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조기 낙엽'이 던진 숙제
가을은 단풍의 계절이다. 기온이 낮아지고 낮의 길이가 짧아지면서 노랗거나 붉게 물들었던 단풍은 어느 순간 떨어져 낙엽이 된다. 산림청이 지난달 발표한 ‘2026년 한반도 단풍절정 예측지도’에 따르면 올해 전국적인 단풍은 10월 하순부터 11월 초에 절정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된다. 단풍은 이미 9월 말 강원도에서 시작해 10월 중순 중부지방으로 확산된 데 이어 남부지방도 본격적인 시작 시기로 접어들었다.
하지만 최근엔 단풍이 제대로 들기도 전에 나뭇잎이 갈색으로 변해 떨어지는 이른바 ‘조기 낙엽’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 실제로 가로수 등 도심 내 각종 조경수들의 잎이 여름철부터 마른 데 이어 이미 지난 8~9월 도로변 등에 떨어진 낙엽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이러한 현상의 원인으로 기후변화에 따른 폭염과 가뭄, 불규칙한 강수량, 병해충 증가 등이 거론된다.
특히 부산과 울산, 경남은 올여름 기록적인 폭염과 가뭄을 겪었다. 지난 8월 1일 경남 양산의 기온이 41.6도까지 오르고 부산에서는 7월 19일부터 22일 연속 열대야가 이어졌다. 사람뿐만 아니라 도심 나무들도 혹독한 여름을 견뎌야 했다. 나무는 잎을 통해 광합성을 하고 성장에 필요한 에너지를 만들지만 폭염과 가뭄으로 수분이 부족해지면 기공을 닫아 물 손실을 최소화한다. 그래도 버티기 어려울 땐 평년보다 빨리 잎을 떨어뜨린다. 조기 낙엽은 폭염 등에 지친 나무들이 생존을 위해 선택한 방어 반응인 셈이다.
조기 낙엽은 세계적인 현상이다. 지구촌이 온난화 등 이상기후로 몸살을 앓고 있기 때문이다. 영국에서는 여름부터 잎이 갈변해 떨어지는 현상을 ‘가짜 가을’이라고 부른다. 크로아티아에서는 2024년 극심한 폭염과 가뭄으로 참나무 잎 노화가 평년보다 평균 54일 빨라졌다는 연구 결과도 제시됐다. 더욱이 반복된 조기 낙엽 현상은 나무의 광합성 기간을 단축시켜 탄소 흡수 능력을 약화시킨다. 즉, 지구온난화가 나무를 지치게 하고, 지친 나무가 탄소를 덜 흡수하면서 수목류의 온난화 억제 능력을 약화시키는 악순환이 반복될 우려가 커진다.
극심해지는 기후변화로 나무의 생육과 개화 리듬이 무너지면 최악의 경우엔 단풍철이 유명무실해지거나 찬란한 봄철 벚꽃 장관을 제대로 즐길 수 없을지도 모른다. 나무가 일찍 잎을 떨어뜨리면 그늘이 줄어들고 생태계에도 영향을 미친다. 조기 낙엽 현상을 완화할 한층 더 적극적인 도시 녹지 관리 정책이 필요하다.
천영철 논설위원 cyc@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