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 단상] 삼성이 한국을 떠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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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동진 서울본부 서울경제팀 차

지난주 서울 여의도 증권가에선 '삼성이 한국을 떠나 미국으로 본사를 옮길 수도 있다'는 루머가 돌았다. 실현 가능성은 낮은 얘기지만 삼성이 최근 처한 상황에선 이런 설이 나올 수도 있겠다 싶었다.

실제 '삼성이 한국을 떠나고 싶은 이유'는 한두 가지가 아닐 듯하다.

그룹 탄생 이래 첫 총수(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구속 사태는 동기나 과정이 어찌됐건 오너 일가 입장에선 곤혹스러운 상황이다. 그동안 사카린 밀수·비자금 의혹 등으로 선대 총수들이 검찰에 불려가기도 했지만 수갑까지 찬 모습을 보인 건 이번이 처음이다.

또 정권이 바뀔 때마다 녹색성장, 창조경제 등 각종 역점 추진 사업에 대한 '강요 수준'의 협조 요청으로 재벌 총수들은 적잖은 후유증을 앓아야 했다. 특히 재계 1위라는 점 때문에 삼성에 대한 압박 강도는 더했을 듯하다. 일부에선 한국의 대통령 중심제가 계속되는 한 삼성을 비롯한 재벌들은 이 같은 속박에서 벗어나기 힘들 것이라는 얘기까지 나온다.

여기에 삼성은 적법 절차를 거쳤다고 하지만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에 국민연금관리공단을 이용한 것에 대한 여론도 좋지 않다. 매달 내는 국민연금은 준조세 성격이어서 '내 돈을 갖고 삼성이 장난을 쳤다'는 인식이 강하기 때문이다.

미국의 트럼프 신임 대통령이 약 90건에 달하는 각종 기업 규제를 해제하는 등 '당근책'들도 삼성 입장에선 구미가 당길 수 있다.

이처럼 한국 내 기업 경영의 어려움과 이미지 실추 속에 미국의 새 정부가 기업 규제까지 푸는 마당에 한국의 한 재벌 총수가 '엉뚱한' 결론을 내릴 가능성도 있다. 매출 400조 원에 달하는 거대 그룹이 옮긴다면 미국뿐만 아니라 반길 나라가 한두 곳이 아닐 것이다.

실제 세계적인 회사가 본사를 옮기려는 시도가 없지 않았다. 삼성과 상황은 다르지만 미국에 본사를 둔 글로벌 제약회사 화이자가 절세 차원에서 오바마 정부 시절 본사를 아일랜드 더블린으로 이전하려 했다.

물론 삼성의 본사 이전 루머는 화이자와 달리 루머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

무엇보다 국민들의 마음속엔 삼성에 대한 비난 한편으로 삼성 같은 글로벌 기업이 한국에 있다는 자부심이 상존해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여름 올림픽 취재차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를 찾았을 때 만난 현지인에게 풍부한 자원과 자연환경을 극찬하자, 그들은 되레 "한국은 삼성 같은 세계적 기업 때문에 잘 살지 않느냐"며 부러워했다.

이재용 부회장이 구속을 전후해서 보여 준 '쿨한' 모습에 대한 여론도 좋다. 자신이 '최순실 게이트 청문회'에서 약속한 미래전략실 폐지를 밀어붙이고, 구치소 내 예우도 마다한 것 등이다.

최순실 게이트 사태로 어쨌든 삼성이 매를 먼저 맞았다. 하지만 다른 기업 총수들도 이런저런 연루설이 나돌아 별반 다르지 않아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국내 재벌들이 "한국이 싫다" "한국을 떠나고 싶다"고만 떠벌리지 말고 변칙 상속, 정경 유착 등의 악습을 버리고 "사랑해요 한국"을 외치는 모습을 보고 싶다. djba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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