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 가린 대나무숲 따라 발길 닿는 대로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거제 맹종죽 테마파크

한 여성이 푸른 대나무 사이로 편안한 바람 소리가 들리는 거제맹종죽테마파크를 산책하고 있다.

코로나19는 평범한 일상을 수없이 제약하고 있다. 그중 가장 힘든 것은 숨쉬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집 밖에서는 온종일 마스크를 쓰고 다녀야 한다. 혹시 승강기에 다른 사람이 탑승하면 잠시 호흡을 멈추는 게 습관이 됐다. 시원하게 숨을 쉬면서 맑은 공기를 마시고 싶었다. 그래서 미세먼지도 없고 코로나 바이러스도 없는 푸른 대나무 숲으로 달려갔다.

가덕도를 가로지르는 거가대교를 건너 관포교차로에서 장목 방향으로 들어간다. KTS카페리선착장을 지나자 곳곳에서 “싸~악” 하면서 바람에 흔들리는 대나무 소리가 들린다. 거제시 하청면 와항마을이다. 대나무 군락지로 유명한 곳이다. 잠시 후 ‘거제맹종죽테마파크’가 눈앞에 나타난다.

9만 9000㎡ 부지에 무려 3만 그루
우리나라 맹종죽 85%가 자라는 곳
소원 적은 대나무 조각 달그락거리고
‘사색죽길’ ‘모험의 숲’ 걷다 보면
맑은 공기에 가슴 뻥 뚫리는 죽림욕장
대숲 향 저 멀리선 아이들 웃음소리

거제맹종죽테마파크 ‘죽림욕장’의 포토존.

2013년 개장한 맹종죽테마파크에는 9만 9000㎡ 부지에 맹종죽 3만 그루가 심겨 있다. 1926년 신용우 선생이 경남 모범영농인 대표로 일본 규슈 지방에 산업시찰을 다녀오면서 맹종죽 세 그루를 가져와 집 뒷산에 심은 게 시초가 됐다. 지금은 우리나라 맹종죽의 85%가 이곳에서 자란다. 중국 화남 지방이 원산지인 맹종죽은 죽순을 식용으로 사용하기 때문에 죽순대라고 부르기도 한다. 죽순은 4월에 나오는데 식이섬유가 많아 건강에 좋다.
거제맹종죽테마파크 소원을 담은 ‘소원담장’.

맹종죽테마파크 입구에 세워진 ‘소남 신용우 기념비’를 읽은 뒤 안으로 들어가자 푸른 대나무 숲이 ‘사르르’ 하며 바람 가르는 소리를 내며 손님을 환대한다. 이곳을 찾은 사람들이 각종 소원을 적은, 반으로 가른 대나무 조각들이 바람에 달그락거린다. ‘소원담장’이다. 건강, 행복, 사랑, 합격, 발전 같은 소박한 소원들이 대나무에 새겨져 있다. 일부 대나무에는 이름표도 붙어 있다. 대나무를 심은 날짜, 즉 생일을 적은 이름표다.
거제맹종죽테마파크 ‘죽림욕장’의 판다 인형.

판다 가족이 죽순을 뜯어 먹고 있다. 물론 실제 곰은 아니고 인형이다. 이 일대는 ‘죽림욕장’으로 짙은 대나무 숲이 햇빛을 가릴 정도로 자라 주변이 다소 어둡다. 대나무 숲 안쪽의 온도는 주변보다 4~7도 정도 낮다. 산소 발생량이 많아 스트레스 해소, 심신 순화에 좋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인지 숲으로 들어가니 공기가 다소 차다. 하지만 바람이 그다지 많이 불지 않아 다행히 춥지는 않다.

죽림욕장에 작은 의자가 있다. 잠시 앉아 쉬면서 하늘을 올려다본다. 대나무 가지와 잎에 가려 잘 보이지는 않는다. 눈을 감고 깊이 숨을 들이마신다. 깨끗하고 맑은 시원한 공기가 폐 깊숙이 들어온다. 기분이 상큼해진다. 주변 안내판에 맹종죽을 다룬 시조가 적혀 있다.

‘마디마디 속을 비워 댓잎 소리 청아합니다/몰아치는 된바람에 드러난 지조라서/슴슴한 구름 한 폭을 청명에다 걸칩니다’(이성보의 ‘맹종죽’).

평일 낮이어서인지, 아니면 코로나19 때문인지 대나무 숲은 한산하다. 손님이라고는 기자와 뒤를 따라다니는 가벼운 바람뿐이다. 고개를 들어 뒤를 돌아보면 바람은 대나무 사이로 숨으면서 ‘사그락사그락’ 소리만 낼 뿐이다.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요정 ‘에코’ 이야기가 떠오른다.

대나무로 만든 난간과 계단을 따라 대나무 숲 사이를 걸으니 정자가 하나 나타났다. 휴게소 역할을 하는 전망정자다. 정자 앞으로 푸른 바다가 보인다. 뻥 뚫린 하늘이 시야에 들어온다. 대나무에 가려졌던 햇살이 얼굴을 내비친다. 파란 하늘이 평온한 오후다.

맹종죽에는 ‘효도’를 상징하는 전설이 전한다. 바로 ‘맹종설순(孟宗雪筍)’이다. 그 내용은 이렇다.

‘옛날 중국 삼국시대에 효성이 지극한 맹종이 살았다. 그는 병상에 누워있던 모친을 오랫동안 지극 정성으로 모셨다. 어느 겨울날 모친은 맹종에게 “대나무 죽순을 먹고 싶다”고 말했다. 매우 추운 날이었다. 맹종은 어머니의 말을 듣자마자 눈이 쌓인 대밭을 찾아 나섰다. 이런 겨울에 대나무 순이 있을 리 없었다. 어머니에게 효도할 수 없게 됐다는 생각에 맹종은 눈물을 흘렸다. 곧바로 눈물이 떨어진 자리에 대나무 죽순이 돋아났다. 죽순을 삶아 먹은 어머니는 곧바로 병을 떨치고 일어났다.’

맹종의 효심에 부러움과 부끄러움을 동시에 느끼며 고개를 숙이고 걷다 보니 ‘사색죽길’이 이어진다. 곳곳에 시를 담은 안내판이 서 있다. 대나무를 소재로 다룬 시들이 다수다.

‘어느 길을 택하든/가지 못한 길에 대한 아쉬움과 미련은 남을 터/세속의 문답법일랑 버리고/자연이 이끄는 대로 마음을 맡기면 되리라/바람결을 따라 가만가만 흔들리는 댓잎을 바라보고/무심히 흘러가는 구름을 따라 가면 되지 않으랴’ (김정순의 시 ‘대숲에서’).

‘모험의 숲’으로 들어간다. 가족 단위로 즐길 수 있는 체험프로그램이 운영되는 곳이다. 이곳은 대나무보다는 소나무가 많은 곳이다. 다양한 모험성 놀이기구가 나무 사이에 연결돼 있다. 아쉽게도 지금은 겨울인 데다 코로나19 영향으로 운영을 하지 않는다.

‘모험의 숲’ 입구에 하얀색과 분홍색 꽃이 활짝 피어 있다. 다가가 보니 매화다. 곁에는 노란 꽃이 막 피고 있다. 산수유다.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다들 걱정하고 있지만, 봄은 조금씩 우리 곁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맹종죽테마파크에는 ‘전망대’와 ‘정상전망대’ 두 개의 전망대가 있다. ‘정상전망대’로 가려면 500m가량 산 위로 올라가야 한다. 힘들 정도는 아니고 가벼운 트레킹을 하는 기분이다.

정상전망대에 서니 탁 트인 거제 앞바다가 한눈에 들어온다. 이름을 알 수 없는 작은 섬들이 올망졸망하게 바다에 모여 있다. 바다에서 불어오는 약간 써늘한 바람에 산을 올라오느라 이마에 흐르는 땀은 어느새 말라버렸다.
거제맹종죽테마파크 ‘죽림욕장’의 대나무에 붙은 식재일 표시판.

내려오는 길에 중년 남녀 두 사람을 만났다.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서로 말은 하지 않고 고개를 숙이면서 눈인사만 건넨다. 하산 길은 다시 대나무 숲이다. 깊은숨을 한번 크게 들이마시고 내쉰다. 대나무 향에 머릿속이 맑아진다. 어디선가 아이가 깔깔대며 웃는 소리가 들려온다.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려보니 엄마와 함께 온 아이가 모처럼 마스크를 벗고 즐겁게 웃고 있다.
거제맹종죽테마파크 정상전망대에서 내려다본 거제 앞바다와 섬들.

맹종죽테마파크 입구로 돌아간다. 전시관에 있는 매점에서 ‘거제유자몽돌빵’을 팔고 있다. 마침 출출하던 참이어서 유자몽돌빵을 한 통 사서 2층에 있는 카페에 들렀다. 아메리카노 한 잔에 곁들여 유자몽돌빵으로 늦은 브런치를 든다. 카페 창밖으로 거제 앞바다가 보인다. 맹종죽테마파크 정상전망대에서 보던 바다인데, 여기에서는 다른 느낌이다.

창밖으로 대나무 숲도 보인다. 커피 한 모금과 빵 한 조각에 따뜻해진 몸과 마음이 더 푸근해진다. 조만간 가족과 함께 코로나 바이러스 걱정 없는 맑은 공기를 마시러 다시 와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거가대교 사진 찍기

거제맹종죽테마파크에서 시원한 공기를 마음껏 마신 뒤에는 거가대교(사진)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가는 것도 괜찮다. 부산 해안 길과는 다른 한가한 바닷길 드라이브를 즐길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거가대교를 건너 관포교차로에서 장목으로 빠지는 거제북로 길목에서 내린다. 장목초등학교 앞에서 좌회전하면 맹종죽테마파크로 가지만 우회전하면 황포해수욕장 방면이다. 거제북로를 따라 계속 가면 하유방파제가 나온다. 여기서도 거가대교 사진을 찍을 수 있다.

더 좋은 포인트를 찾으려면 조금 더 달려 거가대교 아래를 지나가면 된다. 적당한 곳에 차를 세워 보는 거가대교 풍경은 제법 괜찮다.

거가대교는 바다 앞에서 위풍당당하다. 다르게 보면 바다 앞에서 쑥스러운 듯 얌전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작은 어선을 수리하는 어부의 눈에 거가대교는 인간의 위대한 승리를 보여주는 것일까, 자연을 거스르는 인간의 오만을 나타내는 것일까.

글·사진=남태우 선임기자 leo@busan.com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