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영철의 사리 분별] 우리는 왜 점점 더 외로워지는가
논설위원
외로움은 개인 감내할 정서 문제 아니라
정신·신체 건강 해치는 병증 유발 요인
한국 사회 10명 중 4명 외롭다고 응답
WHO 조사 세계 평균 보다 훨씬 높아
국가 적극 나서서 사회적 연결 활성화
고립 부추기는 구조적 문제 해결해야
부산 북항 친수공원 인공 수로에 상어가 장기간 머물면서 큰 화제가 되고 있다. 최근 찾은 북항은 예전 한적한 모습과는 달리 인파로 북적거렸다. 방문객들은 수로 난간 등에 늘어선 채 ‘부캉이’로 불리는 상어가 모습을 드러낼 때마다 환호성을 터뜨렸다. 그런데 혼자 온 것으로 보이는 노인들도 적지 않았다. 동래에서 왔다는 70대 노인은 “주로 혼자 집에 있는데 상어도 보고 사람 구경도 하려고 버스를 타고 왔다”고 말했다. 다른 노인도 “이곳에서 만난 노인들과 모처럼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았더니 마음이 한결 가볍다”고 했다. 부캉이가 외로운 사람들을 연결하고 보듬는 역할까지 했다는 생각에 마음이 무거워진다.
외로움은 무엇일까. 사회적 관계에서 고립된 노인과 청년 등이 감내해야 하는 지독한 외로움을 단순한 감정적 허전함이라고 규정할 수 있을까. 외로움을 호소하는 사람에게 “알고 보면 모두 외롭다. 유난 떨지 말아라”고 말해도 괜찮을 만큼 그 실상은 대수롭지 않은 것일까. 국어사전은 외로움을 홀로되어 쓸쓸한 마음이나 느낌이라고 규정한다. 하지만 최근의 연구 결과를 보면 외로움은 개인의 성격이나 인간관계 범위에 따라 파생되는 간단한 문제가 아니라 정신 건강과 신체 건강까지 해치는 일종의 심각한 병증 유발 요인으로 받아들여진다.
세계보건기구(WHO)의 2025년 사회적 연결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인구 6명 중 1명(16.6%)이 외로움을 경험하고 있다. WHO는 외로움과 고립이 심혈관질환과 뇌졸중, 우울증, 불안, 치매 등의 위험을 높이고 조기 사망과도 관련이 있다고 밝혔다. 외로움이 매일 담배를 15개비씩 피우는 것만큼 건강에 해로우며, 외로움으로 인한 정신과 신체 건강상의 위험이 비만이나 신체 활동 부족과 관련된 위험보다 훨씬 더 크다고도 지적했다. 이런 점을 감안할 때 다른 사람과 연결되어 있지 않다는 외로운 감정은 삶의 행복과 건강, 생존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생각이다. WHO도 외로움과 고립에서 벗어날 수 있는 사회적 연결을 강화하기 위한 국가적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문제는 한국 사회가 외로움에 특별히 취약하다는 점이다. 국가데이터처가 실시한 2025년 사회조사에 따르면 국민 10명 중 약 4명(38.2%)이 “평소 외롭다”고 응답해 WHO가 밝힌 세계 평균보다 훨씬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더욱이 50대 응답자의 41.7%, 60세 이상은 42.2%가 외롭다고 답하는 등 연령대가 높을수록 사회적 연결에서 배제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내비쳤다. 더 큰 문제는 외로움이 경제적 조건과 직접적인 상관관계를 보인다는 사실이다. 즉, 2025년 사회조사에서 월평균 소득 100만 원 미만 가구의 외로움 체감도는 57.6%로 전체 평균보다 19.4% 포인트(p) 높았다. 반면 600만 원 이상 가구의 외로움 체감도는 33%에 그쳤다. 특히 한국 사회는 혼자 사는 노인과 미혼 등 1인 가구 증가, 가족 해체, 지역공동체 해체 등의 현상이 두드러지게 증가하고 있기 때문에 외로움 비율은 계속 늘어날 우려가 크다.
현재 세계 각국은 외로움과의 전쟁에 나서고 있다. 영국은 2018년 세계 최초로 외로움 문제를 전담하는 ‘외로움부’를 신설했다. 영국이 추진하는 다양한 외로움 대응 전략은 개인을 취미 모임 등 지역사회 프로그램과 연결하는 등 사회적 고립 완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독일도 외로움 해결을 위해 청년과 노인 등 각 세대가 소통할 수 있는 공간과 기회를 확대하는 데 국가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스웨덴의 경우엔 지방 자치단체들이 다양한 취미 활동 장비를 무료로 빌려주는 공공 대여 서비스를 통해 저소득층이 자연스럽게 사람들과 어울릴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한국도 사회적 연결 활성화 등 외로움의 근본 원인을 차단하는 정부 차원의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더욱이 신자유주의로 인한 빈부 격차의 확대, 한층 공고해진 경쟁 사회 구도, 산업화로 인한 전통적 가족 관계 붕괴, 개인주의 확산 등 사회구조와 가치관의 급격한 변화는 외로움을 점점 더 확대할 전망이다. 인공지능(AI), SNS 등 갈수록 발전하는 과학기술도 인간관계를 좁히는 역설적 결과를 낳고 있다.
정부의 외로움 대책은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 보건과 복지뿐만 아니라 주거, 고용, 교육 등 거의 모든 정책을 사회적 연결 확대라는 관점에서 재조정할 필요가 있다. 정책 효과를 높이기 위해 청년과 중년, 노년 등 연령대를 고려한 맞춤형 외로움 대책과 프로그램을 설계해야 한다. 취미와 운동, 독서, 봉사 등을 주제로 한 작은 공동체에 대한 운영 지원도 고려해야 한다. 외로움은 더 이상 개인이 혼자 견뎌야 할 감정적, 정서적 문제가 아니다. 국가와 사회가 나서서 풀어야 할 구조적인 문제라는 공감대가 확산되길 기대한다. cyc@busan.com
천영철 논설위원 cyc@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