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진태의 요가로 세상 보기]69. 비트 음악에 맞춰 춤추듯 물 흐르듯, 리듬 요가
리듬 요가‧비트 요가‧슬로우 빈야사 요가는 춤추듯이 하는 것이 특징이다. ‘태양 경배 체조’를 좌우 번갈아 연속 실행하면, 동작이 물 흐르듯 부드럽게 연결되어 상체와 하체를 고루 움직이는 전신운동이 된다. 시연 임은주.
다소 빠르고 경쾌한 비트(beat) 음악에 맞춰, 인도‧아라비안 풍의 둠칫둠칫한 리듬 또는 잔잔한 발라드풍 리듬과 함께 춤추듯 물 흐르듯 동작을 연결 구성하여 이어가는 요가를 ‘리듬 요가(rhythm yoga)’ 또는 ‘비트 요가(beat yoga)’라 칭한다. 근간엔 하타 요가의 독특한 한 장르가 되었다.
하타 요가는 신체 수련을 통해 정신적인 깨달음을 얻는 것이 최종 목적인 요가다. 요가 수트라에 의하면 요가의 종류를 크게 라자 요가, 하타 요가, 카르마 요가, 즈나나 요가, 박티 요가, 만트라 요가 등으로 분류하고 있는데 그중 하타 요가는 차츰 여러 계통과 스타일로 나뉘고 발전하였다.
“하타 요가는 육체‧호흡‧명상을 통한 수련법이다. 즉 몸과 마음만 있다면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하타 요가의 매력이다.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유연하든 그렇지 못하든, 건강하든 그렇지 못하든, 몸과 마음 상태를 불문하고 누구나 할 수 있다는 뜻이다. 우리가 어떠한 상태에 놓여 있든 그 상태 그대로 시작하면 되는 것이다. 요가 수련은 오로지 ‘수련’ 그뿐이다. 수련을 반복하고 또 반복하여 더욱더 건강하고 날씬하게 탄력 있는 몸을 만드는 것뿐만 아니라, 자신의 몸과 마음에 대해 더 깊은 통찰력을 얻게 된다. 하타 요가는 육체라는 도구를 활용하여 몸‧마음‧정신에 대한 의식을 깨워주고, 평정과 완전함의 상태로 돌아오게 해준다.”(Jayeswari‧Tina Park)
사람들은 “나는 유연성이 떨어진다, 체력이 바닥이다, 나이가 너무 들었다, 정신적으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다. 성격이 산만하다, 성격이 급하다” 등등 요가를 할 수 없는 여러 가지 이유를 들고 있다. 그러면서 요가는 이미 숙련된 사람들만 수련이 가능하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이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더욱 요가를 수련해야 하는 것이다. 요가는 자기 능력껏 한계까지만 실행해도 완벽한 동작의 시연 못지않게 심신에 그 작용력이 미치는 것이다.
하타 요가는 인도의 정통 요가를 바탕으로 현대인의 성품과 라이프 스타일이 고려되어 점차 발전되어 왔다. 방법의 차이는 있겠지만 모든 하타 요가는 화합, 균형, 건강, 안정감과 존재에 대한 자각 향상에 그 목적을 둔다고 선현들은 역설하고 있다.
하타 요가 중에서 아사나 수련을 바탕으로 하는 ‘빈야사 요가’ 스타일은 흔히들 움직이는 명상 요가라고도 한다. 그런 면에서 이런 리듬 요가‧비트 요가도 경쾌한 음악에 맞춰 쉼 없이 물 흐르듯 동작을 연결하여 진행한다는 차원에서 크리쉬나마차랴에 의해 창시된 일종의 빈야사 요가의 한 형태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빈야사(Vinyasa)란 ‘특별한 방법에 의해 어디에 놓는다’는 뜻이며 또한 ‘흐르다’ ‘연결하다’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물론 동작 하나하나에 호흡과 함께 의식이 함께 따라가야 함은 당연지사라 하겠다.
빈야사란 끊임없이 변화하고 다양하게 이루어지는 삶의 순간순간을 꿰어 연결하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그 순간들을 연결하는 길은 바로 호흡이다. 이 호흡을 매 순간 주시하며 호흡과 동작이 짝이 되어 함께하는 형태로 아사나를 실행하는 것이 빈야사 요가이다.
빠르고 경쾌한 음악에 맞춰 동작을 이어가는 특징이 있어 일종의 춤, 댄싱, 무용, 발레, 태극권, 태권도 품새, 기천무(氣天武) 춤 등의 형태와 유사하다. 일종의 춤 명상법이라고도 할 수 있을 정도로 몰입하면 깊이 빠져들 수 있는 매력도 있다.
“마음을 고요하게 만들 수 있는 가장 빠른 방법은 몸을 움직이는 것이다.”(가브리엘 로스)
보편적으로 음악은 길고 짧은 음과 세고 여린 음이 순차적으로 결합되어 있다. 이를 리듬이라고 한다. 여기에 음높이의 변화가 결합하면 멜로디(melody‧가락, 선율)가 되고, 여러 음이 동시에 표현되면 하모니(harmony‧화성)가 된다. 이들 리듬, 멜로디, 하모니를 음악의 3요소라고 한다. 그런데 하모니가 없는 음악도 많이 있으므로 음악을 이루는 기본 요소는 리듬과 멜로디이다. 따라서 소리가 리듬과 멜로디를 가지면 음악이 된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이 중 박자나 빠르기(tempo) 등으로 표현되는 리듬은 음악의 구조를 제공하기 때문에 음악의 가장 근본적인 요소다. 리듬은 흔히 심장의 박동에서 비롯된다고 한다. 플라톤은 “리듬은 육체가 아니라 마음에서 나온다”고 했다. 리듬이란 발을 까닥거리는 동작이나 몸을 움직이는 춤으로 표현되기도 하지만 결국은 두뇌의 작용이다.
리듬은 음(표)과 쉼(표)의 길이를 달리하여 연속적으로 진행하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리듬을 흐름결이라고도 하는데 규칙을 가지고 움직이는 소리의 흐름이기 때문이다.
리듬은 흐름이나 움직임을 뜻하는 그리스어의 리트머스(rhythmos)에서 유래해 리듬(rhythm)으로 변하였다. 리듬을 이루는 작은 단위가 바로 박(拍)이다. 박은 음악의 맥박인 셈이다. 흔히들 박자(拍子)라고 한다.
자연과 사람, 삶에서 경험할 수 있는 박에는 규칙 박, 불규칙 박, 센 박, 여린 박, 빠른 박, 느린 박 등의 여러 가지가 있는데, 음악은 그러한 성질들을 골고루 이용하여 리듬 즉 흐름결을 만드는 것이다.
음악의 3요소인 리듬‧멜로디‧화음(화성)에서 멜로디와 화음(화성)을 가지지 않는 음악은 있어도, 리듬이 없는 음악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런 의미에서 “태초에 리듬이 있었다”라고 뷜로가 말한 것처럼, 리듬은 음악의 가장 근원적 요소라고 할 수 있다.
비트(beat)라는 뜻은 명사로 리듬, 박자를 뜻하면서도 동사로는 통제하다, 능가하다, 이기다, 승리하다라는 의미를 가진다. 또한 북을 두드리다 할 때의 두드리다를 의미하는 형태로도 쓰인다. 심장박동을 의미하는 ‘하트 비트(heart beat)’의 의미도 있다. 군사 은어로 비밀 아지트를 줄여서 부르는 것으로 영어 피트(pit)를 한국식‧일본식으로 발음한 것에서 유래되었다는 설도 있다. 개인 참호 등을 말한다.
리듬 요가‧비트 요가는 경쾌하고 신나는 리듬에 맞추어 역동적 자세와 완전한 호흡, 강하고도 유연한 사고 등을 결합시킬 목적으로 행하는 요가의 또 다른 장르를 이루고 있다 할 것이다. 한 동작을 오랫동안 버티지 못할 정도로 관절이 노쇠한 사람이나 평소에 운동량이 부족한 사람들에게 특히 유익한 요가 방식이다.
피로와 스트레스가 쌓인 현대인들에게 활력과 자신감을 고양시켜주는 효과가 크다. 한마디로 요가가 조용하고 고요하고 느릿하고 무덤덤한 수련이라고만 생각했던 고정관념을 타파한 일종의 파격적인 수련 방식이다. 기구나 도구를 사용하지 않고도 고강도의 운동이 가능하다는 최대의 장점은 보너스로 해두자.
보통 요가의 형태로 한 동작 후 잠시 이완 후에 다시 연결하여 진행하는 방식의 전통적인 요가 수련 방식과는 다르게 계속 동작이 이어지며 쉼 또는 휴식의 시간이 적기 때문에 역동적으로 느껴지나, 때로는 상당히 힘들게 느껴질 수도 있다.
전통 국악기인 장구의 줄을 팽팽하게 조여 놓지 않고 연주 시에만 조였다가 보관 시에는 줄을 느슨하게 풀어 주어야 하는 이치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우리 인체는 전통요가 방식처럼 적절한 긴장과 이완이 동시에 필요하다는 말이다.
매사에 과유불급이라고 했다. 각자 체력에 무리가 가지 않게 욕심내지 않고 적당히 수련하는 것이 최선의 방책이다. 한국인에게 밋밋하고 덤덤하고 그러나 담백한 쌀로 지은 밥은 태어나서 저승에 갈 때까지 평생 먹어도 물리지 않는 연유가 무엇일까? 라면이나 햄버거 짜파게티 등 짜릿한 음식을 평생 그렇게 먹을 수 없는 이유와 유사하다. 전통적인 방식의 요가 수련과 비교할 때.
수년 전에 영국 런던에서 테킬라 술을 마신 요가 클래스 수강생들이 클럽에서 춤을 추듯 음악에 몸을 맡기며 요가 동작을 실행한다는 기사를 보고 뜨악했던 기억이 있다.
‘비트 요가’ 창시자라고 알려진 영국 데이빗 사이는 “테킬라 술의 역할은 주저함을 없애주는 거예요. 제약에서 벗어나 더욱더 자유롭고 더욱더 용감하게 요가를 즐길 수 있도록이요”라고 말하는 장면이 매체를 탄 적이 있다.
이 요가 형태는 테킬라 술뿐만 아니라 초콜릿 등 온몸의 감각을 깨울 수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활용한다고 한다. 그래서 이 클래스에 참가한 참가자들은 감정과 신체 상태에 충실함으로써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이게 된다는 것이다. 물론 국내에서 ‘비트 요가’라 하여 개발 창시되어 현재도 널리 보급되고 있는 ‘비트 요가’의 개념과는 판이하게 다르리라 생각되지만.
자칫하면 쥐 잡으려다 독 깨는 과오를 범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성(性)과 속(俗)의 경계나 구별이 결코 쉽지 않은 상황에서 요가와 술은 그렇게 바람직한 조합은 아니다.
하기야 일반적인 수행 방식에서는 대부분 금기시되고 있는 성(性‧sex)까지도, 남녀 간의 성(性) 에너지를 이용해 영적 에너지를 고취시킨다는 전제를 앞세운 좌도 탄트라 요가가 있기도 하다. 물론 거의 철저하게 비밀리에 밀교 형식으로 진행된다.
탄트라 경전 ‘사라하의 노래’에 의하면 “가장 고귀한 것은 가장 천하고 흔한 것 속에 감추어져 있다”고 주장한다.
좌도 밀교(vamacaras), 좌도 탄트라에는 판차 마카라(pancha makara)라는 것이 있는데 그중에는 열을 형성하는 화(火)의 에너지로 마디아(madya) 즉 술을 먹기도 한다. 자칫 삿된 길로 빠져들기 딱 좋은 형태라 할 것이다.
이번 칼럼(69회)의 동영상에 소개하는 리듬 요가‧비트 요가‧슬로우 빈야사 요가는 ‘수리야 나마스카라’ 즉 ‘태양 경배 체조’를 좌우 번갈아 연속 실행하는 방식으로 진행한다. 동작들의 움직임이 물 흐르듯 부드럽게 연결되어 상체와 하체를 고루 사용해 움직이기에 전신운동이 된다.
리듬 요가‧비트 요가는 춤추듯이 하는 것이 특징이다. 춤은 모든 예술 장르의 기본이며 기초로 여겨진다. 화구(畫具)나 악기가 없이도 몸 하나로 자유자재로 그리고, 연주할 수 있다. 인류가 정신세계를 표현한 태초의 방식도 몸짓이다. 그렇다면 춤추고 싶은 욕구는 인간의 본성임에 틀림이 없는 듯하다. 인간이 인간의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세계도 있다.
노자의 ‘도가도비상도(道可道非常道)’는 도는 말로써 한정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라고 한 것처럼. 그럼에도 그 세계를 표현할 수 있는 무언가를 찾는다면 그것은 춤과 음악일 것이다.
춤은 내면의 욕구를 소리로 표현한 음악에 맞추어 추는 것이다. 춤에는 환희, 슬픔, 멋을 포함하여 인생의 모든 희로애락이 내포되어 있다. 자연의 질서를 몸으로 실천하고 수행하는 것, 마음의 움직임을 음악에 맞춰 몸짓을 통해 표현하는 것이 춤이라고들 정의하고 있다.
1899년 이사도라 던컨이 사회적 인습에 맞서 토슈즈를 벗어 버리고 맨발과 반나체로 무대에 올라 자연과 음악에 대한 열정을 표현하면서 즉흥에 가까운 춤을 추게 된다. 현대무용의 출현을 알리는 상징적 사건이었다.
“정서가 자연스럽게 흘러 표정이 되고 몸짓이 되며, 자세가 되고 호흡이 될 때, 우리의 몸은 가장 건강하고 아름답다. 설령 그것이 슬픔이며 분노, 우울의 감정이더라도 안에서 은폐한 채 곪아버리는 것보다 있는 그대로 존중받으며 몸을 통해 펼쳐지는 것이 낫다. 그때 비로소 건강한 슬픔이 되고 몸을 살리는 분노가 된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자신의 감정을 그대로 표출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지만 휴식의 순간 그리고 혼자 있는 시간, 무엇보다도 춤을 추는 시간에 우리는 그럴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한지영)
본격적인 춤명상법이 있다. 그중 하나인 ‘수피 댄스’는 회교 신비주의 일파인 수피즘에서 유래한 것이다. 음악과 춤을 영성의 중요한 도구로 여긴 시인 루미가 제자들에게 처음 가르쳤다. 터키에서는 듣는다는 의미의 ‘세마’라고 부르는 이 수피 댄스는 춤을 통해 신과 교감하며, 황홀경을 경험하는 것이 목적이다.
또 다른 춤명상법은 정해진 동작이나 규칙에 얽매이지 않고 음악에 몸을 자연스럽게 맡기는 방법이다. 인위적으로가 아닌 제 스스로 동작이 일어나게 하는 것이다. 일종의 자발공(自發功) 또는 기(氣)춤이라고 불러도 될 듯한 방식이다. 기(氣)의 흐름을 타고 자신의 몸의 움직임을 놀이하듯 맡기는 것이다. 춤명상을 통해 기혈의 소통도 도모하고, 울체된 기를 풀어내는 일종의 심리적인 자기치유 방식이기도 하다.
류시화는 말한다. “춤명상은 춤으로 하는 자기치유이다. 무의식 속에 쌓인 잠재의식을 몸으로 표현해 지워 버린다. 우리의 몸은 수많은 기억과 상처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기 때문에 춤을 통해 몸 깊은 곳으로 들어가서 해방시키는 것이다”라고. 또한 “그리스인 조르바의 주인공 조르바에게 춤은 상처를 준 세상과의 화해이자 아픔을 승화하는 몸짓이다. 어린 아들이 죽었을 때 조르바는 아들의 무덤 앞에서 춤을 춘다. 사람들이 그에게 미쳤다고 손가락질했지만 춤을 추지 않았다면 정말 미치고 말았을 것이라고 조르바는 말한다”는 첨언까지 든다.
멋의 꽃이 춤이며, 생활에 활력을 불어넣고 신명을 일으키는 것도 또한 춤이다. 춤이야말로 인간이 나비가 되고 새가 되어 마음껏 상상의 하늘을 나는 동작이요 표현이 아닐까. 춤은 생활의 리듬이요 아름다움이다. 춤이 없다고 하면 인생은 얼마나 삭막할까? 삼국유사에는 원효의 춤과 노래를 가리켜 화엄경을 배우는 것과 같다고까지 했다.
힌두의 3대 신 중의 하나인 시바는 춤의 창시자이자 대가이다. 나타라자는 이 춤의 왕인 시바를 기리는 호칭이기도 하다. 나아가 춤은 시바의 본질이다. 시바의 우주적 춤은 그의 창조, 유지, 파괴의 역할을 상징한다. 힌두 신화에서 시바의 춤은 한 시대를 마감하고, 다시 다른 시대를 여는 기능을 한다. 시바는 말 한마디 없이 춤을 통해 인간들에게 지혜를 전한다.
“인도에서는 모든 무용수들이 춤을 추기 전에 땅을 밟는 것에 용서를 구하기 위해 땅에 엎드려 절한다.”(니콜 엘피)
“당신은 춤을 추는가? 아무도 보지 않을 때, 혼자 음악을 들을 때, 흔들흔들 몸을 움직이는가? 그것이 겸연쩍거나 부끄럽지 않고 자연스러운가? 그렇다면 당신은 삶에서 누릴 수 있는 매우 큰 기쁨 하나를 남몰래 확보하고 있다고 믿어도 좋다.”(‘아무튼 피아노’의 저자 김겨울)
요가 수련자들은 이런 춤이 아니더라도 리듬 요가‧비트 요가‧빈야사 요가 등을 통해서 춤의 느낌을 받아 볼 수가 있다니 그것 또한 행운이다.
또한 리듬 요가‧비트 요가는 물 흐르듯 동작을 연속해서 진행한다고 했다. 물과 연관되어 제일 먼저 떠오르는 단어가 노자의 도덕경에 나오는 ‘상선약수(上善若水)’다. 예전에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미국 오바마 대통령의 54세 생일 기념으로, 한자로 이 휘호를 써서 선물한 것이기도 하다.
상선약수란 지극히 선한 것은 마치 물과 같다. 물은 만물을 이롭게 하면서도 다투지 않는다. 이 세상에서 으뜸가는 선의 표본이다. 물은 높은 곳에서 시작되어 낮은 곳으로 흘러가며 움푹한 곳은 채우고 더러운 곳은 다 받아들이며, 모든 것에 똑같은 기회를 주며 평등하고 만물을 깨끗이 씻어주며 흘러 흘러 결국은 큰 바다로 흘러가 더 넓은 것을 포용한다. 그런 물의 성질을 노자는 최고의 선으로 삼았다.
인생을 살아가는 데 최상의 방법은 물처럼 사는 것이라는 뜻이다. 물처럼 살다가 물처럼 가는 것이 인생이라면 물처럼 산다는 것이 어쩌면 세상의 변화와 한 호흡으로 사는 자연스러운 인생의 한 방법일 수도 있다.
노자는 도덕경 78장에서 “세상에 물보다 더 부드럽고 약한 것은 없지만, 굳고 강한 것을 치는 데 물을 이길 수 있는 것은 없다. 약함이 강함을 이기고 유연함이 단단함을 이긴다. 천하에 그것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실행하는 사람이 없다”고 역설하고 있다.
요가 역시 입과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닌 가슴과 몸으로 직접 행하는 ‘실천철학’을 강조하고 있다. 그것이 다섯 가지 요가 철학 중의 하나인 실재론적 인식론이다.
우리 요가 수련자들은 그렇게 자연스럽게 사는 인생의 한 방법으로 물과 같이 흐르며 연결 짓는 리듬 요가‧비트 요가‧빈야사 요가를 통해서 구사해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가장 위대한 신(神)은 물과 같다’고 한다. 요가수트라에서 두 번째 수행 단계인 권계(勸戒‧Niyama) 중에는 ‘내 속의 나의 신’ ‘자재신(自在神)’, ‘이스와라(Isyara)를 염송하라’는 구절이 있다. 이스와라는 내 속에 내재된 참된 자기(진아‧眞我), 아트만(atman)을 지칭한다. 즉 자신의 요가 수행을 돕는 스승과 같은 입장인데 그러나 우주창조와 같은 종교적 신(神)의 의미는 아니다. 따라서 헌신하면서도 그 보답을 바라지 않는다는 특징이 있다.
리듬 요가‧비트 요가를 수련하면서 거창하게 “오늘 나는 위대한 신(神)이 되었다!”라고 외쳐 보면 모두들 이상한 눈길로 쳐다볼 테지? 아마도 아마도 아마도(키사스 키사스 키사스 quizas quizas quizas).
“로카하 사마스타 숙히노 바반투(Lokah Samasta Sukhino Bhavantu).”
“온 누리에 존재하는 모든 이들에게 진정한 행복과 자유가 이루어지게 하소서!”
[리듬 요가‧비트 요가 / 최진태]
인도명상 아라비안 리듬타고 둠칫둠칫/춤추듯 물흐르듯 이어지는 요가동작/어느 덧 몸도 마음도 춤명상에 빠진다.
쉬운 듯 어려운 듯 강한 듯 유한 듯이/쉬는 듯 가는 듯이 놓는 듯 당기는 듯/쿵쿵쿵 심장박동음 소리마져 경쾌해
잡념은 달아나고 스트레스 싹 날아가/조금은 힘이드오 조금은 뻑쩍지끈/어느 덧 평온한 마음 무념무상 경지까지
한 동작에 호흡 챙김 두 동작에 마음 챙김/마음이 가는 곳에 에너지가 흐른단다/체력이 허락하는 곳 그까지만 딱 갈 것
최진태 부산요가지도자교육센터(부산요가명상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