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톡톡] 디지털 성범죄 예방, 초상권 존중부터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김소연 구덕초등 교사

어떤 문제를 인식하고 바꿔 보려 해도 오랜 기간 굳어져 버린 관습이란 장벽은 참 단단하다고 느낀다. 여태 해오던 것을 없애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거나, 누구나 공분할 만한 사건이 터져야만 변화를 시도할 수 있다. 이전에도 졸업 앨범에 본인의 사진을 싣고 싶어하지 않는 개인들이 있었지만 ‘그래도 네가 담임인데’ ‘그래도 네가 학생인데’ 란 말에 다들 그저 체념했을 것이다.

지난 여름 동료가 딥페이크 영상으로 인해 고통받는 모습을 목격했다. 인터넷 심해 속에서 이 영상이 영구적으로 없어지지는 못할 거란 두려움에 더 괴로워했다. 그러나 지역교권보호위원회에선 학생이 영상을 삭제했기에 교육활동을 침해한 행동은 아니라고 했다. 성적 수치심 뿐만 아니라 가해자가 학생이기에 마치 교사가 잘못 교육해 이렇게 된 것만 같은 죄책감까지 짊어져야 했다.

이런 사건이 계속 터져왔음에도 학교에서 졸업 앨범을 없애거나 희망하지 않는 사람이 자신의 사진을 빼는 건 실제 너무나 어려운 일이다. 수십 년을 문제 제기 없이 으레 해왔기 때문이다. 내 사진을 내가 싣지 않는 것도 주변 모두의 동의를 얻어내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소위 ‘튀는 교사’라는 딱지가 붙게 된다. 법이 있는데 왜 그런가 하겠지만 졸업 앨범 앞에서 개인정보 보호법, 초상권, 개인의 권리 등의 단어를 입 밖으로 꺼내기는 쉽지 않다.

졸업 앨범에 교사 사진을 넣지 않는 사례가 늘어났다는 소식에 일부는 담임교사가 본인의 제자들에게 끝까지 책임을 다하지 않는다 비난한다. 그러나 이러한 논의는 단순히 교사의 사명감 부족 문제로 치부될 수 없다.

왜냐하면 피해자는 교사뿐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지난해 1월부터 9월까지 교육부가 집계한 딥페이크 성범죄 피해현황 자료에 따르면, 파악된 것만 총 421명(학생 402명, 교사17명, 직원 등 2명)의 피해자 중 학생의 비율이 95.5%에 육박한다.

초상권에 대한 바른 인식 함양은 디지털 성범죄 예방의 첫걸음이다. 초상권은 개인의 존엄과 인격을 보장하는 권리라는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학교는 학생들에게 딥페이크 성착취물의 심각성을 교육하고, 개인정보에 대한 민감성을 길러 줘야 한다. 사회는 딥페이크 영상 제작, 유포, 시청 시 처벌 강화에 앞서 사진 게재에 대한 개인의 의사를 존중하는 문화를 조성해야 한다. 법적인 근거가 있음에도 권리를 제대로 존중받지 못하는 상황이 하루 빨리 개선되길 바란다.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