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이번엔 경남 거제에 극한 호우, 재난 매뉴얼 다시 짜야
가뭄·폭우 양극단 교차 '기후 채찍질' 시대
과거 평균·경험 버리고 뉴노멀 대책 필요
17일 오후 경남 거제시 옥포동 일대 도로와 주요 교차로 전체가 흙탕물로 완전히 뒤덮여 있다. 연합뉴스
해갈을 기대했던 비가 생명을 위협하는 물폭탄으로 돌변했다. 6∼7월 마른장마와 그에 이은 극심한 가뭄 피해를 겪은 경남에 이번 광복절 연휴 사흘간 최대 800㎜ 집중 호우가 쏟아졌다. 특히 거제는 1시간에 124.5㎜, 통영은 97.4㎜가 내려 두 지역 모두 기상 관측 최고치를 경신했다. 산사태로 인명 피해가 발생하고 주택과 도로가 침수됐으며 정전과 교통 차질, 주민 대피가 잇따랐다. 여름 한철 내릴 비의 대부분이 사흘에 집중됐으니 기존의 방재 상식을 뛰어넘는 재난이다. 이제 기후위기는 단순히 날씨가 더워지는 문제가 아니라, 가뭄은 더 극심해지고 폭우는 더 거세지는 ‘극단의 일상화’로 주민의 생명과 재산을 위협하고 있다.
물바다가 된 경남은 비가 그치면 다시 찜통더위를 걱정해야 할 처지다. 기후학에서 말하는 이른바 ‘기후 채찍질(climate whiplash)’ 현상이다. 가뭄·폭염과 폭우·홍수라는 양극단이 짧은 기간에 교차하면서 가공할 피해를 초래하기 때문에 성난 지구가 내려치는 채찍질에 비유된다. 문제는 며칠 전까지 극한 가뭄에 시달리던 지역이 순식간에 극한 호우에 잠기는 재난이 먼 나라가 아닌 우리 이웃에 닥쳤다는 점이다. 경남 폭염·폭우 사태는 지구 온난화에 따른 기상 이변의 직격탄을 한국도 피할 수 없다는 경고다. 우리 사회의 경각심을 한층 높이고 재난 매뉴얼을 과감하게 재정비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이번 재난 대응 과정을 돌아보면 가뭄과 홍수를 별개의 재난으로 다뤄서는 안 된다는 교훈을 얻을 수 있다. 농업용수 확보와 농작물 피해 대책을 세우던 지자체가 며칠 만에 산사태와 침수, 고립 주민 구조에 행정력을 집중해야 했다. 농업용수, 하천과 하수도, 산사태 담당 부서가 제각각인 구조도 점검해야 한다. 방재 기준과 재난 매뉴얼도 재검토해야 한다. 과거 강우 기록을 기준으로 만든 하수관로와 배수펌프장, 저류시설은 물론 도로와 사면의 안전 기준이 여전히 유효한지도 따져야 한다. 거제·통영처럼 산지와 주거지가 맞닿고 해안 저지대가 많은 곳은 산사태와 침수가 동시에 발생할 가능성에도 대비해야 한다.
기후위기 시대에는 ‘부족한 물’과 ‘넘치는 물’을 따로 대비해서는 안 된다. 한때 농작물이 말라 죽을 만큼 물이 부족하다가 며칠 뒤에는 감당할 수 없는 물이 한꺼번에 쏟아지는 시대가 이미 닥쳤다. 정부와 경남도는 피해 복구와 지원에 속도를 내는 동시에 이번 사태를 재난 대응 체계를 근본적으로 전환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기후 채찍질’이 거제·통영을 먼저 때렸을 뿐 다음 순서로 다른 지역을 겨냥해도 하나도 이상하지 않다는 공감대가 형성돼야 한다. 중요한 건 피해를 최소화하겠다는 각오와 치밀한 대비다. 과거의 평균과 경험은 과감히 버리고 뉴노멀 재난에 대응할 수 있도록 우리 사회의 기준을 전면 쇄신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