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린 산책]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 / 변성찬,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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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내 폭발하지 못한 누아르, 우리시대 처연한 청춘이여…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는 노동석 감독의 두 번째 연출작이다.

그는 유난히 부산과 인연이 깊은 듯하다. 2004년 그의 첫 장편 '마이 제너레이션'은 부산영화제에서 상영되어 열렬한 반응과 평가를 얻었고 일약 독립영화계의 '스타' 감독이 되었다. 2006년 그는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를 들고 다시 부산영화제를 찾아왔고 역시 좋은 반응과 평가를 얻었다.

영화의 강한 일인칭 시점들('My'와 '우리')이 시사하듯 두 영화는 모두 오늘을 사는 '청춘'에 의한, '청춘'에 관한 이야기이다. 바로 이 점이 노동석의 청춘영화가 이전의 많은 회고조의 '청춘영화들'과 다른 지점이다.

노동석에게 청춘은 현재를 살아가는 '나의 세대'이고 '우리'인 것이다. 그 세대의 일상, 그 세대의 표정과 몸짓과 걸음걸이에는, '불안과 슬픔'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다.

사실, '불안'은 모든 청춘의 모습이고 특권이겠지만 그 불안에 드리워진 '슬픔'은 어쩔 수 없는 포스트 IMF 시대에 청춘을 맞은 그 '세대'의 표정처럼 보인다.

그 슬픔과 불안을 위에서가 아니라 옆에서 바라보는 것, 거짓 희망과 낭만을 덧씌우지 않고 온전하게 받아들이는 것, 이것이 노동석의 청춘영화이다. 그는 그렇게 옆에서 바라봐주는 것만으로도 힘이고 희망일 것이라고 믿는다.

두 영화는 근본적으로 같은 이야기를 다른 방식으로 말하는 일종의 연작이다. 두 영화는 모두 청소년/소녀에서 청년으로 넘어가는 남/녀의 '입사식'에 대한 세밀하고 사려 깊은 관찰이다. 하지만 그 이야기를 전하는 화법은 매우 다르다. 감독 자신의 말처럼 '마이 제너레이션'이 '맨 얼굴'의 영화였다면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는 '화장'을 하고 있다.

전자가 흑백이고 후자가 컬러라는 말이 아니다. 그 '화장술'의 정체는 '장르'라는 가면이다. 소녀는 카드 빚의 거미줄에 붙잡히지만 소년은 총을 꿈꾼다. 제목에서 드러나듯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의 '누아르적 분위기'는 농염하기까지 하다. 하지만 끝내 '낭만적인 비극의 정서'는 폭발하지 못한다. 손은 힘없이 내려지고 총은 세상을 향해 발사되지 않는다, 못한다. 그 '세대'에게는 '낭만적 비극'조차 허용되지 않는다는 것일까? 때론 맨 얼굴보다 짙은 화장이 더 처연하고 슬퍼 보일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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