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초량 데어더하우스] '명란'이네 집에 놀러 오세요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데어더하우스' 직원들이 명란을 이용한 요리교실을 진행하고 있다.

부산 동구 초량6동 금수사 옆 골목길. 유명한 카페 초량이 있는 곳이다. 최근 이곳에 '집'이 하나 생겼다. 원래 있던 집이었으니 정확히 말하면 신설이 아니라 개량인 셈이다. 집 이름이 특이하다. '그곳에 집이 있다'는 뜻의 '데어더하우스(therethehouse)'다. 이 집의 성격을 명확히 설명하자면 '명란의 집'이라고 할 수 있다. 데어더하우스는 부산의 명란 전문기업 '덕화푸드'를 이끌어 가는 아버지와 아들의 철학이 담겨 있는 곳이다.

부산 명란 전문기업 덕화푸드
집처럼 친근한 '명란 쇼룸' 개관

소비자가 직접 명란 살펴보고
요리도 배우고 구입할 수 있어

명란, 부산과 후쿠오카

부산은 우리나라 명란(명란젓) 산업의 중심지다. 명란만 만드는 전문업체 8곳 정도가 부산에 있다. 부산시가 선정한 '부산 4대 명품 수산물'에 어묵, 기장 미역 다시마, 고등어와 함께 명란이 포함돼 있다.

우리나라 동해안 명태는 이미 1990년대 초에 멸종되다시피 했다. 지금 명란을 만드는 명태는 대부분 러시아 오호츠크해, 미국 베링해에서 잡는다. 러시아에는 냉동 저장시설이 부족해 러시아 원양어선들은 명태를 잡으면 알을 냉동해 바로 부산으로 직행한다. 감천항 등에 즐비한 냉동창고에 명태를 넣어둔 뒤 판매하면 바이어들이 몰려든다.

일본에서는 후쿠오카가 명란의 메카다. 일본에서 가장 유명한 명란업체 중 하나인 '후쿠야'가 후쿠오카에 있다. 이 회사 창립자는 일제강점기에 부산에서 살았다. 그는 초량시장에서 먹어본 명란 맛을 잊지 못해 일본에서 명란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것이 일본 전역으로 퍼져 나갔다.

우리나라와 일본의 명란은 조금 다르다. 일본에서는 저염 명란을 선호한다. 우리나라 명란은 염도가 7% 이상이지만, 일본에서는 4%대여서 훨씬 덜 짜다. 최근 들어서는 두 나라 명란이 섞이는 경향도 나타난다고 한다. 
'데어더하우스' 전경
명란은 우리나라 전통음식이다. 그런데 시장 규모는 정작 일본이 우리나라보다 10배 정도 더 크다. 우리나라에서는 명란 소비가 성장하고 있지 않지만, 일본의 경우 지하철, 백화점, 기차역 등 어느 곳에서나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덕화푸드는 명란 전문 생산업체다. 올해로 창립 25주년을 맞았고, 명란 분야 전국 1위 기업이다. 장석준 회장과 아들 장종수 사장은 명란을 단순한 먹거리로 생각하지 않는다. 그 속에는 아름다운 삶이 녹아 있고, 인생의 추억이 담겨 있고, 세상의 모습이 담겨 있다고 본다. 우리나라 현대적 명란 생산의 선구자인 장 회장은 그렇게 믿고 있고, 장 사장은 그런 아버지의 생각을 적극적으로 지지한다.

장 회장은 부산수산대(현 부경대) 수산가공학과를 졸업한 뒤 어묵회사인 삼우물산에 들어가 오래 근무했다. 일본에 수출하는 명란 가공 업무를 담당했다. 그는 퇴직한 뒤 회사를 차렸다. 명란만 만드는 업체였다. 일본 수출에 크게 신경을 썼다. 그 덕분에 2008년 일본 소매점업체 세븐일레븐에 마트브랜드제품으로 명란을 납품하게 됐다. 일본 이외 업체로서는 최초라고 했다. 이런저런 성과 덕분에 이듬해에는 수산 제조 분야에서는 유일하게 '명장' 자리에 올랐다.
 
명란 판매실
우리나라 첫 '명란의 집'

장 회장과 장 사장이 데어더하우스를 만든 것은 위기감에서다. 명란은 우리 민족과 오랜 세월을 같이 해온 음식이다. 하지만 우리로부터 명란 제조법을 수입한 일본에서는 명란 인기가 폭발적인 반면 정작 우리나라에서는 명란이 제대로 된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다. 장 회장은 오랫동안 명란을 만들어 오면서 우리나라보다 일본에서 명란이 더 활성화돼 있다는 점이 늘 안타까웠다고 한다.

아버지의 생각을 잘 아는 장 사장은 지난해 취임 이후 명란을 소비자 곁으로 다가가게 하는 방안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여러 가지 프로젝트를 실험하던 그는 '데어더하우스'를 차렸다. 소비자들이 명란을 살펴보고 구매하고 요리도 해 볼 수 있는 곳이다. 부산은 물론 전국적으로도 작은 식품제조업체가 소비자들을 위한 시설을 제작한 경우는 보기 드물다. 특히 '명란의 집'은 처음이다. 
명란 콜드 파스타
데어더하우스는 초량의 주택을 빌려 개량했다. 장 사장은 "데어더하우스는 덕화푸드의 모든 것을 보여주는 '쇼룸'이다. 이 시설을 가정집에 설치한 데는 이유가 있다. 명란은 가정에서 가족끼리 먹는 전통음식이기 때문이다. 소비자들에게 집처럼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덕화푸드는 명란과 관련해 세 개의 공간을 갖고 있다. 첫 번째는 명란을 생산하는 공장이고, 두 번째는 명란을 연구·개발하는 기업부설연구소다. 그리고 데어더하우스는 세 번째 공간이다.

데어더하우스 1층에는 명란 숙성실을 축소한 시설이 있다. 2층에는 요리실이 있다. 부산 지역 중소 식품제조업체에서 생산한 로컬푸드와 요리기구 등도 전시돼 있다. 요리사가 상주하면서 손님들이 요청할 경우 명란을 이용한 요리를 가르쳐 주고, 직접 만들어 볼 수 있게 도와준다. 김민주 푸드디렉터는 "명란으로 다양한 음식을 만들 수 있다. 주로 양식과 결합한 음식을 소개한다. 명란 라비올리, 명란 콜드 파스타, 명란 쌀레 등이다"라고 말했다. 
명란 라비올리.
장 사장은 데어더하우스에서 앞으로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할 계획이다. 명란을 직접 만들어보는 체험은 물론 지역의 식품제조업체 대표들을 초청해 강연회도 열 생각이다. 장 사장은 "중소기업은 전문화해야 한다. 다른 연관업체들과 상생해야 한다. 데어더하우스를 '명란의 집'으로 활성화함은 물론 이곳을 매개로 부산의 작은 식품업체들이 함께 살아갈 수 있는 길을 모색하겠다"고 말했다. 데어더하우스 인스타그램/therethehouse.

글·사진=남태우 선임기자 leo@busan.com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