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 책임도…피해회복 첫 걸음 "더 늦기 전에 기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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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혜림 기자 hyerimsn@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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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보다 10년 늦은 고향 방문
한국서도 '숙박거부' 차별 마주
보상만으로 피해 회복 안 돼
“더 늦기 전 기억 통한 회복을”

1970년 일본 오카야마현 국립한센병요양소 나가시마아이세이엔에서 배를 타고 떠나는 손님을 배웅하는 재일한센인의 뒷모습. 사진작가 조근재 씨 촬영. 일본 국립한센병자료관 제 1970년 일본 오카야마현 국립한센병요양소 나가시마아이세이엔에서 배를 타고 떠나는 손님을 배웅하는 재일한센인의 뒷모습. 사진작가 조근재 씨 촬영. 일본 국립한센병자료관 제

잊힌 재일한센인의 역사를 되새기는 책임은 한국 사회에도 있다. 일본의 한센병요양소에 입소한 뒤 수십년 흘러 죽기 전 마지막으로 고향을 찾으려 했던 재일한센인들은 한국 국내의 편견과 배제 또한 마주해야 했다.

1일 일본 국립한센병자료관 김귀분 학예연구원의 저서 등에 따르면 재일한센인은 일본인 입소자들보다 10년 이상 늦게 고향 방문이 조금씩 실현돼왔다. 집단적인 고향 방문은 1980년대 들어 종교단체, 동포단체 등의 도움 덕분에 성사됐다. 반면 일본인 입소자들은 이미 1960년대부터 지자체를 통한 고향 방문이 실현돼왔다.

1992년에는 일본 전역의 재일한센인 약 150명이 “죽기 전 마지막 기회”라며 한국 방문을 계획했지만, 한센병 환자라는 이유로 부산을 비롯한 5개 도시 호텔 약 80곳에서 숙박을 거부당했다. 넉 달간 수소문 끝에 서울·경주의 숙소 2곳을 겨우 구했고, 정작 많은 이들의 고향이던 부산 일정은 빠지면서 참가자도 약 20명으로 줄었다.

당시 마이니치신문은 이를 ‘재일한국·조선인환자 고향방문 조국 호텔 숙박거부 겨우 2곳 확보’라는 제목으로 보도했다. 기사에 따르면 재일한센인들은 “전후(해방 후)에 한 번도 귀국하지 않은 사람도 있는데 조국에 편견이 있어 안타깝다”, “일본인은 출신 현에서 매년 귀향 여행을 주최하지만 동포에게는 아무것도 없다”며 한탄했다.

요양소와 사회 간 장벽이 서서히 낮아지는 가운데서도, 재일한센인들의 고향 방문은 조국 내에서의 편견 등을 한계로 쉽게 성사되지 못했던 것으로 풀이된다.

2001년 일본 내 한센병 국가배상소송 승소와 뒤이은 보상법 제정으로, 국적에 관계없이 요양소 입소자에 대한 금전 보상이 이뤄졌다. 하지만 재일한센인 개개인이 잃어버린 인생과 다양한 모습의 피해는 금전 보상만으로 완전히 회복되지 않는다.

피해 회복의 첫 걸음은 ‘기억하기’다. 김 연구원은 “보상을 받았다고 하더라도 각자가 처한 상황이나 그로 인해 입은 다양한 피해까지 모두 회복됐다고 단정할 수 없다”며 “그래서 지금도 한 사람 한 사람의 경험과 이 역사를 계속해서 이야기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지난달 일본 구마모토현 사무실에서 만난 한센병국가배상소송 변호단 쿠니무네 나오코 변호사는 “더 늦어지면 이제는 누구에게도 이야기를 들을 수 없게 된다”고 말했다. 손혜림 기자 hyerimsn@ 지난달 일본 구마모토현 사무실에서 만난 한센병국가배상소송 변호단 쿠니무네 나오코 변호사는 “더 늦어지면 이제는 누구에게도 이야기를 들을 수 없게 된다”고 말했다. 손혜림 기자 hyerimsn@

생존자들의 나이가 80~90대로 초고령이라는 점도 기억이 시급한 이유다. 또 지속적으로 사회가 한센병 차별을 반성하는 환경이 만들어져야, 사회의 편견을 여전히 우려하는 당사자나 가족들이 실질적인 피해회복으로 나아갈 계기가 마련될 수 있다.

한센병국가배상소송 변호단 쿠니무네 나오코 변호사는 “더 늦어지면 이제는 누구에게도 이야기를 들을 수 없게 된다”고 말했다. 또 “당사자가 그 사실을 숨기고 싶었는데도 ‘당신의 할아버지가 한센병이었습니다’라고 찾아가서 말할 수는 없다”며 “결국 행사, 교육 같은 일반적인 방식으로 말을 꺼내가면서 당사자가 원할 때 스스로 접근할 수 있는 환경이 되어야 한다”고 전했다. -끝-


손혜림 기자 hyerimsn@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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