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료 못 구해 미안” 자책감에 스스로 삶 등진 소방대원

권승혁 기자 gsh0905@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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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전 동료를 구하지 못했다는 미안함 때문이었을까. 울산에서 태풍 ‘차바’ 당시 동료를 잃은 한 소방관의 극단적인 선택이 지역 사회에 깊은 슬픔과 안타까움을 안기고 있다.

지난 5일 저녁 울산의 한 저수지 옆에서 40대 초반 소방대원 A 씨가 숨진 채 발견됐다. 유서는 발견되지 않았다. 어린 자녀들과 아내가 있는 젊은 소방대원의 비보를 접한 동료들은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2016년 태풍 ‘차바’ 울산 내습 때

함께 출동 동료 강물 휩쓸려 사망

“혼자 살아” 3년간 슬픔 속에 지내

지난 5일 저수지서 숨진 채 발견

동료들 영결식장서 ‘눈물바다’

울산 소방당국, 순직 승인 신청

동료들은 “A 씨가 평소 태풍 차바 당시 함께 출동했던 동료인 고(故) 강기봉 소방교의 죽음에 대해 ‘나만 살아남아서 기봉이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하곤 했다”고 전했다. A 씨가 수년간 이어진 고통스러운 기억과 죄책감에서 벗어나고자 스스로 삶을 등졌다는 것.

2016년 10월 태풍 ‘차바’는 울산을 할퀴며 깊은 상흔을 남겼다. 그 어떤 피해보다 소중한 인명이 3명이나 희생됐고, 이 중에는 A 씨의 동료인 강 소방교가 포함돼 있었다. 당시 강 소방교는 “고립된 차 안에 사람이 있는 것 같다”는 신고를 받고 급히 동료들과 함께 울주군 회야강변으로 출동했다가 그만 불어난 강물에 휩쓸렸다. 그는 이튿날 강 하류를 따라 약 3㎞ 떨어진 강기슭에서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다. 강 소방교 영결식에서 조사를 낭독한 한 동료는 “마지막으로 명령한다. 강기봉 소방교는 귀소하라”며 울부짖었고, 강 소방교의 죽음에 지역사회도 비탄에 빠졌다. 특히 강 소방교와 함께 출동했던 A 씨의 충격이 누구보다 컸다. 두 사람은 함께 전봇대를 붙들고 세찬 강물을 버티다가 힘이 빠져 급류에 휩쓸렸다. A 씨는 약 2.4㎞를 떠내려가다 가까스로 물살에서 목숨을 건졌으나, 강 소방교는 끝내 수마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A 씨는 강 소방교의 죽음을 막지 못했다며 자주 자책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사고 이후 꾸준히 정신건강의학과 치료를 받으면서 죄책감을 이겨내려고 애썼다고 한다. A 씨는 간호사 면허를 보유한 구급대원답게 언제나 앞장서서 구급대 업무에 임했고, 자신의 고통과 아픔을 티 내는 성격이 아니었다고 한다. A 씨 동료들은 “현장 출동에 누구보다 솔선수범하고 밝은 표정이어서 그간 아픔을 극복하는 과정인 줄로 알았다”며 “혼자서 견뎌냈을 생각을 하니 마음이 너무 아프다”고 한숨 쉬었다. 저수지 인근에서 신고를 받고 출동해 A 씨의 시신을 찾은 사람들도 그의 소방서 동료들이었다.

이런 사연이 알려지면서 A 씨 장례식장은 울산 소방관들의 눈물과 오열로 가득찼다. 청천벽력 같은 비보를 접한 A 씨 동료들은 그의 캐비닛에서 유품을 정리하며 말없이 고개를 떨궜다. 캐비닛 속 그의 옷가지 사이에는 3년 전 태풍 차바 때 숨진 강 소방교의 근무복이 걸려 있었다.

울산소방본부는 A 씨 진료기록 등을 토대로 순직 승인을 신청할 계획이다.

권승혁 기자 gsh0905@busan.com


권승혁 기자 gsh0905@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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