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進擊(진격)의 노래(上(상)) 趙靈(조영)□詩集(시집) 「屍山(시산)-」을 읽고



同友(동우) 趙靈岩兄(조영암형)이 避難(피난)해온 釜山港(부산항)에서 「屍山(시산)을 넘고 血海(혈해)를 건너」라는 詩集(시집)을 내였다 이를 契機(계기)로 靈岩(영암)에 對(대)해서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할 수 있는 機會(기회)를 얻게 되였다는 것은 아 自身(자신)으로서도 大端(대단)히 愉快(유쾌)한 일의 하나가 아닐 수 없다 그것은 靈岩(영암)과 나는 같은 年輩(연배)로서 같은 時間(시간)에 學窓(학창)을 같이했을 뿐만 아니라 文學(문학)에 뜻을 둔 것도 거의 同一(동일)한 時期(시기)였기 때문이다

學窓(학창)에선 靈岩(영암)은 나보다 한 年(년) 아래요 專攻(전공)하는 科(과)도 서로 달랐으나 다 같이 文學(문학)을 하겠다는 同一(동일)한 情熱(정열)과 目的(목적)이 우리들로 하여금 特殊(특수)한 友誼(우의)를 갖게 하였다 지금은 傀(괴)뢰集團(집단)의 前衛詩人(전위시인)으로서 祖國(조국)을 反逆(반역)하는 무리 속에 加擔(가담)하여 北(북)에서 그릇된 길로 걸어가고 있는 李乘哲(이승철)도 그때에는 靈岩(영암)과 같은 學級(학급)에서 우리들의 한 그룹이였음으로 우리들은 每日(매일)같이 서로 몰여다니며 文學(문학)과 人生(인생)을 論(논)하고 서로 너무 親(친)하여 죽고 못 살다가도 어떤 때는 서로 怨讐(원수)처럼 싸우기도 하였다 그때의 일은 지금 생각만 하여도 모든 것이 그저 즐겁고 愉快(유쾌)하기만 하다

그 後(후) 祖國(조국)에 解放(해방)이 오고 三八(삼팔)선이 생기자 靈岩(영암)과 나는 서로 南北(남북)으로 갈렸다 解放以後(해방이후) 南(남)쪽에서 北方(북방)의 使嗾(사주)를 받은 南韓(남한)의 傀儡文壇(괴뢰문단)을 擊破(격파)하는데 孤獨(고독)한 評(평)□를 들어온 나는 각금 北方(북방)에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는 靈岩(영암)의 蘇式(소식)이 굼굼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南北(남북)의 交流(교류)를 차단한 三八(삼팔)선은 北(북)쪽에 있는 나의 여러 벗들에 對(대)한 蘇式(소식)과 함께 靈岩(영암)에 對(대)한 一切(일절)의 關心(관심)도 가로막고만 있었던 것이다

그러한 어느 날 忽然(홀연)히 한 장의 편지에 뒤이어 靈岩(영암)은 우리들이 자주 모이는 茶(다)방에 나타났던 것이다 우리는 온간 이야기를 하지는 않었으나 그 瞬間(순간)부터 靈岩(영암)은 우리 文壇(문단)에서 共産黨(공산당)을 打倒(타도)하는 가장 前衛的(전위적)인 詩人(시인)으로써 누구보다도 많은 活動(활동)을 해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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