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추위까지 비즈니스에 활용한 '북극곰 피칭'
김종우 서울경제부 부장
오울루, 기발한 스타트업 행사로 인기
혹한의 환경을 오락적 요소로 활용해
비수도권 소도시의 다양한 생존 전략
해외 인재 적극 영입… 국제도시 완성
핀란드 북부 항구 도시인 오울루에서는 매년 2월 ‘북극곰 피칭(Polar Bear Pitching)’이라는 스타트업 행사가 열린다. 이 행사의 하이라이트는 ‘아반토(얼음 구멍) 대회’다. 대회는 투자를 유치하려는 스타트업 창업자 10명이 얼음물에 들어가 투자자에게 사업 아이템을 ‘피칭’(설명)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창업자들은 얼음물에서 견딜 수 있는 시간만큼 사업을 설명할 수 있다. 국내에서도 유명한 북극곰 수영대회에 ‘투자 유치대회’를 섞은 셈이다. 2014년 시작된 북극곰 피칭은 이제 일본, 인도 등에서 아반토 대회 예선이 열릴 정도로 인기를 누리고 있다. 오울루는 왜 이 기괴하고도 흥미로운 행사를 만든 걸까.
북위 65도에 위치한 오울루는 북극권(북위 약 66도) 경계에서 근접한 북방 도시다. 지역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은 기획 시리즈의 취재를 위해 오울루를 찾은 10월 중순, 오울루는 이미 겨울 날씨였다. 한반도 최북단인 북한 온성군보다 위도가 22도나 더 높은 오울루는 그러나 단지 추위만 유명한 것은 아니다. 오울루는 1만 7000여 개 기업이 활동하는 북유럽 ICT 산업의 대표 도시로 더 유명하다.
세계적인 통신기업인 노키아의 통신장비 부문 연구·생산시설이 자리 잡고 있어 ‘노키아 도시’로 알려진 오울루는 경제 활력을 지키기 위해 다양하고 기발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통신, AI 관련 스타트업을 지원하고 방위산업, 수소산업 등 산업 다각화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비즈니스오울루 총괄 책임자(디렉터)인 유하 알라무르슬라는 이와 관련해 “인구가 적은 나라의 비수도권 도시는 스스로 더 많은 일을 해내야 한다”고 말했다.
북극곰 피칭도 이런 노력의 결과로 탄생했다. 영하 10~30도의 혹한에서 열리는 이 행사는 투자 유치 설명회를 넘어 오락적인 요소까지 가미된 흥행 이벤트가 돼 세계 각국에 생중계된다. 벤처캐피털의 투자와 별개로 우승팀에게 1만 유로의 상금도 수여된다. 알라무르슬라 총괄은 “행사 주간에 글로벌 벤처캐피털과 스타트업 150~200곳이 모인다”고 설명했다. 지난해에는 일본, 인도, 스위스에서 별도의 지역 예선이 열렸고 올해는 일본, 인도, 덴마크, 캐나다에서 예선이 열린다.
북극곰 피칭은 오울루가 성장과 번영을 위해 기울이는 다양한 노력 가운데 하나다. 오울루는 1980년대 이후 무선통신 산업과 함께 ICT 도시로 변신했고, 이제 AI 열풍과 함께 두 번째 변신을 시도하고 있다. 특히 도시 브랜드를 높이기 위해 각종 경제·문화 행사 등 다양한 아이디어를 내고 실천으로 옮긴다.
전세계를 향해 도시 경쟁력을 ‘피칭’하는 오울루는 올해 유럽 문화수도로 선정됐다. 이 때문에 인근 39개 지방자치단체와 함께 연간 약 3500건의 문화행사를 열고 있다. 1996년 시작된 에어기타 세계 챔피언십도 오울루의 대표 행사다. 실제 기타 없이 기타를 연주하는 듯한 몸짓으로 실력을 겨루는 이 대회에는 매년 세계 각국의 참가자가 몰린다. 오울루는 최근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가 주는 ‘유럽 혁신수도상(iCapital)’의 ‘떠오르는 혁신도시’ 경쟁에서도 준결승에 올랐다.
오울루는 해외 인재 유치에도 적극적이다. 해외 인재를 발굴해 지역 기업과 연결하고, 가족의 이주·정착을 도우며, 장기근속까지 이어지게 하는 총괄 지원 체계를 구축했다. 오울루에 거주하는 외국인 유학생·연구자·구직자도 유망 인재로 판단해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2026년에 시작된 탤런트노스(TalentNorth)는 스웨덴·노르웨이의 대학과 도시까지 참여하는 국제 인재유치 프로젝트로, 총사업비(전체 참여 도시 합계)가 210만 유로에 달한다.
오울루는 지난 4월 기준 인구가 21만 7000여 명으로 부산 연제구와 비슷한 작은 도시지만 140개국에서 온 1만 3900여 명의 외국인이 살고 있다. 1분기 기준 연제구에 거주하는 등록 외국인 수는 1034명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오우룰의 국제화 수준을 이해할 수 있다.
오울루는 해외 언론 취재에도 매우 적극적으로 대응한다. 이번 취재에는 오울루 주재 한국 명예영사(마르티 라우노넨)를 비롯해 비즈니스오울루, 오울루대학교 등이 적극적으로 호응했다. 특히 주핀란드 한국대사관도 이번 취재를 적극 지원했다.
오울루에도 유럽의 전반적인 경기 침체 영향은 있다. 오울루의 2025년 실업률은 전년 대비 0.8%포인트(P), 청년실업률은 같은 기간 1.3%P 올랐다. 그러나 대학과 지방정부, 지역 기업이 기발하고 다양한 노력을 아끼지 않으면서 지난해 새로 설립된 기업이 1440개에 이른다. 생존을 위해 과감한 투자를 아끼지 않는 오울루의 ICT·AI 전략은 유럽과 미국의 AI 산업을 분석한 〈부산일보〉의 ‘AI 산업, 비수도권이 이끈다’에서 자세히 보도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