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빼앗고, 고향 지웠다… 80년 만에 써본 한글 이름 ‘김창화’ [이중의 억압 재일한센인]
5살 때 한국 떠나 일본 요양소로
일본명 ‘마사코’로 살아온 80년
조선 한센인 이제 21명만 생존
지난달 11일 일본 구마모토현 국립한센병요양소 기쿠치케이후엔에서 입소자 가네야마 마사코(84) 씨가 자신의 본명을 쓰고 있다.
굽은 손가락으로 쥔 붓 끝에서 한 자 한 자 그려지는 획에는 한 치의 흔들림이 없었다. 지난달 11일 일본 구마모토현 국립한센병요양소 기쿠치케이후엔에서 입소자 가네야마 마사코(84) 씨는 생애 처음으로 자신의 본명 ‘김창화’를 썼다. 다섯살때 쯤 한센병이 발병해 고향인 한국을 떠나 일본의 요양소에 들어온 지 약 80년 만이다.
한센병 강제격리가 한 인간에게서 가장 먼저 빼앗은 건 이름이었다. 환자들은 입소 직후 ‘원명’이라는 요양소 내 이름을 지어 생활했다. 사회에 남은 가족에게 낙인이 찍히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고향을 떠난 조선인 환자들에게는 더욱 뼈아픈, 고향과의 단절이기도 했다.
가네야마 씨 역시 삶의 대부분을 요양소에서 일본식 원명으로 지냈다. 한자로만 본명을 알고 있던 그는 본보 취재진을 만나 처음으로 자신의 한글 본명을 알게 됐다. 그는 먹물로 쓴 이름 석 자를 쳐다보며, 오래 그리워한 사람의 이름을 부르듯 “김창화, 김창화”하고 몇 번이고 소리 내어 읽었다.
60대에 서예를 시작한 그는 일본 내 최대 규모 서예전인 마이니치서도전에 입선하면서 규슈 소재 미술관 순회 전시도 열었다. 작품 하단에 찍는 붉은 성명인에는 일본 이름 대신 김창화 세 글자를 한자로 새겨왔다. 80년 가까이 ‘마사코’라 불려온 세월 속에서도 고향의 이름은 마음 한 켠에 붉게 남아 있었던 셈이다.
한국에 대해 아는 게 없다며 취재를 고사하기도 했지만, 방 안에는 한국을 떠올리며 살아온 흔적이 배어 있었다. 한때 이곳에서도 인기였던 ‘욘사마’ 배용준 사진, 한국 풍물단이 그려진 가구 등이다. 원내 입소한 다른 한국인과 결혼했을 때는 외부에 부탁해 공수해온 진달래색 저고리를 입었고, 평소 유행가 ‘돌아와요 부산항에’를 즐겨 불렀다.
20여 년 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갔던 부산 여행을 떠올리며 그는 눈시울을 붉혔다. “의미를 잘 모르겠지만 그냥 눈물이 나더라고. 내가 태어난 나라의 땅을 밟고 있다는 게….”
입소자들의 본명은 사망 후에야 비로소 불린다. 납골당에 놓이는 유골함에 원명과 본명을 함께 써 붙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곳 납골당에서도 가명과 본명이 함께 적힌 한국인 유골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한국의 한(韓)씨에서 조선의 조(朝)씨로 성을 바꾼 이도 있었다. 입소자 대표인 오다 히카루 자치회장은 “한센인의 가장 가슴 아픈 운명은 진짜 자신의 이름을 빼앗기고 뿌리까지 잃어버리는 것”이라며 “수십 년이 지나면 밖에서 자신을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게 되고, 여기서 살아왔다는 증명조차 할 수 없게 된다”고 말했다.
일본 내 요양소 13곳에는 가네야마 씨와 같은 재일 조선인 입소자가 한때 716명에 달했다. 현재는 대부분 사망해, 80~90대 초고령 입소자 21명만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