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컬 터치] 갈림길에 선 재개발지역 사회복지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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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재문 경성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부산의 사회복지관 활동은 1952년 미국 감리교 선교부가 서구 토성동에 기독사회관(현 기독교종합사회복지관)을 만들면서 시작됐다. 전쟁 중에 피란민과 고아를 대상으로 구호사업을 했다. 이렇게 시작된 사회복지관은 현재 부산에만 53곳이 운영 중이다. 그중 49곳이 1989년 이후에 생겼는데, 1988년 정부가 ‘주택 200만 호 건설사업’을 추진하고 영구임대아파트 단지에 사회복지관 설치를 의무화한 영향이 컸다.

취약계층 위주로 운영하는 사회복지관

재개발로 대규모 아파트 단지 들어서면

노인·빈곤층 대신 아동·중산층 수요 늘 것

급변한 환경에 대응할 역할 재정립 필요

사회복지관은 67년간 다양한 지역사회 복지 활동으로 사회에 공헌해왔다. 1990년대 이후 정부의 사회복지관 운영 기조는 빈곤층과 취약계층에 대한 구호와 서비스 제공이었다. 빈곤계층의 아동, 장애인, 노인, 다문화가족 등에 집중해 정부가 요구하는 다양하고 종합적인 서비스와 프로그램을 제공한다는 측면에서 종합사회복지관으로 불린다.

그런데 사회복지관이 지역사회 복지 활동의 독보적 위상을 상실해가면서 정체성 위기를 맞고 있다. 노인복지관과 장애인복지관의 등장, 비영리 조직의 복지 활동이 사회복지관의 기능 상당 부분을 대체하고 있다. 개별서비스를 두고 다양한 복지서비스 공급 주체와 경쟁하는 조직 중 하나로 위상이 낮아지고 있다. 종합적 성격이 해체되고 있는 거다.

이에 더해 최근 주목할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부산지역 곳곳에서 재개발사업이 추진되고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우후죽순 들어서면서 정체성 위기에 있는 사회복지관을 더 어렵게 만들고 있다. 아직 사회복지관이나 공공기관은 밀려오는 먹구름을 심각하게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이미 완료된 30여 곳에 더해 추진 중인 80여 곳 재개발 사업이 마무리되면 수급자와 취약계층이 집중된 지역을 제외한 상당수 사회복지관은 현재와 다른 대상, 프로그램, 서비스를 준비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할 것이다.

아파트 중심의 재개발은 인구구조 변화를 초래한다. 피란 시절 형성된 고령화 지역이 대규모 아파트로 변하면서 평균 연령이 낮아지고 아동·청소년 인구가 늘어날 수 있다. 노인 중심으로 추진되던 프로그램의 전면적 재편과 재구성이 요구될 것이다. 이는 노인이 이동해 유입되는 타지역의 노인복지 부담이 심화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비싼 집을 공급하는 현행 재개발 사업은 지역사회의 사회경제적 계층 구조도 변화시킨다. 특히 빈곤층이 많이 거주하던 사회복지관은 어느 날 갑자기 중산층 아파트 숲으로 둘러싸이기도 한다. 사회복지관 이용층이 빈곤층에서 중산층으로 바뀌고, 사회복지관의 프로그램 구조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재개발로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면 지역사회의 공간 구조가 급변한다. 주민의 접근성이 달라지고 교류 공간과 방식이 변화한다. 사회복지관이 기존에 구축한 공간적 자산을 전면적으로 재검토해야 하는 상황이 만들어지게 된다. 사회복지관의 새로운 경쟁 집단 출현도 쉬워진다. 시간과 소득에서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는 중산층이 비영리단체에 적극 참여하고 지역복지 활동에 개입함으로써 서비스 공급의 경쟁 주체로 발전할 수도 있다. 이들은 고학력, 향상된 사회문화적 감수성, 국제 감각으로 지역사회에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며, 사회복지관 입장에서 우호적 기회와 경쟁적 도전의 양면적 의미로 다가올 것이다.

사회복지관이 변화에 대비하고 있는가? 재개발로 촉발되는 도전적 환경에 관한 연구는 극히 부족하다. 시나 구·군은 물론 사회복지관도 체계적인 조사연구와 대응책 마련에 나서지 않는다. 공공은 둔감하고 현장은 수동적 의존성에 여전히 익숙하다.

돌이켜 보면 지역사회에서 사회복지관만큼 구호, 서비스 제공, 지역조직에 대한 경험과 노하우를 축적한 조직을 찾기 힘들다. 다양한 복지 욕구가 양적, 질적으로 폭발하고 있는 현시점에서 사회복지관은 여전히 지역복지의 핵심 인프라일 수밖에 없다. 더 늦기 전에 공공, 연구조직, 사회복지관이 함께 참여하는 대응팀을 발족시키고 대안을 만들어야 한다. 새로운 시대와 급변하는 환경 조건에 적응하는 선도적 주체로서 사회복지관의 역할과 기능을 재정립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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