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점포 주는데 영업 시간도 단축, 고객 불편 어쩌나
개점 시간 30분 늦춰질 전망
내년 4월 이후 합의 거쳐 도입
창구 대기 시간 더 길어질 듯
‘고임금 업종 특혜’ 논란 일어
사진은 서울 종로구 시중은행 현금자동입출금기(ATM). 연합뉴스
금융권 노사가 은행 영업시간을 30분 단축하기로 합의하면서 금융소비자들의 불편이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영업점이 빠르게 줄어드는 데다 고령화까지 가속화하면서 대면 서비스 의존도가 높은 고령층 등의 금융 접근성이 더욱 떨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올해 금요일 1시간 조기퇴근제로 사실상 ‘주 4.9일제’를 시행 중인 은행권이 이번 합의를 통해 영업시간을 줄이는 동시에 근로 조건과 복지 등을 대거 개선하면서 ‘고임금 업종 특혜’ 논란도 일고 있다.
금융권 노사는 지난 28일 올해 산별중앙교섭을 잠정 타결했다. 합의안에 따르면 내년 4월 이후 은행 영업점의 개점 시간이 오전 9시에서 오전 9시 30분으로 늦춰진다. 폐점은 오후 4시로 유지된다. 시행 시점은 각 은행의 노사 합의를 거쳐 정해질 전망이다.
이번 합의에는 은행원들이 오전 9시부터 고객을 맞이하기 위해 그보다 이른 시간에 출근하고 있는 상황과 모바일 뱅킹 등 비대면 거래가 증가하는 금융산업 변화도 고려됐다. 은행 영업시간은 코로나19 확산 등 외부 요인이 아닌 노사 합의에 따라 상시적으로 30분 단축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은행권에서는 개점 시간을 늦춤으로써 실제 출퇴근 시간과 영업시간의 불일치를 줄일 수 있고, 충분한 영업 준비 시간을 확보해 고객 응대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는 입장이다. 또 모바일·인터넷뱅킹 등 비대면 금융거래가 확대된 만큼 영업시간 단축이 소비자 불편으로 직결되지는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영업시간이 30분 줄어들면 창구를 이용할 수 있는 시간이 그만큼 짧아지는 만큼 소비자들의 불편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고령층이나 디지털 금융에 익숙하지 않은 금융소비자, 대출·상담 등 비대면으로 처리하기 어려운 업무를 보려는 고객들은 영업시간 단축의 영향을 상대적으로 크게 받을 수 있다. 은행 점포 수가 줄어들고 있는 상황에서 영업시간까지 짧아질 경우 특정 영업점이나 시간대에 고객이 몰려 대기 시간이 길어질 수도 있다.
실제 은행 영업점은 꾸준히 줄고 있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허영 의원이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20년부터 지난해 6월까지 4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은 937개 지점을 폐쇄했다. 5년 6개월 사이 영업점 수가 약 26% 감소했다. 지방은행들도 상황은 비슷하다.
박 모(71) 씨는 “모바일뱅킹을 잘하지 못하는 고령자들이 창구에 많아 안 그래도 대기 시간이 긴데, 영업시간을 줄이면 어떻게 하란 말이냐”며 “영업시간이 줄어드는 만큼 창구 인력을 늘리든지 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이번 합의에는 금융노동자의 근무 환경을 개선하는 여러 안이 포함됐다. 총액임금 3% 인상과 함께 자율출근제를 도입하고, 금요일 고객 업무를 일정 시점에 마감하는 ‘라스트콜’ 제도와 보상휴가 등을 마련하기로 했다. 육아휴직 대상 자녀 연령도 초등학교 6학년까지 확대하기로 했다.
이를 두고 올해 금요일 1시간 조기퇴근제로 사실상 ‘4.9일제’에 가까운 근무 체계를 갖춘 은행권이 영업시간까지 단축하면서, 근무환경 개선이 지나치게 빠른 것 아니냐는 지적과 함께 ‘고임금 업종 특혜’ 논란도 커지고 있다. 영업시간은 줄어드는데, 은행원들의 근무 여건과 처우는 개선되는 것으로 비치기 때문이다.
은행권에서는 이번 합의를 계기로 영업시간 단축과 금융소비자 편의라는 두 가지 요구를 어떻게 조화시킬지가 과제로 떠오를 전망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비대면 금융이 빠르게 확대되고 있지만 모든 금융서비스를 디지털로 대체하기는 어려운 만큼, 디지털 금융에 익숙하지 않거나 대면 창구 이용이 필요한 소비자들의 불편을 줄일 수 있는 보완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밝혔다.
이대성 기자 nmaker@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