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가족을 빌려드립니다”

김효정 기자 teresa@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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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펙트패밀리 주식회사/박혜수
시각예술가의 8년 프로젝트 기록
사연 받아 역할 대행 이벤트 진행
가족, 친구가 어떤 의미인지 질문
현실 반영 못하는 제도 고발하기도

호텔에서 열린 ‘퍼펙트패밀리 주식회사’ 프로젝트 쇼케이스 장면. 돌베개 제공 호텔에서 열린 ‘퍼펙트패밀리 주식회사’ 프로젝트 쇼케이스 장면. 돌베개 제공

성공한 CEO 체험 장면. 돌베개 제공 성공한 CEO 체험 장면. 돌베개 제공

셀럽과 그를 추앙하는 사람들 역할극 모습. 돌베개 제공 셀럽과 그를 추앙하는 사람들 역할극 모습. 돌베개 제공

‘퍼펙트패밀리 주식회사’ 프로젝트 홍보 안내판. 돌베개 제공 ‘퍼펙트패밀리 주식회사’ 프로젝트 홍보 안내판. 돌베개 제공

퍼펙트패밀리 주식회사/박혜수 퍼펙트패밀리 주식회사/박혜수


조각·설치 예술가이자 기획자, 문학 작가 등 다방면으로 활동하는 박혜수 작가. 박 작가는 다양한 설문으로 사람들의 이야기를 수집하고 일상에서 당연하게 여기는 것들에 의문을 품고 이를 시각적인 형태로 보여준다. 관객들이 스스로 문제를 발견하고 자신의 일상에서 해답을 찾게 하는 것이 아티스트가 해야 할 몫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박 작가는 8년째 ‘퍼펙트패밀리 주식회사’라는 독특한 예술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사연을 받아 그들이 원하는 가짜 가족을 빌려주거나 원하는 상황을 만들어주는 이벤트이다. 실제로 일본에 역할대행 서비스 회사가 있지만, 박 작가의 프로젝트는 이윤을 위해 설립된 역할대행 회사와는 많이 다르다.

이 책은 8년간 이어온 프로젝트의 작업 노트이자 그 과정에서 작가가 느낀 시대의 고민을 솔직하게 기록한 에세이이다. 동시에 현실을 따라가지 못하는 현재 사회의 규범과 제도를 고발하는 보고서이기도 하다.

‘퍼펙트패밀리 주식회사’ 프로젝트는 지극히 개인적인 작가의 사연에서 출발했다. ‘과연 가족이 내 마지막을 지켜줄까’라는 의문이었다. 혼자 사는 고집 센 늙은이로 집에서 방치되다 시신으로 발견되기 딱 좋은 상황이었다. 1년에 몇 번 보지도 않는 조카들을 부르기도 싫고, 평소 ‘센 언니’로 소문난 탓에 남은 인간관계도 없을 것 같았다. 남아 있다고 해도 그들조차 그땐 노인이라 부담스러운 상황이 될 것이 뻔했다.

결국 작가는 자신의 마지막 가는 길에 찾아온 고마운 지인을 챙길 젊은 사람을 고용하는 것이 좋겠다는 결론을 얻는다. 너무 형식적이지 않고 의례적이지도 않을 것, 미안함과 고마움을 적절히 섞어 다정하게 인사해 줄 사람이 필요했다. 그런 사람을 어디서 구할까 고민하다가 그런 사람을 빌려주는 회사를 만들기로 했다.

상조회사 콘셉트의 홍보물과 홈페이지를 만들고 회사 설명회도 열었다. 가상세계인 메타버스에 본사를 만들었다. 호텔 겸 쇼핑몰 공간에 팝업 부스를 열어 회사가 보유 중인 배우의 쇼케이스도 진행했다.

사연이 쏟아졌다. ‘명문대를 나온 부모님의 기대에 미치지 못한 대학에 입학했고 졸업식을 앞두고 있지만 기쁘게 축하해 줄 가족이 없다며 꽃을 들고 찾아와 줄 사람’ ‘부모와 자매에게 안부 인사를 전하고 가족이라는 이유로 건네는 폭력적인 말을 감내하며 가족들을 즐겁게 해 줄 완벽한 딸 역할을 해 줄 사람’ ‘성공한 소설가가 되어 팬 사인회를 여는 상황’ ‘아들이 사춘기 때 크게 다투고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대화를 안하고 있다. 비슷한 나이, 성격의 아들을 빌려 대화하며 아들을 이해하고 싶다’ ‘여러 사람들이 추앙하는 셀럽이 되는 상황’ ‘내가 성공한 CEO가 되어 백화점 현장을 시찰하는 상황을 연출해달라’ 등 정말 많은 사연이 책에 등장한다.

돈을 받고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가 아니라 예술 작업의 일부이기 때문에 박 작가는 수많은 사연 중 어떤 사람을 선택해야 할지 생각했다. 고객은 배우에 대한 존중과 신뢰가 있어야 하며 회사와 배우가 고객을 선택할 것이라는 원칙을 세웠다.

그렇게 박 작가는 일정한 시간 동안 배우를 빌려줘 고객이 원하는 퍼포먼스를 했고 때론 상황극을 연출했다. 서비스를 제공받은 사람은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많은 고객은 “내가 좀 더 솔직하게 말했다면 더 현실적인 상황이 만들어졌을 것 같다”고 답한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 자신의 진심을 털어놓지 못했고, 잠깐의 경험은 현실을 더 허무하게 만드는 결과를 낳기도 했다.

특히 많은 이들이 가족 관계에 집착했다. 각자에게 원하는 역할 혹은 기대를 충족시켜주지 못한 것에 대한 원망, 미련, 아쉬움이 많았다. 시대가 변했지만, 현실의 변화를 반영하지 못하는 가족 제도는 많은 이들에게 상처가 된다.

저자는 완벽한 가족 프로젝트를 하며 한국은 가족을 이루는 방법이 너무나 제한적이라고 지적한다. 새로운 형태의 가족을 구성하려는 수요가 있기 때문에 저자의 프로젝트는 어쩌면 실제 사업 모델로 진행될 수도 있다.

가짜를 이야기하는 것은 예술가의 특권이며 ‘진짜인 척 하는 거짓’을 드러냄으로써 현실의 문제를 느끼게 하는 저자의 실험이 흥미롭다. 박혜수 지음/돌베개/292쪽/2만 2000원.


김효정 기자 teresa@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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