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방 시각서 바라보는 중국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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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나라 6대 황제 건륭제의 모습. 강희제에 이어 청나라 최전성기인 '강희·건륭 시대'를 이룩하였다. 돌베개 제공

'중국' 하면 한족의 역사와 문화만 떠올린다. 지금의 중국을 형성하고 있는 여러 소수 민족에 관해서는 그다지 관심이 없다. 만주족을 비롯한 중국을 점령했던 이민족들은 모두 한족에게 동화되었다는 한족 민족주의자들의 역사를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구미 학계를 중심으로 이를 반박하는 내용의 책이나 논문이 꾸준히 발표되었다. 이런 성과들이 국내에 소개되자 국내 학자와 독자 사이에도 새로운 관점에 동조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청 제국이 한족에 동화되어 중국 왕조와 차별되는 지점이 전혀 없다는 역사관에 문제를 제기하는 일군의 학자들이 있다. 이른바 신청사(新淸史) 학파로 이들의 저서들은 최근 10여 년 동안 속속 한국어로 번역되었다. '만주족의 청 제국'(마크 엘리엇) '최후의 황제들'(에벌린 로스키) '중국의 서진'(피터 퍼듀) 등이다. 이들은 만주족이 독특한 사회 문화 체제를 만들고 유지했다는 주장을 펴기 위해 만주어로 된 사료를 적극 활용한다.

조선 사료 서술 통해
청의 역사 새롭게 조망


만주족의 역사 / 패멀라 카일 크로슬리
이러한 신청사 학파 중에서도 좀 더 색다른 주장을 하는 이가 있다. 이번에 새로 번역된 '만주족의 역사'의 저자 패멀라 카일 크로슬리다. 그는 만주어 사료에 더해 조선의 사료들을 텍스트로 활용한다. 그는 조선인 신충일이 쓴 '건주기정도기(建州紀程圖記)'를 통해 청의 역사를 새롭게 조망했다.

신충일은 병자호란(1636년) 직전인 16세기 말(1595년), 누르하치가 요동지역의 우두머리로 등장하는 상황을 예리하게 포착하였다. 신충일은 압록강을 건너면서부터 어디서나 여진족을 만날 수 있었다고 적었다. 통상 청 제국의 군사·사회 조직인 팔기(八旗)의 모태라고 할 수 있는 사기(四旗)의 등장을 1601년으로 알고 있으나 신충일에 따르면 이미 1595년부터 존재하고 있음이 확인된다.

만주족은 조선과도 밀접한 관계를 유지했다.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의 의형제이자 개국공신인 이지란은 여진족이었다. 이성계가 나고 자란 함경도는 여진족의 집단 거주지였다. 만주족과 한반도 사이의 교류가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이었다는 증거다.

이처럼 한족이나 만주어 대신 제3자격인 한국의 역사 서술을 통해 만주족을 추적하는 것은 대단히 유효한 방법이다. 한반도의 시각에서 만주족을 조망함으로써 한반도의 문화와 관습을 잊혀진 대륙의 역사와 연결시킬 수 있게 됐다.

지난 2011년 '최종병기 활'이라는 영화가 인기를 끈 적이 있다. 극 중 남이(박해일)가 만주족 장수 쥬신타(류승룡)에게 잡혀간 누이를 구출하는 내용이다. 1636년 12월부터 1637년 1월까지 있었던 병자호란이 시대적 배경이다. 영화가 인기를 끌자 중국에서도 자취를 감췄다는 만주어 배우기가 유행하기도 하였다. 변방의 입장에서 중국사를 보는 새로운 시각은 역사학계를 떠나 이미 영화계에서도 시작되었음을 보여 주는 사건이었다. 패멀라 카일 크로슬리 지음/양휘웅 옮김/돌베개/389쪽/1만 8천 원. 이상민 선임기자 yeyun@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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