
명절 문화, 해외여행·‘호캉스’로 급변
‘아직도 이런 일이’ 변치 않는 구태도
공무원 ‘모시는 날’·잇단 성 비위 뉴스
수직적 조직 문화·악습 새해엔 바뀌길

명절이 변했다. 차례상 차리기의 부담에서 벗어나 가족과 함께 여행을 떠나는 이들이 늘고 있다. 다가오는 설 연휴에도 해외여행을 계획하는 사람들이 많아 항공권 구하기가 쉽지 않을 정도라고 한다. 국내 유명 호텔들은 ‘호캉스’(호텔+바캉스)를 즐기는 사람들 덕분에 이번 명절 연휴에도 만실을 예상하고 있다. 그 사이 명절 음식 준비를 둘러싼 남녀, 가족 간 갈등이나 이에 관한 기사도 예전보다 눈에 띄게 줄었다. 코로나19를 기점으로 바뀌지 않을 것 같던 명절 문화가 급변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모두가 다 해외로 떠난다 해도 영영 변하지 않을 것 같던 우리 집 명절 풍경도 변할 모양이다. 일 때문에 잠시 해외에 체류 중인 남동생이 수십 년간 명절 차례상을 차려온 어머니께 제3국에서 만나자는 파격적 제안을 했다. 장손이라는 이유로 지난 연말 제사 땐 영상통화까지 켜놓고 해외에서 절을 올려야 했던 동생이 머리를 쓴 것이다. 맏며느리의 책임을 놓지 못한 어머니가 외국 어딘가에서도 차례상 비슷한 걸 차려내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들긴 하지만, 나름대로 의미 있는 변화다.

이렇게 조금씩 우리 집도 세상도 변해가고 있다. 그럼에도 ‘아직도 이런 일이?’라는 생각이 드는 기사를 종종 접한다. 지난달 〈부산일보〉가 보도한 ‘모시는 날’ 기사가 그랬다. 작명부터가 불편한 ‘모시는 날’은 하위 공직자가 돈을 갹출해 상사에게 밥을 대접하는 악습이라고 한다. 부산의 한 구청 간부 공무원이 이 ‘모시는 날’ 대접을 지속적으로 받아왔다는 내용의 갑질 신고를 당해 논란을 빚었다.

뒤이어 한 언론이 보도한 내용을 보면, 서울의 한 구청에서는 이런 문화를 ‘식사 보안’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하위직 공무원들이 팀별로 돌아가면서 상사의 점심 식사를 모시는 동안 ‘중식 보안’ 팀은 동료들의 부재로 밀려드는 업무를 처리하기 위해 30분 일찍 복귀한다는 웃지 못할 이야기다. 전국공무원노동조합이 광역·기초지자체 공무원 등 567명을 대상으로 ‘공직사회 모시는 날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응답자 절반(50.8%·288명) 이상이 “소속된 관청에 모시는 날 문화가 있다”고 답했을 정도다.

특정 지자체만의 문제도 아니었다. 얼마 전엔 인사철을 맞아 전북경찰청에서 ‘모시는 날’ 논란이 일고 있다는 기사를 다시 접하게 됐다. 세상은 생각보다 더디게 변하는 걸까? 물론 이런 불합리한 관행을 없애겠다고 팔을 걷은 지자체도 있다. 대구시는 MZ세대(밀레니얼+Z세대) 공무원의 퇴직이 잇따르자 근무 4대 혁신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고 한다. 인사철 떡 돌리기 자제, 연가 사용 눈치 주기 자제, 계획 없는 회식 자제 등이다. 수직적 공직 문화에 이런 변화의 바람이 불지 않는 한 젊은 공무원의 이탈을 막기가 쉽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좀처럼 그 행태가 변하지 않는 성 비위 사건들도 있다. 지난 16일 본보 기사에 따르면 부산시 성희롱·성폭력 고충 심의위원회 조사 결과 시 산하 단체에서 상급자가 부하 직원을 성희롱한 사실이 확인됐다. 공교롭게도 같은 날 경남 양산시의원의 상습 성추행 기사도 보도됐다. 업무상 상하 관계에서 발생하는 이 같은 추행은 매번 비슷한 패턴으로 반복되고 있다.

이런 사건을 예방하기 위해서라도 수평적 조직 문화로의 변화가 시급하다. 양산시의회 집행부는 결국 “유사한 사건이 다시는 재발하지 않도록 시의회 시스템과 문화를 개선하고, 재발 방지 대책을 수립·시행해 환골탈태하겠다”고 공식 사과했다. 과연 뼈대를 바꾸어 낄 정도의 변화가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사회부 기자들이 오늘도 부산·울산·경남 곳곳을 누비며 취재를 하고 기사를 쓰는 이유 중의 하나도 바로 변화에 대한 바람 때문일 것이다. 어떤 사건은 취재가 시작됨과 동시에 변화의 국면을 맞기도 하고, 어떤 기사는 수 차례 보도를 한 후에야 비로소 변화를 이끌어내기도 한다. 또 어떤 기사는 당장에는 반향이 없더라도 시간이 흐르면서 서서히 변화를 일으키기도 한다. 좋은 의미의 ‘변화의 바람’이 계속해서 일어날 수 있도록 사회부 기자들은 올해도 시민 바람을 담은 기사를 꾸준히 써나갈 것이다.

새해 SBS의 장수 시사교양 프로그램 ‘세상에 이런 일이’가 폐지 기로에 놓였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프로그램 폐지를 막아 달라며 손 편지를 보낸 어린이 시청자도 있다고 한다. 여전히 뉴스에는 ‘세상에 이런 일이’라고 외칠 만한 기사가 넘쳐난다. TV 프로그램만 사라지고, 어이 없는 뉴스만 살아남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2young@busan.com


이자영 기자 2young@busan.com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