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청도군 운문사 나들이] 청량한 가을 하늘 아래 맑은 기운 흐르는 천년고찰
1.5km 솔바람길 솔향 코끝에 스쳐
웅장한 처진소나무에게서 겸양 배워
전각·석탑 등 보물급 문화재 수두룩
29~31일 500년 수령 은행나무 공개
신화랑풍류마을서 화랑정신 체험도
무엇을 해도 좋을 만큼 청량한 가을 하늘 아래 맑은 기운이 흐르는 경북 청도군 운문사에 수백 명의 관람객들이 찾아 가을 운치를 즐겼다.
문득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니 눈이 시리도록 맑고 푸르다. 가을이다. 우리의 가을 하늘은 전 세계 어느 곳보다 청량하다. 이런 하늘 아래선 무엇을 해도 좋을 듯 하다. 맑고 푸른 하늘을 올려다 보니 갑자기 경북 청도가 생각 난다. 맑은 기운을 가진 지역. 편안함을 주는 곳. 천년고찰인 청도 운문사(雲門寺)로 향했다.
운문사 학인 스님들이 법고를 치고 있는 모습.
보물 678호인 운문사 삼층석탑.
운문사를 만나기전 마주치는 솔바람길.
■울창한 소나무숲이 먼저 반겨주는 운문사
경북 청도군 호거산 자락에 위치한 운문사는 부산에서 출발하면 1시간 반이면 넉넉하게 도착한다. 이 같은 즉흥적인 나들이도 부산 근교에 있기에 가능하다. 호거산 자락의 운치를 느끼며 운문사에 다다르면 사찰보다는 울창한 소나무 숲이 먼저 반긴다. 운문산 생태탐방로 중 하나인 ‘솔바람길’이다. 인근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걸었다. 가을 바람에 소나무의 향이 코끝을 찌른다. 운문사 입구까지 1.5km의 솔바람길은 울창한 소나무와 단풍나무로 가득하다. 휠체어에 의지한 사람의 밝은 표정에서 고즈넉한 산사의 편안한 분위기가 느껴진다. 모든 이들이 이렇게 살았으면, 고통과 번뇌, 장애가 없는 그런 삶을 살았으면…. 초가을 이 곳은 붉은 꽃무릇이 장관이다. 때를 놓쳐서 인지 치명적인 꽃무릇의 자태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운문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9교구 본사인 동화사의 말사이다. 신라 진흥왕 때인 560년에 창건된 천년고찰이다. 일연이 삼국유사를 집필한 곳으로도 유명하다. 임진왜란 당시 사찰 일부가 소실됐으나, 이후 지속적인 중창을 통해 오늘날 30여 동의 전각이 있는 큰 사찰이 됐다. 운문사는 비구니 승가대학이 운영되고 있고, 현재까지 2000명이 넘는 졸업생을 배출했다.
운문사 범종루에 들어서니 버섯 모양의 거대한 나무가 압도한다. 언뜻 보면 작은 언덕으로 착각할 할만큼 거대하다. 천연기념물 제180호인 운문사 처진소나무이다. 높이는 9.4m, 나무 가슴높이 둘레는 3.8m 정도인데 넓게 퍼진 가지와 잎은 엄청나다. 임진왜란 당시에도 이 곳에 있었다고 전해지는 것으로 보아 수령은 500년쯤 된다. 운문사 처진소나무는 국내에서 가장 규모가 크다. 땅에 가깝게 넓게 퍼져있다 보니 한때 반송으로 여겨지기도 했지만, 밑동에서부터 갈라져 퍼지는 반송과는 달리 일정 높이까지는 일반적인 소나무처럼 곧게 자라다가 일제히 갈라져서 처지는 처진소나무란다. 곧은 기운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솟아 오르는 일반 소나무와는 달리 땅 넓은 줄 모르고 잔잔히 옆으로 퍼져 있는 처진소나무가 한껏 자신을 낮추는 운문사를 닮아 있다.
운문사가 천년고찰이다 보니 경내 곳곳의 전각이며 석탑 등이 보물이다. 삼층석탑(보물 제678호)을 비롯해 금당 앞 석등(보물 제193호), 석조여래좌상(보물 제317호)과 석조사천왕상(보물 제318호), 대웅보전(보물 제835호) 등 국가 보물만 13건이다. 만세루 등 각종 유형문화제와 문화재 자료가 다수 있다.
대웅보전에서 삼배를 올리고 경내를 둘러 보는데 한 전각에서 승가대 학인 스님들이 정성을 다해 예불을 올리고 있다. 고개를 들어 현판을 보니 이 곳도 대웅보전이다. 한 사찰에 대웅보전이 두 곳이라니 특이했다. 사연은 이랬다. 대웅보전은 석가모니불을 모시는 경내 중심 전각이다. 하지만 17세기 지은 것으로 추정되는 보물 대웅보전에는 비로자나불이 모셔져 있었고, 이를 이상하게 여긴 운문사 측에서 1994년 경내에 대웅보전을 새로 짓고 예전 대웅보전의 현판을 이곳에 달았다. 대신 기존 대응보전에는 ‘비로전’이란 현판을 내걸었다. 이 같은 사실은 안 국가유산청은 운문사가 마음대로 전각의 이름을 바꿔서는 안 된다고 지침을 내렸고, 현재와 같은 두 곳의 대웅보전이 생기게 된 것이다.
편안한 마음으로 경내는 거닐고 있는데, 갑자기 북소리가 들려왔다. 법고(法鼓) 소리다. 만세루에서 학인 스님 4명이 돌아가며 법고를 치고 있었다. 법고는 부처님의 법을 전하는 북이다. 법고는 축생(畜生)의 제도를 위해 거행된다. 짐승을 비롯한 땅에 사는 중생을 어리석음에서 깨우치기 위함이다. 학인 스님들이 나무로 된 두 개의 북채로 ‘마음(心)’자를 그리면서 두드린다.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모든 것은 마음 먹기에 달렸다”라는 〈화엄경〉의 가르침이 떠올랐다. 연휴를 맞아 수십 명의 관람객들이 신기한 듯 바라보며 박수 갈채를 보내기도 했다.
운문사는 스님들의 수행공간이 많아 경내 절반 이상이 일반인들의 출입이 제한된다. 승가대학 안쪽 신일당 앞마당에는 수령 500년 된 대형 은행나무가 두 그루 있다. 가을철 은행나무의 자태가 정갈하면서 아름답다. 운문사는 일 년에 한 번 이곳을 개방한다. 올해는 10월 29~31일 은행나무를 볼 수 있다.
운문사를 나오면 왼편에 2024년 개관한 운문사역사문화관이 있다. 운문사의 창건에서부터 삼국시대, 고려·조선시대, 근현대를 거쳐 현재에 이르기까지 운문사의 모든 것을 한 눈에 알 수 있는 곳이다. 운문사를 제대로 알고 보려면 이 곳을 꼭 방문할 것을 추천한다.
운문사의 모든 것을 알 수 있는 운문사역사문화관.
화랑정신을 배우고 느낄 수 있는 신화랑풍류마을.
신화랑풍류마을의 화랑수련원에서 뛰노는 아이들.
■화랑정신 잇는 청도신화랑 풍류마을
운문사를 뒤로 하고 청도읍 방면으로 차를 몰다 보면 10분 거리에 화랑정신을 배우고, 느끼고, 체험할 수 있는 청도신화랑풍류마을을 만날 수 있다. 늦가을 단풍철이 되면 운문호를 끼로 이어지는 단풍나무길이 관람객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그러고 보니 청도는 새마을운동의 발상지이면서 삼국통일의 정신적 원동력이 된 화랑정신의 발상지이기도 하다.
어떻게 청도가 화랑정신의 발상지가 된 걸까. 서기 600년인 진평왕 22년, 원광법사가 수나라에서 수행을 마치고 돌아와 현재 청도군 운문면 일대로 추정되는 가슬갑사에 머물고 있었다. 당시 화랑이었던 귀산과 추항이 원광법사를 찾아와 평생 마음에 새길 가르침을 청했고, 원광법사는 다섯가지 계율을 알려주었다고 한다. 이것이 바로 화랑도의 ‘세속오계(世俗五戒)’이다. 충성으로 임금을 섬기고(사군이충·事君以忠)’, 효도로써 어버이를 섬긴다(사친이효·事親以孝), 믿음으로 벗을 사귀고(교우이신·交友以信), 싸움에 임해서는 물러남이 없다(임전무퇴·臨戰無退), 함부로 살생 하지 않는다(살생유택·殺生有擇)가 그것이다.
청도신화랑풍류마을은 이 같은 화랑정신을 현대에 맞게 재해석하고, 여기에 힐링을 더했다. 이곳에는 화랑정신을 배우고 느낄 수 있는 전시관, 신화랑이 되기 위한 여러 가지 프로그램을 체험할 수 있는 체험 교육실, 실제 과녁에 활을 쏘면서 신라의 화랑을 직접 체험해 보는 화랑궁도장 등 다양한 공간이 마련돼 있다. 명상실과 함께 체류형 고객을 위한 숙박시설인 화랑촌 등 다양한 힐링공간도 갖춰져 있다.
이 곳은 가족 단위 방문객들에게 특히 인기다. 연휴를 맞아 이곳을 찾은 가족들은 청도에서 시작된 세속오계의 탄생 과정과 역사이야기 등을 영상을 통해 배우는가 하면 산성지키기 게임을 통해 가족이 하나 되는 시간도 가졌다. 실내 VR체험을 통해서는 화랑의 승마, 궁술, 검술도 체험할 수 있다. 역시 아이들에겐 뛰어 노는 게 최고. 야외에 마련된 놀이터 화랑수련장에는 수십 명의 아이들이 통나무 건너기, 동굴탐사, 돌다리 건너기, 짚와이어 체험 등 갖가지 놀이기구에 몸을 맡기며 즐거운 한때를 보냈다. 무엇보다 놀이터에 무적숲, 장군평, 육장굴 등 당시 화랑들이 즐겨 찾던 곳을 테마화해 이해를 도운 것이 인상적이었다.
이곳엔 어른들을 위한 놀이도 있다. 실제 활을 쏠 수 있는 국궁장과 스카이트레일, 짚롤러코스터 등도 이용할 수 있다. 신화랑풍류마을에는 캠핑족을 위한 오토캠프장도 운영되고 있는데, 주말과 휴일인면 가족 단위 나들이객들의 텐트로 꽉 차 있다. 아이들의 놀이터 화랑수련장에서 해맑게 뛰어놀며 웃는 아이들의 모습과 1400여년 전 화랑의 모습이 겹쳐 보인다.
글·사진=김진성 기자 paperk@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