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위기의 한국 영화

김상훈 기자 neato@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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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훈 문화부장

올해 1분기 한국 영화 점유율 29%
팬데믹 전 2019년 64% 비해 반토막

개봉 영화 1~5위 외국 영화 차지
올해 100만 명 넘은 한국 영화 2편뿐

티켓값 인상·상영 뒤 OTT 직행 원인
경쟁력 있는 콘텐츠로 전환점 마련을

최근 극장에서 한국 영화를 관람했다. 감동적인 스토리, 배우들의 열연으로 호평을 받은 영화였지만, 주말임에도 관객이 많지 않았다. 코로나 팬데믹 이전 한국 영화에 많은 관객이 몰렸던 것과는 확연히 다른 침체된 분위기였다.

한국 영화의 위기는 통계에서도 확인된다. 영화진흥위원회에 따르면 올해 1분기 한국 영화 점유율은 29.2%에 불과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전인 2019년 1분기 한국 영화 점유율 64%에 비해 절반도 못 미쳤다. 한국 영화 매출액도 2019년 1분기 2994억 원에서 올해 같은 기간 798억 원으로 4분의 1로 줄었다. 반면 외국 영화 매출액은 2019년 1분기 1683억 원에서 올해 같은 기간 1933억 원으로 이미 회복했다. 그야말로 한국 영화의 위기인 셈이다.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13일 기준 스크린에 걸려 있는 영화 누적 관객 수 1위와 2위는 일본 애니메이션인 ‘스즈메의 문단속’(537만 명)과 ‘더 퍼스트 슬램덩크’(464만 명)가 각각 차지했다. 이어 외국 영화·애니메이션인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Volume 3’(247만 명),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197만 명), ‘존 윅 4’(187만 명)가 3, 4, 5위를 점령했다. 한국 영화 ‘드림’이 105만 명으로 그나마 6위를 차지했다. 4월 26일 개봉한 ‘드림’은 박스오피스 1위로 스타트를 끊었지만, 개봉 4일 만에 ‘슈퍼마리오 브라더스’에 1위를 내줬다. 팬덤이 탄탄한 배우 박서준과 아이유가 주연으로 나서고 ‘극한직업’으로 1600만 관객을 동원했던 이병헌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지만 ‘슈퍼 마리오’를 잡지 못했다.

올해 개봉한 한국 영화 중 관객을 100만 명 이상 모은 건 172만 명에 그친 ‘교섭’과 ‘드림’(105만 명)뿐이다. ‘천만 영화’가 예사였던 한국 영화가 이제 100만 명도 버거워하는 현실이 됐다. 올해 4월 개봉한 한국 영화 ‘리바운드’ ‘킬링 로맨스’ 등이 모두 손익분기점을 넘지 못했다. 가장 큰 문제는 지난해 11월 ‘올빼미’ 이후 손익분기점을 넘은 한국 영화가 없다는 점이다. 손익분기점은커녕 100만 관객조차 넘기 힘든 상황에서 제작을 마쳤지만, 개봉 일을 정하지 못하는 영화가 100여 편에 이른다.

관객이 극장을 잘 찾지 않고 제작비 회수가 어려워지면서 한국 영화에 대한 투자자들의 관심도 식고 있다. 새로운 영화가 투자를 받아 촬영에 들어가는 경우가 드물고 일부 회사를 제외하곤 새로운 제작 논의가 거의 멈췄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돈 되는 시리즈나 OTT(온라인 동영상 서비스) 콘텐츠 제작으로 눈을 돌리는 경우도 많다.

이처럼 한국 영화가 침체에 빠지면서 부산에서 촬영을 마친 영화도 급감했다. 부산영상위원회에 따르면 올해 1분기 부산 촬영을 마친 영화는 2편에 불과했다. 지난해 부산에서 촬영한 영화는 26편인데 비하면 저조한 실정이다. 부산에서도 영화와 달리 OTT 시리즈 로케이션은 활발한 편이다. 올 1분기 부산에서 촬영한 OTT 시리즈는 넷플릭스 기대작인 ‘오늘도 사랑스럽개’ ‘스위트홈 시즌3’ 등 8편에 달했다.

한국 영화 위기 요인으로는 영화 티켓값 인상과 ‘홀드백’ 붕괴 등이 꼽힌다. 영화 티켓값은 평일 낮 기준으로 2020년 1만 2000원, 2021년 1만 3000원, 2022년 1만 4000원으로 매년 1000원씩 인상됐다. 코로나 이전인 2019년 1만 원보다 4000원이 인상됐다. 반면 극장의 대체재로 꼽히는 OTT 넷플릭스의 스탠다드 요금제는 현재 월 1만 3500원이다. 영화 한 편 관람료로 넷플릭스를 한 달 구독할 수 있는 셈이다. 홀드백은 극장 상영이 끝난 후 플랫폼 출시까지 걸리는 기간을 말한다. 관행적으로 45일이 지켜져 왔지만 팬데믹 이후엔 짧으면 2주에서 길면 한 달 정도로 확 줄었다. 조금만 기다리면 영화를 OTT에서 볼 수 있어서 극장에 갈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는 것이다.

하지만 마니아층이 탄탄한 일본 애니메이션과 극장에서 볼 때 스펙터클한 효과가 극대화하는 외국 영화의 흥행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퀼리티가 높고 경쟁력을 갖춘 콘텐츠라면 관객이 알아서 찾는다는 것이다.

한국 영화 침체가 길어져 극장 매출이 줄어들면 영화발전기금도 고갈될 가능성이 크다. 영화발전기금은 영화관 입장권 전체 매출의 3%를 징수한 금액이 주요 수입원이다. 전국의 독립·예술영화 제작과 개봉을 지원하고 영화인 양성을 위해 쓰인다. 영화발전기금 고갈이 영화 산업 전반에 큰 타격을 가할 수 있는 만큼 OTT에도 영화발전기금을 부과하거나 안정적 재원 마련을 위한 정부 차원의 대책이 필요하다.

위기 상황 속에서 31일 개봉 예정인 마동석 주연의 ‘범죄도시3’을 시작으로 기대작인 ‘밀수’ ‘콘크리트 유토피아’ 등이 개봉을 확정 지었는데 한국 영화가 다시 회복의 전환점을 마련했으면 한다. neato@busan.com


김상훈 기자 neato@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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