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출생 아우성인데 ‘국가 정자은행’ 없는 대한민국 [남성 빠진 '반쪽' 난임 대책]

이대성 기자 nmak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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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지자체 난임 부부 지원책
여성 가임력 보존·회복에 집중
원인 절반 해당 남성 지원 전무
체계적인 정자 동결 시설 통해
무정자증 등 남성 난임 지원해야

서울의 한 공공산후조리원 신생아실의 모습. 연합뉴스 서울의 한 공공산후조리원 신생아실의 모습. 연합뉴스

정부가 저출생 해소를 위해 난임 부부 지원을 확대하고 있지만 부부 난임 시술과 여성의 가임력 보존에 집중하고 있어 ‘반쪽’ 대책에 그친다는 지적이 나온다. 난임 시술을 받을 수 없는 난임 부부나 난임 원인의 절반을 차지하는 남성 난임은 지원 대상에서 제외된 것이다. 기증 정자로 난임 시술을 하는 정자은행은 민간에서 제각각 운영하고 있어 안전성 우려도 제기된다. 저출생 쇼크 속에 남성 난임 지원과 체계적인 정자 기증을 위한 국가 정자은행 설립 논의를 더 이상 늦춰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정부는 올해부터 거주지·소득 수준과 무관하게 난임 시술 자기 부담금을 지원하는 ‘난임 부부 맞춤형 지원 대책’을 시행하고 있다. 전국 일부 지역에 있던 지원 대상 소득 제한을 없애고, 출산 의지가 뚜렷한 전국의 난임 부부에게 체외수정 시술 지원 횟수를 늘리는 내용이다. 부산시도 올 들어 전국 최초로 생식 능력 손상이 우려되는 여성 질병·질환자 중 기준 중위소득 180% 이하를 대상으로 연 200만 원까지 보조생식술(인공수정·시험관 아기)을 지원하고 있다.

정부와 시의 지원은 종전보다 수혜 범위가 넒어졌지만, 보조생식술 자체가 불가능한 난임 부부는 해당 사항이 없다. 대표적 사례가 무정자증이나 정자부족증으로 아이를 가질 수 없는 난임 부부이다.

정부의 난임 지원 정책이 여성의 가임력 보존과 회복에만 집중되고 있는 것도 문제다. 실제 서울시는 지난해 9월부터 전국 최초로 향후 임신 의향이 있는 여성들이 만혼과 항암 치료 등으로 난소 기능이 저하되기 전 건강한 난자를 채취해 동결·보관할 수 있도록 난자 동결 시술비를 지원하고 있다. 올 2월부터는 지원 대상에 20대도 포함하고 지원 대상 인원도 크게 늘렸다. 부산시도 1월부터 난소 보호 호르몬 치료, 임신 대비 면역력 검사 등 여성 난임 예방 의료를 지원하고, 이달부터 냉동 난자를 이용한 보조생식술에 대해서도 시술비를 지원하고 있다.

이처럼 정부와 지자체의 난임 지원책은 난임 부부 시술과 여성의 가임력 보존·회복에만 집중돼 있을 뿐, 남성의 가임력을 높이기 위한 대책은 사실상 전무한 실정이다. 전체 난임 부부의 절반 가량이 무정자증과 정자부족증 등 남성 가임력과 관련이 있지만, 직접적인 지원 대상이 아니다. 난임을 유발하는 항암 치료나 해외 근무, 만혼 등으로 최근 수요가 많아진 정자 자가 동결 비용에 대한 정부의 지원은 아예 없다. 이달부터 정자 활동성 검사 지원(최대 5만 원) 사업이 시작됐지만, 남성 가임력 보존과 회복 지원에 있어 걸음마 수준에 불과하다.

전문가들은 국가 정자은행을 만들어 남성 원인 난임 부부를 체계적이고 종합적으로 지원하고, 기증 정자 관리의 안전성과 신뢰도를 높일 것을 주문한다. 몇몇 병원들은 정자 동결·보관 기술과 시설을 갖추고 있지만, 예산과 기증 정자 부족 등으로 제대로 운영되지 않고 있다. 병원마다 기증 정자 관리와 기증자 정보 처리 기준과 보조생식술 후 사후 관리도 제각각이다.

박남철 한국공공정자은행연구원 이사장은 “OECD 국가 중 국가 차원의 정자은행이 없는 곳은 우리나라가 유일하다”며 “국가 정자은행이 만들어지면, 정자 자가 동결을 늘려 가임력을 높이고 국가 재원으로 보상과 홍보를 강화해 정자 기증·수증 활성화를 꾀할 수 있어 국가적 문제로 떠오른 저출생과 남성 난임을 체계적으로 해결하고 지원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대성 기자 nmak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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