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 아모르 파티

김효정 기자 teresa@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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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의 한 청년이 왜 자신을 낳았느냐며 부모를 고발했다고 한다. 자신은 결코 원해서 태어나지 않았다는 거다. 청년은 학업과 취업을 위해 경쟁을 해야 하는, 그야말로 삶은 고해(苦海)인데 부모의 즐거움을 위해서 자식을 낳았으니 부모는 자식한테 평생 생활비를 지불해야 한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낳았다는 이유로 부모 고발

태어날 결정권 가질 수 있나

인생은 출발부터 불공평해

운명으로 여기고 살아가기도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는 뜻

‘아모르 파티’ 노랫말 공감

청년의 엄마는 변호사답게 ‘네가 태어나기 전에 엄마 아빠가 어떻게 너에게 사전 동의를 구할 수 있었을지 합리적 설명을 제시한다면 내 실수를 인정하마’라고 맞받았다. 그러나 누구도 청년의 변호사로 나서지 않아 소송은 지지부진했다고 한다. 변호사들도 청년의 부모가 청년을 낳아주어 세상구경시켜준 것만으로 고마워해야 할 텐데 웬 시비인가 싶었을 거다. 태어나는 결정권을 자기가 가진다면 안 태어났을 거라는 생각을 한 번이라도 해본 사람들이라면 그 청년의 소송이 마냥 발칙하다고만 여기지 않을 것이다.

인도의 그 청년만이 아니라 누구나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세상에 내던져졌다. 인생은 출발부터 불공평한 게임이다. 물고 난 수저 색깔도 다르고 국적도 제각각이지만 그것을 운명이라 여긴다. 아등바등 살아도 되는 게 없을 때 ‘체념’이라는 말 대신 ‘운명’을 떠올린다. 그러나 역풍도 순풍도 자신의 몫이니 받아들여야 한다. 니체 식으로 말하면 ‘아모르 파티(Amor fati)’다.

아모르 파티는 자신에게 주어진 삶이 고통스럽더라도 그걸 운명이라 여기고 사랑해야 한다는 철학 용어라고 한다. 한 마디로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는 거다. 그런 니체의 메시지를 우리 입맛에 맞게 잘 발라낸 게 가수 김연자의 노래 ‘아모르 파티’다.

‘아모르 파티’를 듣고 있으면 국수를 후루룩 빨아올려 먹는 것처럼 인생이 매끄럽고 쉬워 보인다. 퐁퐁 거리는 반주에 쉽고 명쾌한 가사가 곁들여진 그 노래를 듣고 있으면 니체가 말한 ‘운명애’라는 말조차 무겁게 느껴진다. 초등학교 앞 문방구에라도 가서 불량식품을 사 먹고 싶어진다. 인생에 해로운 것부터 배워온 까닭에 불량식품의 달콤함을 놓치고 산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산다는 게 다 그런 거지. 누구나 빈손으로 와 소설 같은 한 편의 얘기들을 세상에 뿌리며 살지’라는 노랫말이 시작되면 쾌도난마처럼 후련하다. 경전과 율법은 창고에 처박혀 있어도 괜찮을 것 같다. 죽기 전에 해야 할 일들을 계명처럼 나열해놓고 우리 스스로 그 덫에서 허우적거리면서 살아온 것 같아 억울하기까지 하다.

김연자가 작년에 부산의 모 대학교 축제 무대에 초청되면서부터 ‘아모르 파티’는 더 유명해졌다. 아이돌 가수가 아닌 트로트 가수를 초대한 대학 측의 발상도 새로웠지만 대학생들이 김연자를 따라 ‘아모르 파티’를 떼로 부르는 장면은 진풍경이다. ‘연애는 필수, 결혼은 선택’이라는 노랫말에 유독 젊은이들의 목청에 힘이 들어가 있다. 어차피 인생이라는 무대에 내동댕이쳐졌다면 제도와 관습에 매이지 않고 한판 질펀하게 잘 놀고 싶다는 외침으로 들린다.

노래 ‘아모르 파티’는 무겁고 심오한 것은 다 잊으라 한다. 한 우물 파다 물이 안 나오면 그 옆을 새로 파라고 말한다. 인생이 고해인 것은 학업과 취업 등, 많은 경쟁에서 졌기 때문이 아니라 자신을 남과 비교하기 때문이라 귀띔한다. ‘나이는 숫자, 마음이 진짜. 가슴이 뛰는 대로 가면 돼’라는 노랫말처럼 자신이 주체가 되어 살면 그만이라 한다.

인생의 해법을 찾아 철학 책과 처세술을 뒤져도 묘책이 없다면 ‘아모르 파티’를 불러보자. 후렴구 ‘아모르 파티’만 자꾸 입에 올려도 뭔가 술술 풀리는 기분이다. 아모르 파티.


이병순


소설가


김효정 기자 teresa@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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