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세 마르티의 시는 ‘인간 해방’ 추구한 사유의 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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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2월 쿠바 수도 아바나 ‘마르티아노 연구센터’를 방문한 김수인 시인이 호세 마르티 초상화 앞에 서 있다. 김수우 제공
“2013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해외거점 파견작가로 선정돼 쿠바의 호세 마르티 문화원에 3개월간 머물렀어요. 쿠바의 공항, 도서관 등 곳곳에 호세 마르티의 동상이 눈에 띄어 그에 대한 호기심이 발동했어요.”

‘백년어서원’ 대표 김수우 시인
‘호세 마르티 평전’ 출간
쿠바 독립 영웅 삶·문학 조명
불의·억압 저항한 시의 혁명성
21세기 소비사회 긴요한 이상


김수우(백년어서원 대표) 시인은 그때 호세 마르티(1853~1895)란 이름을 처음 접했다. 호세 마르티는 쿠바의 독립영웅이자 혁명가, 시인으로 투쟁적 삶을 통해 ‘궁극적 평등’이란 이상을 실현하려 했다. 모든 쿠바인은 마르티를 국부로 추앙한다. 그의 양심과 사상은 쿠바 혁명의 진수가 됐다. 그는 제국주의에 맞서 참여한 제2차 쿠바 독립전쟁의 첫 전투에서 사망했다. ‘라틴아메리카 모데르니스모’(중남미 최초의 독창적인 문학운동)의 선구자인 그의 모든 작품과 기록은 2005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됐다.

김 시인은 2013년 호세 마르티 문화원에 머물며 운명처럼 마르티에게 빠져들었다. “인간 해방의 문화, 민중의 자유와 영성,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윤리, 라틴아메리카 대륙의 진정한 균형을 위해 그는 매 순간 절박한 최선을 살아냈죠. 시는 그에게 사유의 검이었고, 강건한 말굽이었어요. 절박한 현실을 넘어 이상을 추구한 그를 통해 시인으로서 우리 사회에서 문학적 소명을 찾고 싶었어요.”

그때 마르티의 평전을 내기로 한 김 시인은 2016년 11월 세 번째 쿠바 방문에서 ‘마르티아노 연구센터’를 찾았다. 당시 6개월간 머무르며 마르티 전집 27권과 쿠바 교수들이 메일로 보내주는 연구논문 등 방대한 자료를 분석·번역하기 시작했다. 한국에 돌아와서도 2~3년간 번역작업을 지속했고 그 결과물로 <호세 마르티 평전>(글누림)을 펴냈다. 쿠바의 영웅이자 성자인 호세 마르티의 삶과 문학세계를 시인 특유의 섬세한 시선과 필치로 복원한 책이다.

“마르티가 성장하던 19세기 후반은 유럽 제국주의가 끝나지 않았고 미국의 신제국주의가 시작되고 있었죠. 마르티는 아홉 살 때 아버지를 따라 쿠바 마탄사스 주의 농촌에 가서 노예의 고통을 목격하죠. 이 고통은 자연과 함께 마르티의 전 생애에 걸친 투쟁의 주제가 되고, 자유와 정의에 대한 열망을 키워나가게 됩니다.”

김 시인의 말처럼 호세 마르티는 모든 억압에 저항했고 인간과 세계의 가장 자연적인 상태를 꿈꾸었다. 추방자였던 그는 흩어진 민족을 하나로 결집하면서 비전을 보여주고자 했다. 불의에 대한 고통과 추방으로 인한 고독으로 그는 점점 용감해졌다. 시의 혁명성을 일찍 간파한 그는 시를 통해 19세기 탈식민과 신제국주의 양상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을 보여줬다.

‘나의 시는 용감한 자를 좋아하며/간결하고 신실하며,/강철 같은 힘으로 되어 있어/그리하여 검으로 주조된다네.’(‘소박한 시 Ⅴ’ 중에서). 마르티가 쓴 문장과 실천적 문학정신은 평범한 청년이었던 체 게바라와 피델 카스트로 등 쿠바와 남미의 지식인을 행동하는 지성으로 성장시킨 힘이었다. 쿠바의 아이들은 오늘날에도 마르티의 시와 문장을 외우면서 성장한다.

“마르티는 수백 년 웅크렸던 라틴의 민족의식을 불러일으켰고 새로운 공동체 문화를 창조하고자 했죠. 진정한 해방을 향한 마르티의 의지는 오늘날에도 국가와 시대의 경계를 넘어섭니다.”

마르티의 글과 사상은 오늘날 한국 사회에 어떤 유효한 메시지를 던져줄까. “요즘 우리는 물질에 갇혀 현실만 따라가려 하고 이상을 바라보지 못하고 있죠. 인류애를 담은 영성적이고 정신적인 가치를 추구한 마르티의 이상은 극단적 소비사회인 21세기에 절실하고 긴요합니다.”

부산 영도 출생인 김 시인은 1995년 <시와 시학>으로 등단했다. 서아프리카의 사하라, 스페인 카나리아섬에서 10여 년간 머무르기도 했다. 부산 중구 동광동에서 글쓰기 공동체 ‘백년어서원’을 운영하고 있다. 김상훈 기자 neato@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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