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앤피플] 부산 제조업, AI와 만나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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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혜규 기자 iwill@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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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은…
중기 위주 산업구조 탓 자금력 태부족
인력난 해결 안 되면 AX ‘딴 나라 얘기’

전망은…
조선·자동차 부품 등 제조 기반은 ‘자산’
정부의 비수도권 AX 중시 정책도 ‘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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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2일 부산 동구 부산워케이션거점센터에서 열린 ‘제조 AX 생태계 구축 간담회’에서 국가인공지능전략위원회 하정우 부위원장이 ‘국가 AI 정책 추진 방향’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 엑스모스 제공 지난달 22일 부산 동구 부산워케이션거점센터에서 열린 ‘제조 AX 생태계 구축 간담회’에서 국가인공지능전략위원회 하정우 부위원장이 ‘국가 AI 정책 추진 방향’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 엑스모스 제공
같은 간담회에서 수기 장부 중심의 전통 도매시장 운영을 AI 운영체제로 전환한 사례를 발표하는 남도마켓 양승우 대표. 엑스모스 제공 같은 간담회에서 수기 장부 중심의 전통 도매시장 운영을 AI 운영체제로 전환한 사례를 발표하는 남도마켓 양승우 대표. 엑스모스 제공

부산의 한 자동차 부품 2차 협력사는 로봇 5대와 카메라와 컴퓨터를 활용한 자동화 검사 장비인 비전 검사기를 도입했다가 전면 철수한 경험이 있다. 숙련된 인력의 작업보다도 공정 시간이 오히려 늘어난 데다 원청 업체는 설상가상 납품 단가를 인하하라고 압박했기 때문이다. IT 전담 인력이 따로 없다 보니 담당 인력이 퇴사하자 전체 라인을 멈춰야 하는 문제도 있었다.

부산과학기술고등교육진흥원(비스텝)이 최근 발표한 ‘부산기업 제조데이터 구축 및 활용 방안’ 보고서에 등장하는 기업 사례다. 피지컬 인공지능(AI) 시대, 부산 제조업의 인공지능 전환(AX)는 아직 걸음마 단계다. 그럼에도 부산의 제조 기반을 핵심 경쟁력으로 보고 지역에서 새로운 기회를 모색하는 움직임들도 눈에 띈다.

■장비 투입보다 인재 투입 어려워

“대기업은 돈도 인재도 있으니 AX가 가능하지만, 중소기업은 상황이 다릅니다. 예를 들어 용접 공정에서는 표준화가 만만치 않은 암묵지가 대부분이고, 일정 부분 표준화된 AI 장비를 투입한다고 해도 공급 시점에 교육을 받은 인재가 이탈하고 나면 장비를 관리할 인력조차 없습니다.”

지난달 22일 부산 동구 부산워케이션거점센터에서는 엑스모스(AXMOS) 얼라이언스 주최로 ‘제조 AX 생태계 구축 간담회’가 열렸다. 부산 제조기업과 지원·금융 기관 관계자 50여 명이 참석한 행사에서는 지역 제조업 AX 현장의 생생한 목소리들이 나왔다.

용접기 제조 전문기업 A사의 대표는 간담회에서 지역 중소 제조기업이 AX에 나설 때 겪는 공통적인 어려움을 이렇게 전했다. 식품 업계도 예외는 아니다. 가공식품 업체 B사 생산본부장은 “인력의 30%는 외국인, 30%는 근무 1년 미만 근로자들인데, 인력난으로 자동화에 이것저것 투자를 해봐도 로봇이 식품을 들어올리는 것조차 쉽지 않다”며 “이런 상황에 피지컬 AI는 먼 이야기”라고 말했다.

설비·공정 자동화에 초점을 맞춰 추진한 스마트팩토리 도입에는 냉정한 평가가 이어졌다. 특수산업현장 영상장비 기업 C사 대표는 “정부 지원금을 주면서 기업은 적은 투자금으로 스마트팩토리를 도입하라고 했는데, 결과적으로 기업들은 획일적인 ERP(기업 업무 통합 관리 프로그램) 도입에 그 돈을 다 쓴 셈”이라고 잘라 말했다.

비스텝이 부산 대표 주력산업인 조선기자재와 자동차부품, 금속·플랜트 분야 기업 13개사의 제조데이터·전산 담당자를 인터뷰한 결과에서도 AX를 가로막는 현장의 병목들이 드러난다. 연구진은 노후 설비, 통신 표준화 부족, 기업의 핵심 정보 유출에 대한 보안 우려 등을 지목하고, 특히 최고경영진의 의지, 자본력, 전담 인력 유무에 따라 중견기업과 영세기업 간 양극화가 뚜렷하다고 분석했다.

지역 기업의 현실과 정부 정책의 엇박자도 일어난다. 비스텝 보고서는 중소기업 현장은 통신 기능이 없는 구형 아날로그 설비나 제조사마다 다른 통신 방식과 데이터 규격 때문에 설비 교체가 시급한데도 정부 예산은 주로 소프트웨어 개발비에 편중돼있다고 지적한다. 스마트팩토리 구축이 주로 1년 단기 과제로 지원돼 지속적인 전환이 단절되는 상황도 개선이 필요하다.

■실리콘밸리 거물 투자자들은 왜

엑스모스는 AI 분야 전문 스타트업과 전문 투자사가 국내 제조 현장의 AX를 위해 만든 컨소시엄이다. 벤처캐피털(VC) 트랜스링크인베스트먼트를 필두로 드림에이스, 코드프레소 등 AI·제조·교육·투자 분야 5개사가 주축이 돼 지난 3월 출범했고, 이후 현장 기업과 제조 AI 모델, 공공기관 등이 합류해 총 20개사 규모 얼라이언스가 구성됐다.

트랜스링크인베스트먼트 박희덕 대표는 엑스모스를 소개하면서 지난 7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주재한 ‘실리콘밸리 벤처투자 밋업’ 이야기를 꺼냈다. “실리콘밸리의 최상급 벤처캐피털 5곳이 모였는데, 투자자 입장에서는 정말 깜짝 놀랄 만한 장면이에요. 한국에 투자할 아이템이 있으니 이 대통령을 만났을 텐데, 그게 실리콘밸리에는 없고 한국에는 있는 제조업체들인 거죠.”

엑스모스 컨소시엄이 첫 현장 간담회로 부산을 찾은 이유도 부산이 갖고 있는 탄탄한 제조 기반 때문이다. 박 대표는 “부산의 조선·기자재, 자동차부품, 기계, 항만·물류 등 산업은 피지컬 AI를 적용할 수 있는 훌륭한 자산”이라면서 “단, 이 자산을 글로벌 투자금융과 연결시키려면 AI를 통해 업무 방식을 데이터화하고 반복 가능한 엔진으로 전환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실제로 제조업 자산은 피지컬 AI 시대 생태계 선점을 위한 미·중 경쟁에서도 핵심 자산으로 주목을 받는다. 산업연구원은 ‘미·중 경쟁 2.0, 중국의 AI·공급망 전략 변화와 우리의 대응’ 보고서에서 미·중 패권 경쟁의 전장이 단품 기술 제어에서 실물 제조 생태계의 주도권 경쟁으로 이동하고 있다고 진단하고, 한국도 한국 제조업의 강점을 하나로 결합해 자산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국도 잃어버린 제조 역량을 되찾으러 나섰다.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은 지난달 트럼프 정부의 반도체·첨단제조 인재 양성 프로젝트인 파운드리 스쿨 출범식에서 “생산 능력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는 생각 때문에 우리는 생산 능력과 역량을 잃었고, 그 결과 경제적 활력뿐 아니라 국가 안보와 국가의 생존에 필수적인 모든 것들을 다른 나라에 의존하고 있다”며 “이 잘못을 바로잡겠다”고 선언했다.

■지역에서 작은 성공 사례부터

한국무역협회 부산지역본부가 올해 부산·울산·경남 108개사를 포함해 전국 513개사를 조사한 결과를 보면 부울경 스마트공장 도입 기업의 63%는 단순 바코드 스캔 수준인 ‘기초 단계’에 머물러 있다. 게다가 부울경 지역 소부장(소재·부품·장비) 기업 중 사내 소프트웨어 전담 인력이 전무한 곳은 68%로 전국 최고 수준이었다.

엑스모스가 소개한 기업의 선행 사례는 지역 기업에게 모델이 될 수 있다. 식품 브랜드 널담을 운영하는 조인앤조인 진해수 대표는 혼자서 대화 방식의 바이브 코딩으로 생산 현장 관리부터 매출 분석까지 7개 업무 시스템을 구축했다.

전통 도매시장 상인과 국내외 바이어를 연결하는 남도마켓은 수기 중심의 운영을 AI 운영 체제로 전환한 결과 지난해 연간 거래액 3600억 원에서 올해는 1조 원대를 바라본다. 앙승우 대표는 “개발 조직이나 예산이 없어도 바이브 코딩을 활용해 상품 검색·주문부터 자동 등록과 재고 관리까지 AI 기반 운영 체계를 만들고 전광판이나 포스기 같은 하드웨어 분야와도 연계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엑스모스 컨소시엄의 드림에이스 이세연 대표는 “이미 여러 기업들과 함께 80건 이상 사례와 100개 이상 표준 에이전트를 검증한 만큼 더 많은 지역 기업들이 함께하길 바란다”고 밝혔다.

국가인공지능전략위원회 하정우 부위원장은 “비수도권의 제조 AX는 국가 인공지능 대전환의 새로운 성장 동력을 위해 반드시 성공해야 하는 과제로, 앞으로 더 많은 기회가 지역에서 생길 것”이라며 “이 과정에서 각 지역 산업에 전문성을 갖춘 FDE(현장 배치 엔지니어) 양성도 중요한 만큼 수요 기업과 AX 기업, 학교와 정부가 함께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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