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외대 신입생 참사] 후배 구하다 숨진 양성호 모친 "공사장 일도 마다 않던 듬직한 아들, 난 이제 어떻게 사나…"
입력 : 2014-02-19 11:04:46 수정 : 2014-02-19 14:14:09
후배를 구하다 숨진 양성호 씨의 어머니 하계순 씨가 19일 오전 부산 금정구 침례병원 빈소에서 향을 피우고 있다. 이재찬 기자 chan@"자기보다 남을 더 챙기라고 가르쳤던 제가 죄인입니다."
19일 이른 아침 부산 금정구 침례병원 빈소에서 만난 고 양성호(24·미얀마어과 4년) 씨 어머니 하계순(52) 씨는 아직도 아들의 죽음이 믿기지 않은 듯 하염없이 아들의 영정사진만 바라보고 있었다.
양 씨는 지난 17일 밤 경북 경주시 마우나오션리조트 실내체육관 붕괴 당시 실내에서 탈출했지만 다른 학생을 구하기 위해 다시 체육관에 뛰어들었다가 변을 당한 것으로 밝혀져(본보 지난 18일자 3면 보도) 주위를 더욱 안타깝게 하고 있다.
어머니 하 씨는 "아침에 '잘 다녀오겠다'며 환하게 웃으며 집을 나섰던 아들이 싸늘한 주검이 되어 돌아올 줄은 몰랐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 .
"아침에 잘 다녀오겠다며
웃으며 집 나섰던 아들이
싸늘한 주검 되어 올 줄이야"
SNS 추모 물결 이어져
부산 남구청, 의사자 추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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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 양성호 씨의 생전 모습. 지인 제공 |
하 씨에게 양 씨는 언제나 부모 생각을 먼저 하는 듬직한 아들이었다. "밖에서 일을 하고 들어가면, 성호가 설거지나 청소를 해 놓고 기다렸어요. 엄마가 힘들면 안 된다면서요."
하 씨가 식당을 운영할 때 고등학생이었던 양 씨는 등교 전 식당에서 서빙을 하고 갈 정도로 효심이 남달랐다. 병원에 하 씨가 입원했을 때도 수발을 다 들었던 아들이다. 하 씨는 "이렇게 갈려고, 그렇게 부모에게 잘했던 것 같다"며 통곡했다.
양 씨는 배정고등학교 재학 시절 별명이 '해피 바이러스'일 정도로 밝은 성품을 가지고 있었다. 2012년 해병대 제대 후에도 학비를 마련하기 위해 공사장 아르바이트도 마다하지 않았던 듬직한 청년이었다.
하 씨는 17일 오후 11시 50분께 붕괴 사고 소식을 접하고, 다른 학생을 통해 아들의 무사함을 확인했다. 하 씨는 "성호가 전화를 받지 않았어요. 다른 애들한테 전화를 해보니 성호가 친구들 구급차에 태우며 수습하느라 정신이 없다는 거예요. 그래서 안심하고 있었죠."
하지만 기쁨도 잠시, 40분 후 텔레비전 뉴스 자막에 아들의 이름이 사망자로 적힌 것을 보고 눈을 의심했다. 잠시 후 학교 측에서 연락을 받고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그 길로 경주 동국대학교병원 영안실로 간 하 씨는 그때까지도 온기가 남아 있는 아들의 시신을 붙잡고 오열을 터뜨렸다. 양 씨는 머리에 피를 흘리고, 목에는 현장 진행을 위해 사용했던 무전기를 착용한 채 누워 있었다. "성호가 양손을 꼭 오므리고 있더라고요. 어두컴컴한 눈구덩이 밑에서 얼마나 무서웠으면…."
하 씨는 '자신보다 남을 배려하라'고 가르쳤던 자신 때문에 아들이 죽은 것만 같았다. 하 씨는 14년간 부산 남부소방서 여성의용소방대원으로 활동했으며, 지난 연말 소방방재청장 표창을 받기도 했다.
소방대원으로 활동했던 하 씨는 사고 당시 초동대처에도 큰 아쉬움을 나타냈다. "특수구조대가 왜 한 시간이나 뒤에 출동한 것인지, 제설차 투입은 왜 그렇게 더뎠는지 이해되지 않아요."
하 씨는 "이제 와서 다 부질없는 이야기"라며 "천금을 준다고 해도 안 바꿀 아들인데, 성호가 없이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하다"고 망연자실해 했다.
한편 양 씨의 의로운 행동이 알려지자 인터넷 SNS에서 추모 글들이 이어지고 있다. 부산 남구청은 양 씨를 의사자(義死者)로 지정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송지연 기자 sjy@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