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 있는 풍경] 인간의 품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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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도시인 구상 평전 / 이숭원

한 시인이 죽었다. 그리고 시인을 기리는 평전이 나왔다. 으레 사람의 훌륭한 업적, 인품과 남다른 성정을 일대기 형식으로 쓴 글을 평전의 기본 양식으로 받아들인다. 평전의 주인공에게는 보통사람이 범접하기 힘든 아우라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평전을 탐독한 후에는 흠모의 정이 솟는 경우가 많다.

문학평론가

이자 국문학자인 이숭원은 〈구도시인 구상 평전〉의 말미에 구상 시인을 두고 당대에 나오기 힘든 거인이라 적었다. 구상 시인의 탄생에서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 훑은 시인과 인간으로서 면모를 살펴보면 사람이 과연 무엇으로 살아가는지 떠올리게 된다.

신실한 가톨릭 신앙과 이로 말미암은 구도적 자세와 헌신이야 사실 훌륭한 일인 것만은 틀림이 없다. 표면에 드러나지 않지만 종교적 헌신을 행하는 분들이 수두룩하기에 유난을 떨 필요까지야 없지 않겠는가. 다만 죽음을 앞두고 훨씬 전에 세상을 뜬 친구 이중섭을 불렀던 대목에 눈길이 멎었다. 먼저 하늘나라로 간 부인이나 아들이 아니라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한 예술가의 영혼이 시인과 교유하는 장면이다. 피붙이도 어쩔 수 없는 예술혼들의 신뢰와 사랑을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필설로 해명할 길이 없는 혼의 관계였음이 분명했다. 가난한 화가와 시인이 주고받는 대화에는 따뜻한 유머가 깃든다. 범인(凡人)들은 특별한 영혼들의 관계를 곧잘 오해하곤 한다.

사실 우리 삶 자체가 오해로 가득 찬 수수께끼가 아닐까. 자신에게 엄격했으면서도 남들에게는 한없이 부드러웠으며 헌신적이었던 한 시인의 내력에는, 인간의 품격이 어떠해야 하는지 일러주는 목소리가 있다. 세상이 사람을 낼 때는 저마다 다양한 입술과 음색으로 세계를 평화롭게 만들 임무를 부친다. 한 시인이 났고 세상에 그 임무를 소진한 채 왔던 곳으로 돌아갔다. 그의 일대기를 읽으면 삶의 물음표 하나를 새기게 되는 자신을 발견할 것이다. “나는 무엇이며 어느 길로 걸어가야만 하는가?”




정훈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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