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가야는 우리의 역사다

이재희기자 jaehe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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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희 지역사회부장

옛날 문호장이라는 인물이 있었다. 경남 창녕 영산면에 그의 발자국이 남아 있다. 신령스러운 도술로 신출귀몰하던 문호장의 발자국이 실은 공룡 발자국 화석이라는 설이 유력하지만, 여전히 그는 전설로 존재한다.

실체를 모르는 신비의 왕국 가야

낙타 모양 토기 발견돼 세간 관심

일·중은 물론 아랍과도 교역 상상

제대로 된 연구로 역사에 새겨야

문호장을 잘 모르는 사람을 위해 소개한다. 도술과 축지법을 쓰고 몸을 나누는 것은 홍길동과 유사하다. 의적은 아니지만, 그는 모내기 철 논두렁에 놓인 농부의 밥상을 짓밟은 관찰사의 말을 그 자리에 얼어붙게 했다. 혹은 말 무릎을 꿇렸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 일로 죽음에 이르지만, 문호장은 민초들의 영웅으로 요즘도 해마다 단옷날 주민들이 제를 올린다.

장황하게 문호장의 이야기를 했지만, 문호장 전설이 있는 창녕 영산에는 가야 고분군이 있다. 물론 창녕은 교동과 송현동 고분군이 유명하다. 하지만, 영산에도 창녕읍에 버금가는 거대한 고분군이 있었다는 게 지역 사람들의 증언이다. 영산 고분군은 일제강점기 도굴되고, 농지나 도로로 개발돼 최근 복원한 몇 기의 작은 봉분으로 겨우 그 흔적을 알 수 있을 뿐이다.

경남 도민의 노래는 '여기 가야의 옛터 역사를 자랑하는 곳'으로 시작한다. 노랫말처럼 경남은 잊힌 신비의 왕국 가야의 본거지였다. 지난 3월 문화재청이 가야 유적 7곳을 묶은 ‘가야고분군’을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신청 후보로 확정했다. 가야고분군은 김해 대성동 고분군, 함안 말이산 고분군, 합천 옥전 고분군, 고성 송학동 고분군, 창녕 교동과 송현동 고분군, 고령 지산동 고분군, 남원 유곡리와 두락리 고분군이다. 7개의 고분군 중 경남에 무려 5개가 있다.

7개의 가야 고분군은 다음 달 열리는 문화재위원회에서 세계유산 등재 신청 대상으로 결정되면, 내년 1월 세계유산센터에 등재 신청서를 제출하게 된다. 등재 여부는 2021년 세계유산위원회에서 결정된다.

이런 가운데 이달 초 1만여 점의 유물이 쏟아져 나온 경남 창원 현동 아라가야 유적에서 특이한 유물 하나가 발견됐다. 몸체는 오리 모양이고 머리는 영락없는 낙타 얼굴 모양의 상형토기다. 더불어 배모양토기도 나왔다.

현동 유적 발굴 책임자인 문화재 전문가는 “당시 낙타를 알았다면 상당히 먼 지역과 교류를 했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배모양토기도 단순한 통나무배가 아니라 돛을 매달아 항해하는 범선으로 보이며, 이는 대양을 항해할 수 있는 배를 표현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평가했다. 아라가야 지배층 집단 묘지로 보는 경남 함안 말이산 고분군에서는 최근 1600년 전 만든 것으로 보이는 정교한 맞배지붕 형식의 집모양토기와 유선형 준구조선 형태의 배모양토기가 또 나왔다. 지난해 무덤 덮개돌에서 별자리를 표현한 성혈(星穴)이 출토되기도 해서 신비감이 더 증폭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현 정부 국정과제이기도 한 가야사 문화권 조사 정비를 위해 경남도의회는 가야사연구복원사업 특별위원회를 구성했다. 김해박물관은 2023년까지 가야사 관련 학술 연구, 소장품 조사 등 다양한 사업을 추진한다.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는 9월 30일까지 가야 연구논문을 공모한다.

하지만 아직 많이 부족하다. 경남 일대에 산재한 수많은 가야 유적은 여전히 방치돼 있다. 경남에는 무려 544여 곳의 가야유적이 있다. 지금까지 발견된 것만 이렇다. 그러나 이중 국가나 도 문화재로 지정된 유적은 현재 43곳에 불과하다.

이번에 발굴한 현동 유적은 물론 경북 고령 대가야 가마터가 발견된 창원 중동 유적, 방치된 영산 고분군 등에 대한 연구와 보존 작업은 여전히 턱없이 부족하다. 관련 연구와 조사를 할 수 있는 예산이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민홍철 국회의원이 발의한 ’역사문화권 정비 등에 관한 특별법안‘은 아직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최근 발굴되는 유물을 통해 신비의 왕국 가야는 서로 교류하고 소통하며 문물을 교환했고, 일본과 중국뿐만 아니라 멀리 아라비아와도 교역했을 것이라는 상상이 가능하다.

이제는 가야가 더는 전설이 아니라 역사로 평가받아야 한다. 전설 속의 문호장이 창녕 사람의 심지가 되었듯이 잊힌 왕국 가야도 역사로 되살아나야 한다. 내친김에 가야 고분군의 세계문화유산 등재도 기대한다.

jaehee@busan.com


이재희기자 jaehe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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