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중한 기억 창고 ‘마을 보고서’ 더 많이 나와야 한다

최학림 선임기자 theo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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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단을 담은 이야기> 주민편집단. 하단1동 주민자치위 제공 <하단을 담은 이야기> 주민편집단. 하단1동 주민자치위 제공

하단에 대한 애틋한 추억을 환기하는 마을 이야기인 〈하단을 담은 이야기〉라는 책이 출간됐다. 책은 120쪽으로 그렇게 두껍지 않지만, 그 의미는 매우 각별하다. 부산 사하구 하단1동 주민자치회가 주도해 마을 사람 15명으로 주민편집단을 구성하고 마을 이야기를 채록 기록했다는 점에서 그렇다. 처음에는 무슨 내용을 담을 건가, 그저 막막했다고 한다. 소설가 조갑상(요산문학관장), 시인 최원준(음식문화 칼럼니스트) 등의 전문가에게서 16차례 특강을 듣고 조금 가닥을 잡았다고 한다. “7개월간 밤과 낮, 주말 구분 없이 인터뷰하고 채록했다”는 게 주민자치회 이영수 위원장의 말이다. 책을 펼치면 에덴공원뿐 아니라 시온섬에 대한 얘기도 나온다. 지금 없어진 시온섬은 가락타운아파트 자리에 있었던 모래섬으로 청춘들 낭만의 데이트 장소였다고 한다.


주민 솔선해 ‘하단을 담은 이야기’ 출간

마을 기록 예산 서울이 부산보다 18배

의미 있는 작업에 지자체 힘 보태야


〈하단을 담은 이야기〉는 지난해 북구 만덕2동 마을기자단이 7~8개월의 공력을 들여 출간한 〈만덕사람들〉을 떠올리게 한다. 당시 마을 주민들은 뿌듯해했고, 행정은 자치행정의 새 방향을 가늠했다며 좋아들 했다.

이렇게 의미 있는 일들이 진행되고 있는 것은, 주민들의 역량이 몰라보게 달라졌다는 점을 반영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지금 곳곳에서 자기 지역의 기억을 채집하는 일들에 솔선해서 나서고 있는 점을 그냥 그렇겠거니 하고 내버려 둬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요컨대 부산의 사라지는 마을과 그 기억에 대한 이야기, 부산 근현대의 기억을 집대성하는 작업을 어느 정도 체계화할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부산시나 각 자치단체가 용의주도하게 나서야 한다는 얘기들이 많다. 지금 곳곳에서 분출하는 열의와 지향을 더욱 맥락화하고 계열화하는 데 시와 자치단체가 힘을 보탤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굉장히 중요하고 서둘러야 하는 일이다. 그러나 직접 주도하라는 것이 아니라 이러저러하게 진행되는 일들을 체계화하고 규모화하도록 예산도 배정해 적극적으로 지원에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부산에서 2011년 출간된 〈이향과 경계의 땅 부산의 아미동, 아미동 사람들〉은 개별 연구회가 했던 것이다. 이후 부산은 각 동네와 마을에 관심을 기울인 것은 맞다. 부산박물관에 소속된 임시수도기념관이 그 일에 주도적으로 나서고 있는 형편이다. 2014년 〈우암동 사람들의 공간과 삶〉, 2017년 〈보수동 책방골목의 공간과 사람들〉, 2018년 〈기억의 소환, 광복동을 말하다〉의 출간이 그 성과물이다. 현재는 부민동에 대한 작업을 진행 중이며 책은 내년 하반기에 출간할 예정이다. 2가지 문제점을 지적할 수 있다. 첫째는 예산 배정이 연 2000만 원에 불과하고, 2년에 걸쳐 한 지역에 대한 보고서를 내는 것에 그쳐 작업 속도가 늦다는 점이다. 둘째는 임시수도기념관이니까 임시수도와 전쟁 시절의 기억과 관련된 지역에만 집중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부산의 이러저러한 마을과 지역까지 작업을 확산할 수 없는 한계는 분명하다.

서울 경우를 보면 부러울 뿐이다. 서울은 서울역사박물관 주도로 2007년부터 각 지역과 마을에 대한 보고서를 의욕적으로 내고 있다. 1년에 2개 지역에 대한 작업을 진행하면서, 매년 예산은 3억 6000만 원을 배정하고 있다. 2년에 1개 지역에 대한 작업을 겨우 하면서 매년 예산 2000만 원을 배정하는 부산과 현격하게 다르다. 예산을 따지면 서울은 부산의 18배에 이른다. 부산은 3개 보고서에 그친 반면, 서울은 현재 33개 보고서가 나와 있다. 심지어 서울은 마을 보고서 출간 이후 돈의문마을박물관, 장수마을박물관 등을 개관한 사례도 있다. 하인수 임시수도기념관장은 “부산도 예산 지원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서는 서울시 같은 부산시의 의지가 요구된다. 그것이 전제된다면 임시수도기념관, 부산근대역사관이 지역과 마을에 대한 기억을 채록하는 데 나설 수 있을 것이다. 학계도 이런 작업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구군 자치단체와 각 문화원이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도 방법이다. 깡깡이마을 100년의 보고서 4권을 낸 영도문화원 사례를 부산 곳곳으로 확산할 수 있어야 한다.

최학림 선임기자 theos@


최학림 선임기자 theo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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