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지 30㎏ 주워도 1200원, 그래도 소중한 내 직업”

최혜규 기자 iwill@busan.com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부산일보DB 부산일보DB

“병원에서 자꾸 운동을 하라고 하더라고.” 70대 A 씨는 노점상을 하다가 “살아야지” 싶어서 십수 년 전 폐지를 줍기 시작했다. 아들 친구의 엄마가 하는 채소가게에서 박스를 받는 날이면 병으로 누워 있는 남편에게 생선이라도 구워줄 수 있다.

“이것도 내 직장이라 말입니다.” 80대 B 씨는 폐지 수거 4년 차다. “눈에 보이면 오전에도 오후에도 할 수 있는 일”이고 “마을도 깨끗해지고” 해서 자부심도 있다. “30kg를 모아도 1200원, 막걸리 한 병 값 벌었다”고 우스갯소리를 하지만 “폐지 단가를 좀 올려주면 좋겠다”며 속내를 보였다.

부산 폐지 수거 노인 300명 설문

주당 수입 ‘2만 원 미만’ 75%

㎏당 40원, 폐지값 개선 요구 커

경량 리어카 지원 정책 등 필요

부산에서 폐지 줍는 노인의 실태와 욕구를 조사하고 지원 방안을 제시한 연구가 처음으로 나왔다. 부산복지개발원이 22일 발표한 ‘부산광역시 폐지 수거 노인 지원방안 마련 연구’ 보고서다. 연구팀은 올 6월 부산의 65세 이상 폐지 수거 노인 3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하고 이 중 7명을 심층 인터뷰했다. 올 10월 기준으로 부산시가 파악한 폐지 등 재활용품 수거 노인은 1768명이다.

이번 조사 대상의 연령대는 75~79세(112명)와 80~84세(78명)가 전체의 63.3%를 차지했다. 최종 학력은 초등학교(151명), 무학(92명) 순으로 초졸 이하가 81%였다.

주당 폐지 수입은 2만 원 이상(25.3%), 1만 원 이상~2만 원 미만(37.7%), 1만 원 미만(37%) 등이었다. 열 명 중 네 명(44%)은 다쳤는데, 종이에 손을 베이거나(부상 답변자 중 49.4%) 손목, 발목, 허리 등을 삐었다(31.3%).

폐지 수거 때 어려운 점으로는 낮은 가격(29.3%)과 운반의 어려움(23.3%)을, 바라는 정부 지원으로는 역시 가격 관리(66.7%)와 안전 보호 장비 지원(12.0%)을 꼽았다. 현재 노인들이 폐지를 수거하고 손에 쥐는 돈은 kg당 40원으로 2년 전에 비해 반 수준이다.

연구팀은 폐지 수거 노인을 지원하기 위한 대책으로 시가 관련 조례를 개정하고 공기업의 참여를 유도해야 한다고 제시했다. 부산시는 관련 조례를 통해 야광 조끼나 마스크를 지원하지만 인천시는 관련 기업이나 단체 지원, 경기도는 운반 장비 개선 지원 조항을 더 두고 있다.

특히 연구팀은 지역사회 네트워크 지원에 주목했다. 조사 대상 노인 열 명 중 일곱 명(69.0%)은 독점적으로 폐지를 주는 가게나 이웃이 있었다. 여러 어려움에도 둘 중 한 명(54.7%)은 앞으로도 폐지 수거를 계속하겠다고 답하기도 했다.

부산복지개발원 이재정 고령사회연구부장은 “궁극적으로는 폐지 줍는 노인을 줄여나가되 경량 리어카 지원과 광고를 결합한 기술보증기금 주도 ‘희망의 리어카’ 사업처럼 안전하고 안정적인 수거 활동을 지원하고 반송동의 ‘재활용품 골목지킴이 마을지지망 네트워크’처럼 폐지 수거 노인의 사회적 네트워크 수준을 높일 수 있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최혜규 기자 iwill@


최혜규 기자 iwill@busan.com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