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조현병 환자의 원예치료] 향기치료·운동효과 톡톡… 누워만 있던 할아버지가 변했다

김병군 선임기자 gun39@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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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을 보면 환자들도 미소를 짓는다. 부산노인전문제3병원 치매안심병동에서 자연친환적인 원예치료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부산노인전문제3병원 제공 꽃을 보면 환자들도 미소를 짓는다. 부산노인전문제3병원 치매안심병동에서 자연친환적인 원예치료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부산노인전문제3병원 제공

올해 86세인 조 모 할아버지는 치매와 편마비로 입원했다. 병원에 있는 동안 아무 말없이 누워만 있었고 일상생활도 옆에서 보조를 해주어야 했다. 원예치료 첫 시간에는 꽃을 바라보기만 할 뿐이어서 참가하는 것이 목표였다. 시간이 흐르면서 할아버지는 조금씩 웃기도 하고 바라보기만 하던 식물을 건드려보기도 했다. 하루는 노란색 프리지어를 놓고 꽃 색깔에 대해 질문을 하자 ‘노랑’ 이라고 언어적 표현을 하기 시작했다. 어느 날부터는 떨리는 손이지만 할아버지가 직접 가위로 꽃을 손질하기도 하고, 손질한 꽃을 플라워 폼에 꽂는 등 신체적인 움직임도 증가하기 시작했다. 누워만 있으려고 하던 예전과는 달리 참여 의사를 지속적으로 표현하는 등 치료자와 가족 모두에게 놀랄만한 진전을 계속 보여주고 있다.

진입장벽 낮아 누구나 쉽게 흥미

오감 자극해 심리치료 효과 커

공격성향 줄이고 인지력 향상

노인전문제3병원 부산 첫 도입

조현병 환자에 거부감 없는 치료

사회성 회복 등 좋은 대안 주목

모범적인 원예치료 프로그램

원예치료는 18세기부터 시작된 치료법이다. 미국과 유럽에서 1940년대에 입원한 상이군인들의 재활을 위하여 활용된 이후 급속하게 확산됐다.

원예활동은 오감을 모두 자극해 감각을 일깨우기 때문에 다른 심리치료에서는 얻을 수 없는 종합적인 효과를 얻을 수 있다. 꽃과 식물의 냄새를 맡으면서 향기치료 효과를 얻을 수 있고, 정원 가꾸기나 식물 재배를 통해 운동 효과를 얻으며, 수확 과정에서 성취감과 자신감이 증진된다. 이처럼 종합적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것이 원예치료의 특성이다.

부산노인전문제3병원(해운대구 우동)은 치매국가책임제 이후 부산에서 처음으로 원예치료 프로그램을 도입했다. 부산노인전문제3병원은 개원 초기부터 실내 원예치료 공간을 마련했다. 최근에는 원예치료의 효용성이 높다고 판단하여 실내와 실외가 하나의 치료공간으로 구성될 수 있도록 원예치료 공간을 추가로 확장했다. 야외 원예치료 공간은 한옥을 모티브로 평상, 댓돌, 고무신, 우물 등을 설치해 놓았다. 환자들이 어릴 때 살았던 공간과 유사한 자극을 제공함으로써 이전의 기억을 회복하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함이다.

명찰만들기, 해바라기 정원, 압화부채 만들기, 수경재배, 새싹채소 기르기, 고무신에 다육심기 등 12회차 원예치료 프로그램이 현재 운영중이다. 치매안심병동의 모범적인 프로그램으로 꼽히고 있다.

재활의학과 박진희 과장은 “꽃을 보면 저절로 미소를 짓게 되면서 심신이 안정되고 엔도르핀이 형성된다. 원예치료는 환자들에게 재활동기를 부여해 주며 집중력 향상과 우울감 해소에도 도움을 줘 정서적인 안정을 찾게 된다”고 설명했다.

신체적, 사회 심리적 효과

인간은 스트레스를 받으면 이에 맞서기 위해 체내에서 코르티솔이라는 호르몬이 분비된다. 이 호르몬은 신체 각 기관으로 많은 혈액을 방출시킨다. 원예치료는 별다른 부작용 없이 혈중 코르티솔 수치를 유의하게 낮춰주는 효과가 보고되고 있다.

신체적 효과는 주로 손가락 등 소근육 움직임 향상에 도움이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꽃과 식물을 돌보면서 근육 자체의 움직임 향상은 물론 자기관리, 배변조절, 의사소통 등의 영역에서도 유의미한 향상이 있음이 여러 논문을 통해 보고된 바 있다.

사회 심리적 효과는 주로 우울, 대인관계, 의사소통 능력 측면에서 확인된다. 비단 치매 질환뿐 아니라 정신건강 영역 전반에 걸친 증상이기도 하다. 조현병, 우울증, 신경증 등의 정신건강 질환에 유의미한 도움이 될 수 있다.

원예치료는 손의 방향과 강도를 여러 각도로 조절하면서 신체를 이용하는 작업을 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또 혼자가 아닌 그룹 활동으로 하기 때문에 사회성을 회복하는데도 도움이 된다.

부산노인전문제3병원 김여정 진료원장은 “원예치료는 무엇보다 생소한 치료 도구가 아닌 이전부터 익숙한 자연체를 매개로 하고 있어 환자들이 적응하는데 걸리는 시간이 거의 없어 호응이 높은 치료다”고 강조했다.

치매, 조현병 환자에 도움

시각, 후각, 촉각 등 뇌에 다양한 자극을 주는 원예활동은 치매 환자 치료에 긍정적 효과를 준다. 삽과 가위 등 다양한 도구를 사용하면서 인지능력 향상에도 도움을 준다.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치매 환자들이 주변 사람을 상대로 꼬집기, 때리기, 물건던지기 등의 공격성향이 감소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신경학적으로는 뇌의 당 대사량이 증가해 뇌가 활발하게 활동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원예치료 과정에 식물을 옮겨 심는다든지 위치 배열을 하게 되는데 이때 자연스럽게 두정엽의 세포들이 활성화되는 과정을 거친다.

최근 들어서는 조현병 환자에게 원예치료를 적용한 사례가 많이 보고되고 있다. 식물이 조현병 환자의 망상이나 사고 장애에 거의 영향을 미치지 않는 매개물이면서 치료에 대한 거부감이 거의 없는 도구이기 때문이다. 환청, 혼잣말 같은 조현병 환자의 양성 증상은 쉽게 약물로 조절이 가능하나 퇴화된 사회성과 자존감은 약물로 회복되기 어렵다는 점에서 원예치료가 좋은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원예치료는 진입장벽이 낮아 누구나 쉽게 흥미를 느낄 수 있어 치매안심센터, 의료기관, 요양병원 등에서 주로 활용된다. 치매 환자의 운동기능이 어느 정도 유지되는 요양원, 인지건강교실 등에서는 치유정원이나 치유농장을 운영하면서 호응을 얻고 있다. 김병군 선임기자 gun39@busan.com


김병군 선임기자 gun39@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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