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 단상] 바닷가 옛 교정에 남은 질문
권승혁 사회2부 차장
20년 전 울산에서 처음 취재하던 시절, 가장 감탄한 곳이 대왕암공원이었다. 바다 위 바위섬과 해안길의 기암괴석, 파도 소리 그리고 울창한 솔숲까지. 그중에서도 마음을 끌어당긴 건 공원 초입 내리막길 아래 비밀의 화원처럼 숨은 옛 울산교육연수원이었다. 그 자리가 원래 학교였고, 한 선각자가 전 재산을 털어 세웠다는 사실에 또 한 번 놀랐다.
모처럼 주말에 공원을 다시 찾았다. 커다란 용 모형 미끄럼틀에서 아이들이 놀고, 손녀 손 잡은 노부부와 연인들이 산책로를 오갔다. 벤치에 누워 이국의 말로 담소를 나누는 이들도 보였다. 솔숲 하늘해먹에서 터지는 웃음소리가 은은한 솔향에 실려 왔다. 발길을 옛 연수원 쪽으로 돌렸다. 진입로를 따라 둥근 돌을 켜켜이 박아 넣은 돌담은 여전히 고즈넉한 멋을 풍겼다. 옛 학생들이 손수 쌓았다는 ‘수제 돌담’이다. 건물이 헐린 자리에는 정원이 들어섰지만, 소나무 사이로 내다보이는 바다는 예전 그대로였다.
오는 28일은 이곳에서 출발한 방어진중학교의 생일이다. 79년 전 이날 학교를 운영할 재단법인 ‘해양학회’가 설립 인가를 받았다. 재단을 세운 이는 광복 뒤 멸치잡이로 부를 일군 이종산(1896~1949) 선생이다. 숲속 공덕비는 선생이 토지 3만 4000평과 돈 200만 원을 아낌없이 바쳐 지역 청년들의 배움길을 열었다고 전한다. 동구 최초의 중등교육기관이었다. 선생이 세상을 떠난 뒤 유족은 재정난에 허덕이던 학교를 1959년 조건 없이 나라에 넘겼다. 그 땅은 이후 학생수련원과 교육연수원으로 이어지며 지역 교육의 뿌리가 됐다.
정원을 걷다 씁쓸함이 밀려왔다. 취재하며 알게 된 이 땅의 순탄치 않은 세월이 떠올라서다. 2000년대 중반 대왕암공원 조성을 앞세운 연수원 이전 요구가 시작됐다. 대기업 창업주 기념관, 1000억 원대 고래체험장 구상이 잇따랐고, 자기 땅도 아닌데 연수원 이전을 공약으로 내건 교육감도 있었다. 연수원이 떠난 뒤에는 호텔 활용론까지 나왔다. 그때마다 천혜의 자연을 시민에게 돌려주자는 명분이 앞섰다.
하지만 이 땅은 한 번도 시민 곁을 떠난 적이 없다. 수십 년간 아이들이 이곳에서 꿈을 키웠고, 교사들은 바다를 마주하며 쉼과 영감을 얻어 교실로 돌아갔을 것이다. 그 오랜 개발 논의 속에서 교육에 써 달라던 설립자의 뜻은 언제나 뒷전으로 밀렸다. 돌담길 둔덕의 선생 묘는 이 모든 곡절을 묵묵히 견뎌 왔다.
정원 중앙 안내판에는 옛 분수대의 돌 조형물을 설립자의 기부 정신을 기려 본래 자리에 보존했다고 적혀 있었다. 행정이 이 땅의 내력을 아주 잊지는 않았구나 싶어 조금은 안도했다. 그 앞에 서서 한참 바다를 바라보다 다시 자문했다. 선생은 왜 이 바닷가에 아이들의 학교를 세웠을까.
솔숲을 빠져나오는데 돌담 아래 고양이 한 마리가 오도카니 앉아 이쪽을 빤히 바라봤다. 바다가 보이는 교실을 아이들에게 선사한 선각자의 너른 마음을 알기나 하느냐는 듯. 기부는 그 뜻이 지켜질 때 대를 잇는다. 한데 선생이 배움터로 바친 땅은 오랜 세월 정치 셈법과 개발 구상 사이를 떠돌았다. 그 모습을 고스란히 지켜본 사회에서 누가 또 천금 같은 땅을 내놓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