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지구 생명들에게 건강 비법 배워야”

박종호 기자 nlead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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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끼리는 암에 걸리지 않는다 / 데이비드 B. 아구스

코끼리, 사람 100배의 세포 가져
암에 걸릴 확률은 5%도 안 돼
다른 동물 생존 기술 모방할 필요


코끼리의 거대한 몸은 우리보다 100배 많은 세포를 가지고 있지만 선천적으로 거의 암에 걸리지 않는다. AP연합뉴스 코끼리의 거대한 몸은 우리보다 100배 많은 세포를 가지고 있지만 선천적으로 거의 암에 걸리지 않는다. AP연합뉴스

우리 인간은 25퍼센트가 암으로 사망한다. 평생 암 발병 위험은 33퍼센트에서 50퍼센트 사이다. 남성 43퍼센트와 여성 38퍼센트가 암에 걸린다. 암은 세포 성장에 관여하는 유전자에 변이가 일어난 하나의 세포에서 기원한 통제되지 않은 세포 분열을 말한다. 암의 진화는 점점 속도가 빨라진다. 암은 치료에 반응해 변화하고, 여러 번 치료가 반복하면 내성이 생긴다. 어떤 공격에도 개의치 않고 더욱 강해지며 심지어 더 공격적으로 변하는 교활한 질병이다. 시간이 지나도 약해지지 않는 무섭고 지긋지긋한 놈이다.

세포가 많을수록 세포 중 하나가 변형돼 종양이 될 가능성이 커지기 마련이다. 여기서 아주 예외적인 동물, 코끼리를 생각할 필요가 있다. 코끼리의 거대한 몸은 우리보다 100배나 많은 세포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도 코끼리가 평생 살면서 암에 걸릴 확률은 5퍼센트도 안 된다고 한다. 어째서 코끼리 세포는 웬만해서는 변이되지 않아서 암에 걸릴 위험이 매우 낮은 것일까.

코끼리는 p53이라 불리는 단백질에 기초한 아주 튼튼한 항암 시스템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종양억제유전자 Tp53 단백질은 마치 마을 보안관처럼 세포핵 안에 문제가 있을 때, 즉 DNA가 손상될 때 나타난다. 일단 DNA가 수리 가능하다면 문제의 세포가 다시 분열하기 전에 손상 부분을 수리하기 위해 다른 유전자를 활성화한다. 만약 DNA가 회복 불능 상태라면 그 세포에 자멸하라고 명령한다. 코끼리는 이 멋진 Tp53 유전자를 최소 20쌍이나 가지고 있다. 이 같은 생물학적 보너스가 코끼리가 암에 걸리지 않는 비법으로 밝혀졌다. 코끼리는 몸집이 작은 조상에서 진화하면서 우연히 Tp53 유전자를 얻은 것으로 보인다니, 나이 든 사람 입장에서는 그저 부러울 따름이다.

<코끼리는 암에 걸리지 않는다>는 여전히 한계가 분명한 인간의 여러 문제를 탐구해 그 해답을 동물을 통해 펼친다. 그게 다 이유가 있다. 인간 연구는 쉽지 않고, 게다가 인간은 지구에서 비교적 새로운 존재이기 때문이다. 대다수 생물이 우리보다 수천만 년, 심지어 수억 년이나 먼저 등장했다. 우리는 영겁의 시간 동안 지구에서 원하는 것을 얻어 온 경험 많은 다른 종에게 배울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태생적으로 긴 목을 타고난 기린은 어째서 심혈관 질환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개미는 완벽한 팀워크를 위해 어떤 동료를 죽게 내버려두고, 어떤 동료를 살리는 것일까. 문어는 오래 살지도 못 하면서 왜 뇌를 아홉 개나 가지고 있을까(그중 여덟 개는 여덟 개의 팔에 존재한다). 개, 침팬지, 코뿔소, 돌고래, 돼지, 다람쥐 등의 흥미로운 이야기가 펼쳐진다. 이 책은 진화생물학은 물론 세포학, 발생학, 미생물학 분야를 넘나들며 동물로부터 배울 수 있는 시스템에 관해 이야기한다. 저자는 미국 암학회 연구 의사상, 국제 골수종재단 비전과학상 등을 수상한 세계 최고 암 권위자이자 과학자다.

다시 코끼리로 돌아가 보자. 코끼리의 황갈색 피가 새로운 항암 치료에 쓰일 원천이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쥐의 유전체에 복제 유전자를 추가로 투입해 p53 단백질이 더 많이 형성하도록 유도했는데, 태어나기도 전에 죽어버렸다고 한다. 언젠가는 p53이 풍부한 코끼리의 타고난 성질을 모방한 화합물을 개발하거나 사람에게 직접 주입하는 방법을 찾아낼 것이다. 당장 지금 코끼리 유전자 연구에서 기억해야 할 점은 DNA 변화가 있어야 암이 시작된다는 사실이다. 신약이 나올 때까지는 DNA 변화 가능성을 어떻게든 줄여야 한다. 일사량이 많은 시간에는 햇빛을 피하고, 염증을 예방해야 한다.

현대인은 동물에게서는 거의 찾아볼 수 없는 고혈압, 암, 알츠하이머병, 불임 등의 병을 앓고 있다. 현대인의 이런 특성은 ‘문명 질병’이다. 기술 발전은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를 불행하게 만들었다. 저자는 그러니 진화를 깊이 생각해 보자고 말한다. 이제는 우리 스스로를 동물원 울타리 안에 가둔 듯한 이 세계에서 벗어나야 할 때다. 또한 우리는 다른 동물종이 생존을 위해 사용해 온 기술을 모방해 죽음을 속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코끼리도 하는데 우리라고 왜 안 되겠는가. 우리는 지금도 진화하고 있지 않은가. 데이비드 B. 아구스 지음/허성심 옮김/현암사/480쪽/2만 5000원.


<코끼리는 암에 걸리지 않는다> 표지. <코끼리는 암에 걸리지 않는다> 표지.



박종호 기자 nlead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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