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학림 칼럼] 스콜피언스 ‘변화의 바람’을 다시 새기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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록 밴드 스콜피언스의 노래 ‘변화의 바람’은 베를린 장벽 붕괴를 보고 만들어졌다. 역사의 도도한 변화 물결을 노래한 거다. 장벽 붕괴 30년이 지났는데 왜 한반도는 아직 분단 장벽의 땅이어야 하나. 우리 현실은 어떠한가. 한반도 평화로 가는 북·미 핵 협상은 뱅뱅 돌면서 진척되지 않고, 남북 관계는 뻣뻣하게 경색되고 있다. 한·일은 갈등하고, 미국은 방위비와 지소미아 압박으로 한국 정부를 심하게 몰아붙이고 있다. 한반도 평화를 누가 원하는가. 우리가 소망하는가, 당신이 원하는가, 아니면 저들과 그들이 바라는가.

냉전 허문 베를린 장벽 붕괴 30년

한반도 분단 상황은 현재진행형

북핵 협상, 지지부진한 답보 상태

키는 미국이 틀어쥐고 있는 양상

그러나 도도한 역사 변화 바라며

통일 한반도 세계사적 그림 품자

현재 한반도를 둘러싼 대외적 구도의 핵심은 미국과 중국의 신냉전이다. 이것은 현재 진행형의 세계사적인 패권 다툼이다. 급팽창하는 중국을 누르기 위해 미국은 올 6월 ‘인도-태평양 전략’을 새로 채택했다. 미국은 한·일과 호주, 3국을 축으로 한 ‘동아시아 전략’에서 일본 호주 인도, 3국을 축으로 한 인도-태평양 전략으로 ‘넓게’ 변경한 것이다. 인-태 전략의 하위 국가로 한국 대만 싱가포르 베트남을 배치시키고 있다. 이들 국가를 방벽 삼아 중국의 급팽창을 저지한다는 것이 미국의 최우선 목표다. 그러니까 한반도 평화는 인-태 전략의 하위 개념이며 부차적인 카드에 불과하다. 미국의 중국 봉쇄 전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한반도 평화는 얼마든지 유예할 수 있다. 이것이 한반도 평화가 ‘취급되는’ 차가운 현실이다.

우리 내부의 이견이 복잡한 것을 말해서 무엇하랴. 민주주의 이름 아래 수구 보수 중도 진보에 이르는 다양한 남북관, 통일관이 있다. 그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북한 내부도 복잡할 것이다. 엊그제 한 외신은 북핵 문제와 관련해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도 내부의 위협, 압박을 받고 있다고 전했다. 매파와 비둘기파를 막론하고 기득권 세력은 언제 어디든지 있는 것이다.

먼저 우리 정부에 대한 아쉬움이 없을 수 없다. 올 4월 김연철 통일부 장관 취임 이후 뭔가 바뀔 줄 알았다. 대북 제재의 바깥에 있는 금강산과 개성공단을 통해 모종의 돌파구를 뚫기를 기대했다. 그러나 아무것도 없었다. 통일부의 무능인지, 청와대 국가안보실의 역량 이상인지 알 수 없다. 지금, 미국이 압박하는 지소미아 연장과, 금강산과 개성공단에 대한 우리 재량권을 바꿔치기라도 했으면 하는 심정이다. 차일피일, 이 눈치 저 눈치를 보는 와중에 우리는 미국의 최신 무기를 도입하고 한미연합훈련도 했는데, 그것이 빌미가 돼 남북관계의 판은 틀어져버렸다. 한반도 평화의 판을 크게 읽고, 미국의 예의주시를 뛰어넘어 그 틈새를 넓혀나가는 우리 정부의 강단과 결단이 필요하다.

다음으로 북한도 하노이 ‘노딜 악몽’에 더 이상 사로잡혀 있어서는 안 된다. 체제 안전보장 요구는 당연하다. 동시에 명백한 비핵화 의지를 보여야 한다. 모든 핵무기와 현존 핵 계획을 포기하는, 이전 6자 회담 수준의 비핵화 약속을 선포할 수 있어야 한다. ‘영변 플러스 알파’로 나아갈 수 있어야 한다. 나아가 남북관계를 더 이상 경색되게 끌고 나가지 않기를 바란다.

그러나 아무래도 키를 쥐고 있는 것은 미국이다. 이것이 우리 한반도의 ‘약한’ 현실이고 미국의 ‘강한’ 입장이다. 북핵 협상 키는 ‘제국’ 미국의 관료들이 이미 틀어쥐었다는 게 일반적인 관측이다. 다만 우리는 트럼프 대통령이 대선을 위해 핵 협상 카드를 긍정적으로 활용할 수 있기를 바라는 ‘미약한’ 처지다.

이러한 답답한 현실을 뚫고 나아가야 하는 게 한반도 평화의 현주소다. 현재로서는 한반도 평화 체제가 팽창하는 중국을 저지할 수 있다는 큰 그림이 그려져야 미국이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을 것이다. 이 그림이 그려져야 하는 것이다. 북한이 중국 러시아와 비핵화의 길을 모색하는 경우, 미국이 이를 견제하기 위해 나설 수 있으나 그것이 가능한 그림이 될지는 알 수 없다.

우리는 눈을 크게 떠야 한다. 세계 지도를 펼치면 유라시아 대륙의 저쪽 중동은 열전 양상이고, 동쪽 한반도 일대는 냉전 상황이다. 중동만큼 한반도는 현 세계사의 첨예한 모순이 집약된 곳이다. 한반도는 냉전 이후 새로운 세력 대결의 복잡한 구도가 얽혀 있는 곳이다. 일본도 거기에 상당히 만만찮은 작용을 하고 있다.

다시 보자. 한반도는 어떤 곳인가. 세계적 투자가 미국 짐 로저스는 한반도는 10~20년 안에 통일될 거라고 전망했다. 올해 낸 책에서 그는 “아시아 시대가 도래했다”고 선언했다. 세부적으로, 일본은 강점을 지녔으나 침체에 빠져 있으며, 중국은 세계적 패권국에 가장 근접했으나 리스크가 다소 있다고 했다. 그러나 한반도는 통일의 극적 변화를 맞이하면 아시아 시대의 중핵, 세계에서 가장 흥미진진한 장소가 될 거라고 했다. 역사의 도도한 흐름을 전망하면서 ‘변화의 바람’을 깊게 새겨 다시 듣는다.

theo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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