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미란다 원칙

유명준 기자 joony@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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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3년 미국 애리조나 주 피닉스에서 에르네스토 미란다라는 20대 남성이 10대 소녀를 납치해 성폭행한 혐의로 체포됐다. 미란다는 경찰에서 혐의를 자백했다가 재판 과정에서 이를 번복했지만 주 대법원까지 모두 유죄를 인정해 중형을 선고했다. 그러나 1966년 미국 연방대법원은 판결을 완전히 뒤집어 그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체포 단계에서 묵비권 등 피의자의 권리 고지가 제대로 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의 자백은 유죄의 증거가 될 수 없다는 것이 이유였다.

이 판결에서 나온 것이 ‘미란다 원칙’이다. 수사기관이 용의자를 체포할 때 묵비권과 변호인 선임권 등 피의자의 권리를 반드시 고지해야 하며, 이를 고지하지 않은 채 이루어진 구속은 부당하고 이후의 자백은 재판에서 증거로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이다. 미국 드라마나 영화에서 범인을 체포할 때 흔히 보는 “당신은 묵비권을 행사할 수 있으며…”로 시작하는 장면은 여기에서 출발했다. 미란다는 10년 뒤 술집에서 시비 끝에 칼에 찔려 불행했던 생을 마감했지만 그의 이름만은 ‘미란다 원칙’에 남아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형사상 자신에게 불리한 진술을 강요당하지 않을 권리’는 헌법이 규정하고 있는 기본권이다. 또 형사소송법은 피의자 체포 상황에서 반드시 고지해야 하는 사항을 명시하고 있다. 다만 미란다 원칙의 구체적인 내용에서 우리와 미국은 다소 차이가 있다. 가장 결정적인 것은 진술거부권을 고지해야 하는 시기로, 우리 형사소송법은 이를 ‘체포 시’가 아닌 ‘피의자신문 전’으로 규정하고 있다. 최근 연예인이 경찰 체험을 하는 TV 예능 프로그램에서 출연자가 경찰이 피의자 체포 시 고지해야 하는 사항으로 ‘변변체’를 암기하는 장면이 나왔다. ‘변호인 선임권’과 ‘변명할 기회’, ‘체포·구속적부심 청구권’의 첫글자를 딴 ‘변변체’는 형사소송법이 규정하고 있는 피의자 체포 시 고지 의무 사항이다.

경찰이 오늘부터 체포 단계에서부터 진술거부권을 고지하기로 했다. 법이 규정하고 있지는 않지만 피의자의 방어권 보장을 위해 경찰 내부 지침으로 정해 이를 미리 알리겠다는 것이다. 인권 보호를 위해 의미 있는 제도 개선임에는 분명하지만 이를 어긴다 해도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다. 경찰의 인권 보호 의지가 법 개정으로까지 이어져 제도화되길 기대해 본다. 유명준 논설위원 joony@busan.com


유명준 기자 joony@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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